미국 마약진통제 산업의 실상
페인킬러
넷플릭스. 미국 제약 산업의 추악한 음모를 파헤친 세미 다큐드라마 6부작. 이 드라마의 원작은 같은 제목으로 배리 마이어가 쓴 책이다. 책은 한국에도 번역되어 판매하고 있다. 저자인 배리 마이어는 '뉴욕타임스' 기자이며, '퓰리처상'을 받은 유능한 기자다. 그가 '옥시콘틴'이라는 마약성 진통제에 관해 깊이 파고 들어 취재한 결과물을 정리한 내용인데, 이 사건이 오래 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최근의 사건이며, 여전히 미국에서 진행되는 매우 심각한 기업 범죄라는 점에서, 미국 정부와 각 기관의 부패와 타락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한편, 역설적으로 이런 부패하고 타락한 기업 범죄를 끝까지 추적해 기업을 파산하도록 만드는 사법부의 의지와 힘이 미국을 지키고 있음을 알게 한다.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을 개발한 퍼듀제약은 '아서 새클러'라는 정신과 의사가 새로운 발상을 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1950년 이전까지 정신질환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전두엽 절제술'이 가장 널리 시술되었는데, 날카로운 기구를 안구 뒤쪽으로 밀어 넣어 뇌의 앞부분, 전전두엽의 신경을 끊어 정신질환자들이 보이는 폭력성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 시술은 부작용이 많아서 폭력성이 사라지는 효과는 있었지만, 환자는 정상 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작용이 심했다. 195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소라진'이라는 약물을 개발하면서, 정신질환자를 위한 전두엽 시술은 사라진다. 이 과정을 지켜본 아서 새클러는 힘들고 효과도 예측하기 힘든 전두엽 절제술보다는 약물로 간단하게 처방할 수 있는 '소라진'을 적극 처방하기 시작했고, 한 발 더 나아가 제약회사와 미국 최대 규모의 의료 광고 대행사를 매입한다.
아서 새클러는 신경안정제의 하나인 '발륨'을 만들어 팔면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발륨'은 미국인들이 거부감 없이 '아스피린'처럼 복용하는 약이었고, 의사들도 이 약을 환자 또는 약이 필요한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처방했다. 아셔 새클러는 이렇게 벌어 들인 돈으로 값비싼 예술 작품을 사들여 미국의 유명한 미술관, 박물관, 학교, 병원 등에 기증했다.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아서 새클러가 기증한 '이집트관'이 존재한다.
창업자 아서 새클러가 사망하고, 그의 뒤를 이어 조카인 리처드 새클러가 기업을 운영하면서, 리처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한다. 리처드는 인간 행동의 본질을 '고통과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즉, 모든 사람은 고통을 회피하고, 만족한 삶을 추구한다는 즉물적이고 단순한 추론을 세운 다음, 고통을 회피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약을 만들어 판매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리처드의 주장은 '새클러' 가문 사람들을 설득했고, 리처드는 '퍼듀제약'을 통해 기존의 마약성(모르핀) 진통제보다 훨씬 강력한 '아편계(헤로인) 진통제' 옥시콘틴을 개발한다.
드라마는 '플로란스'라는 검찰수사관이 약을 과다 처방한 약사를 조사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플로란스의 증언이 이어지고, 이 증언에서 새클러 가문이 보유한 '퍼듀제약'에서 중독성 강한 마약을 '진통제'로 포장해 판매한 사실이 드러난다. '퍼듀제약'은 이미 'MS콘틴'이라는 모르핀 계열의 진통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리처드 새클러는 이 진통제 제조 방법을 약간 바꿔 '옥시콘틴'이라는 새로운 진통제를 만든다. 헤로인 계열의 더 강한 진통제를 만들고, 가짜 정보를 입력한 문서로 FDA(미국식품의약국) 승인을 받는다. 이때 FDA에서 일을 올바르게 했다면 '옥시콘틴' 같은 합성 마약이 등장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즉 FDA는 매우 엄격한 심사와 관리를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허술한 조직이고, 간단한 속임수나 뇌물에 쉽게 노출된 조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리처드 새클러는 새로 만든 '옥시콘틴'을 판매하는 전략을 세우고, 홍보 마케팅에 많은 공을 들인다. 대학을 막 졸업한 여성을 홍보 마케팅 직원으로 고용해 이들이 의사와 약사를 직접 찾아다니며 '옥시콘틴'을 처방하고 판매해 달라는 로비를 펼친다. '퍼듀제약'은 신약 '옥시콘틴'을 판매하려고 일종의 미인계를 쓰는데, 젊은 여성들이 의사와 약사를 찾아와 할인 쿠폰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처방전을 더 많이 쓰라고 청탁한다.
