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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Dec 21. 2024

리차드 주얼

리차드 주얼


넷플릭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 미국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 거대한 권력의 폭력에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과장하지 않고 그렸다. 반전 없는 내용이지만 끝까지 스릴과 긴장이 유지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권력과 개인이라는 주제를 깊이 파고 든다. 

리차드 주얼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바닷가 모래밭의 모래 한 알 같은 존재다. 그의 꿈은 경찰이지만, 그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상태다. 그는 대학이나 쇼핑몰 등에서 보안 요원으로 일하면서 경찰과 비슷한 일을 하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다 애틀랜타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콘서트장에서 보안 요원으로 일하다 우연히 의자 아래 있던 커다랗고 수상한 배낭을 발견하고, 경찰에게 알린 다음, 콘서트 관객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배낭 안에 있던 폭발물이 터지면서 두 명이 사망하고 백여 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고를 바라보는 미국 언론과 대중의 시각은 '전형적'이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리차드 주얼을 두고, 최초로 폭발물이 든 배낭을 발견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킨 '영웅'으로 칭송하며 대대적인 보도를 하고, 출판사에서는 리차드 주얼의 평전을 출판하겠다고 나섰으며,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리차드 주얼을 유명 스타를 보는 듯 대한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특히 미국에서 '영웅'은 '상품'과 동의어가 된다. 미국 사회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영웅'에 관심이 많고, '영웅'을 만들고, 기리고, 추앙한다. '영웅'은 고도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언제나 흥행에 성공하는 '상품'이다. 미국 사회에서 '소방관', '경찰'과 '군인'은 '영웅'과 동일시한다. 헐리우드에서 '영웅'을 다룬 영화가 늘 흥행에 성공하는 이유 역시, '영웅'을 기다리는 미국인의 집단 심리를 만족하기 때문이다. 헐리우드의 '영웅'은 만화 주인공들이지만, '소방관', '경찰', '군인' 등 유니폼(제복)을 입은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깊은 믿음과 존경의 마음은 미국 역사에서 이들 제복 입은 사람(집단)에 대한 의존이 강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나'로 심지어 '제국주의'로 패권을 확장하기까지 미국은 제복을 입은 집단의 강력한 폭력이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하고자 했을 때부터 군대는 독립전쟁의 최전선에서 미국의 독립을 위한 첨병이었으며, 이후 내부적으로는 남북 전쟁 이후 미국 - 이때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백인들의 미국이다 -의 이익에 복무하는 군대와 경찰 조직이 유색 인종과 유색 이민자를 관리하면서, 백인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군대(군인)와 경찰은 그들의 '영웅'으로 인식된다.

특히 미국이 독립 이후 곧바로 필리핀을 침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해 미국의 이익을 확대, 확장하는 시기는 물론,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되고, 미국이 중동에 진출해 석유 개발에 직접 개입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확대, 확장하는 상황이 이루어지던 시기, 미국이 '세계 경찰'이라는 딱지를 스스로 붙이고, 세계의 모든 분쟁에 개입하고, 그 대가로 미국의 이익을 악착같이 챙기는 그 모든 과정에서, 미국 군대는 미국인의 입장에서 '영웅'일 수밖에 없다.

미국인은 국가 또는 언론이 인정하는 '영웅'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찬양한다. 국가 또는 언론이 만든 '영웅'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주류 지배 집단인 '백인'의 이익에 복무하기에 백인들에게는 당연하지만, 미국이 만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모든 유색 인종과 이민자들 역시 미국의 주류 집단의 사고방식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며 '영웅' 이미지를 받아들인다.