'옥시콘틴'을 판매하는 젊은 여성들은 '퍼듀제약'의 정식 직원이 아니라, 임시 고용된 직원이며, 월급이 아닌 수당을 받는 걸로 보인다. 자기가 맡은 지역에서 '옥시콘틴' 판매량에 따라 수당이 달라지므로 여성들은 어떻게든 의사들이 '옥시콘틴'을 더 많이 처방하도록 애를 쓸 것이고, 이렇게 실적을 올려 월급을 받는 사람들보다 평균 수입이 훨씬 많아지기도 한다. '퍼듀제약'은 '옥시콘틴'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거의 다단계 방식과 비슷한 마케팅 기법을 사용하고, 판매 초기에 이렇게 공을 들인 결과, '옥시콘틴'은 중독성 때문에 저절로 처방전이 늘 수밖에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지금 미국 사회에서 보이는 '좀비 인간' 현상은, 단순히 마약 중독자가 급격히 늘었다는 말로 해석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마약의 급격한 보급은 1960년대 중반부터인데, 그 전에도 마약은 조금씩 거래되고 있었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차 세계전쟁 때, 전투 과정에서 부상당한 미군들이 통증 처방으로 쓰인 모르핀 주사에 중독되는 경우가 생기면서,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마약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미국은 마약이 유통되기 매우 좋은 환경인데, 아메리카 대륙에서 북쪽은 캐나다와 미국으로, 전체 아메리카 대륙에서 부유한 지역이고,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가난한 상태여서, 남아메리카에서 재배된 마약이 미국으로 흘러들어 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매우 값싸게 만든 마약이 미국에서 유통하면 수십, 수백, 수천 배의 이윤을 남길 수 있으니, 범죄 조직이 가장 먼저 마약을 상품으로 만들어 국가를 뒤흔들 만큼의 강한 힘을 갖게 된다.
1960년대와 70년대부터는 남아메리카에서 밀반입되는 마약과 동남아시아(태국 등)에서 만든 마약이 베트남을 통해 미군 수송기에 실려 밀반입되면서 미국 사회는 마약 유통과 중독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 보이는 '좀비 인간'과 노숙자(홈리스) 중독자 문제는 단순한 마약 중독과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한국과는 다른 '사보험' 제도인데, 개인은 보험회사(사기업)의 의료보험에 가입한다. 가입할 때 지불하는 비용에 따라 병원에서 받는 서비스의 종류와 내용이 천차만별로, 지극히 미국 자본주의 체제에 맞는 '빈익빈 부익부' 제도다. 돈 많은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의료보험 서비스가 훌륭해서, 거의 모든 의료 서비스를 적은 돈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미국인 대부분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예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오바마 케어'라는 의료보험 제도를 개선하려다 역풍을 맞은 경우가 있을 정도로, 미국 보험회사의 입김과 압력은 엄청나다.
미국인이 일을 하거나 일상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이런저런 사고를 당해 병원을 찾게 될 때, 병원은 환자가 아닌, 보험회사와 상의해 치료의 범위를 결정한다. 보험회사에서 승인하지 않은 처치나 치료는 할 수 없으며, 그외 의료 서비스 비용은 모두 개인이 지불해야 한다. 보험회사의 승인을 받는 과정도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데, 보험회사에서 고용한 의사가 어지간하면 진료 승인을 거부하고, 진료 승인을 거부한 실적이 많은 의사는 보너스를 받는 구조다.
이렇게 의료보험이 부실하고, 열악한 상태여서 서민들은 다쳐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마이클 무어가 만든 다큐멘터리 '식코(SICKO)'가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사고를 당했거나 건강이 나빠진 미국인 가운데 의료보험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진통제를 찾는데, '퍼듀제약'의 리처드 새클러 같은 자본가들이 이 시장을 노리고 2급 마약을 '진통제'로 포장해 합법적으로 판매했다.
헤로인 계열의 마약성 진통제는 심한 통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초기에 좋은 효과를 보인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나아지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이런 진통제는 고마운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다 점차 자기도 모르게 진통제에 의존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빈도도 잦아진다. 진통제를 더 자주, 더 많이 먹게 되면서 통증 환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 마약 중독자가 된다.
지금 미국의 도시 거리에 비틀거리며 좀비처럼 움직임이 느린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기존의 마약 중독자 보다 이렇게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 받은 통증 환자들이 마약 중독이 되면서 중독자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옥시콘틴'이 판매된 이후, 미국에서 각종 통계 수치 가운데 부정적 통계들 - 범죄, 자살, 중독자 등 - 이 모두 비슷한 그래프를 그리며 높아졌다. '퍼듀제약'의 새클러 회장은 '옥시콘틴'의 부작용을 부정하고, '옥시콘틴'으로 마약 중독이 된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면서, 모든 책임은 약물을 오남용한 사용자, 환자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플로란스는 1998년부터 '옥시콘틴'의 존재를 확인하고 조사하는데, 이때 이미 심상치 않은 정황들이 나타났고, 연방 검사를 설득해 '퍼듀제약'을 직접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퍼듀제약'이 저지른 온갖 불법을 문서로 확인하는데, '퍼듀제약' 내부 직원의 고발 증언까지 확보해 결정적 자료를 보완한다. 하지만 연방 검사 쪽에서는 '퍼듀제약'과 합의하고 '퍼듀제약'이 얼마간의 사회적 기금을 내는 것으로 그들의 범죄는 흐지부지 묻힌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리처드 새클러 회장이 전화 한 통화를 한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자본가의 전화 한 통으로 백악관을 움직이고, 백악관은 법무부를, 법무부는 연방 검사를 압박해 이렇게 심각한 사건도 묻히게 만든다.
2009년에 사건은 묻혔고, 플로란스는 자기가 했던 '퍼듀제약' 관련 활동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시민단체를 위해 활동하는 변호사 법인에서 그동안의 활동 내용을 모두 설명한다. 이 드라마에서 플로란스의 나레이션이 바로 그동안의 활동 내용이었다. 이후 '옥시콘틴' 사건은 각 주 정부들이 '퍼듀제약'을 상대로 고발하면서, '퍼듀제약'은 파산 신청을 하고, 각 주 정부에 합의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하지만, 정작 새클러 가문은 막대한 부를 잃지 않고,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는 현실이다.
자본은 오로지 이윤을 추구하는게 목적이고, 이윤 추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좋은 자본'이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시작된 이래 자본가는 언제나 '악'이었으며, 자본의 본질은 그 자체로 악할 수밖에 없다. 이윤을 추구한다는 건 누군가를 착취하는 걸 전제하기 때문이다. 착취에 기반한 시스템이 자본주의이며, 자본가는 이윤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과 제도를 어기더라도 치명적으로 처벌 받는 경우가 드물다. 자본가들은 많은 돈을 주고 사법 전문가를 고용해 자본가 자신과 기업을 보호하고 방어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처럼, 새클러 가문은 비록 '퍼듀제약'은 파산 신청을 하지만, '새클러' 가문은 여전히 미국에서 열 여섯 번째로 재산이 많은 자본가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새클러 가문의 재산은 110억 달러(우리돈 약 15조 원)에 이른다.
'퍼듀제약'이 '옥시콘틴'을 판매하는 동안 약 30만 명의 미국인이 마약성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고, 지금도 매일 40명 이상이 마약성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죽고 있다. '퍼듀제약'은 2023년 3월, 파산 신청을 했지만 결정된 내용은 없다. 수 많은 사람들이 통증으로 고생하면서 사 먹은 약이 마약이고, 그 마약에 자기도 모르게 중독되어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 이웃까지 끔찍한 고통을 당하도록 만든 기업이 십 조 원 넘는 재산을 보유하며 호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과연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세상일까. 이 드라마는 진실의 일부만 보여주었을 뿐이지만, '자본'이 얼마나 악랄하고 사악하며 끔찍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