미국 사회에서 '영웅' 만들기는 대중을 기만하는 여러 술책 가운데 아주 잘 먹히는 방법이다. 대중 문화에서는 만화, 영화 등에서 쉽게 '영웅' 이미지를 가져오고, 스포츠에서는 야구, 미식축구, 농구 등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는 선수들을 '영웅'으로 만들며, 헐리우드에서는 매력 있는 배우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므로 이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대중은 권력 집단 - 정부, 언론, 대기업 등 -이 내세우는 '영웅' 캐릭터를 소비한다. '영웅'은 자본주의 상품으로써 기능하며, 대중의 관심을 한쪽으로 집결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권력 집단이 대중을 지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권력 집단이 '영웅'을 만들어내거나 폐기하는 건 철저하게 계산한 결과이거나, 우연이 겹치더라도 권력 집단의 의도가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리차드 주얼은 모래알 같은 존재에 불과한 인물이지만, 폭발물 발견과 폭발 사건을 겪으면서, 그 사건을 상징할 수 있는 '영웅'이 필요한 권력집단 - 언론 -에 의해 하루 아침에 '영웅'으로 탄생한다. 공연의 보안요원에 불과했던 리차드 주얼은,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언론도 여기서 멈췄다면, 리차드 주얼은 지역에서 훌륭한 일을 한 사람으로 존경 받으며 평범하게 생활했을테지만, 권력집단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개인' 리차드 주얼을 희생양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FBI는 폭파범을 빨리 체포해 그들 조직의 유능함을 인정받고, 조직의 위상을 높이며, 권력을 확장시켜 조직(집단)이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 거대 단위의 집단(국가)에서도 크고 작은 조직(집단)이 서로 경쟁하는데, 큰틀에서는 전체 집단의 이익에 복무하면서도 내부에서는 경쟁하며, 자기 조직의 성장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FBI는 폭탄테러범을 잡기 위해 나서지만, 그들은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폭발물 배낭을 발견한 리차드 주얼을 의심하고, 참고인에서 용의자로 전환하는 단계에서, FBI 요원이 쓰레기 기자에게 정보를 넘긴다. 즉, FBI가 정식으로 조사하지도 않았고,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쓰레기 기자가 리차드 주얼을 '용의자'로 단정하는 기사를 써서 발표하고, 이때부터 리차드 주얼의 삶은 지옥으로 바뀐다. 

쓰레기 언론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단독' 또는 '특종'이라는 상품을 팔아 막대한 이윤을 얻으려 하고, 그렇게 공개된 '뉴스'라는 정보를 통해 FBI는 자의적으로 결론을 만들고 과정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국가에서 가장 큰 두 개의 권력집단인 FBI와 언론이 합작해 모래알 같은 한 개인의 삶을 마구 짓밟기 시작한 것이다.

리차드 주얼은 경찰이 되고 싶은 평범한 시민이며,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걸 큰 보람으로 생각하는 건강한 청년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타심이 큰 사람인데, 이런 성격 때문에 리차드 주얼은 FBI에게 쉬운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나마 리차드 주얼이 잘 했고, 희망이 있었던 건, 그가 예전에 일하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변호를 맡긴 일이었다.


리차드 주얼을 연기한 폴 월터 하우저는 처음 보는 배우인데, 다른 영화에서는 모두 조연이나 단역 등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을 뿐, 주연으로 나온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뚱뚱한 몸에 순진한 얼굴을 한 폴 월터 하우저는 리차드 주얼 역할을 통해 놀라운 연기를 보이는데, 그의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연기는 '리차드 주얼'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오디션을 통해 폴 월터 하우저의 연기를 보자마자 바로 캐스팅 할 정도로 '리차드 주얼'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배우라고 보인다. 리차드 주얼은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 가려는 FBI의 야비한 속임수를 모두 믿으면서도, 마지막에 그가 FBI 요원들에게 하는 말은 이 영화의 핵심이며, 주제이자 가장 큰 울림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에서 캐시 베이츠를 보게 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캐시 베이츠라니! 스티븐 킹의 소설 '미저리'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미저리'에서 싸이코패스 간호사 역할로 헐리우드를 깜짝 놀라킨 바로 그 캐시 베이츠, 이후 쭉 캐시 베이트가 나온 영화는 다 챙겨보는데, 연기에 있어서는 이미 오랜 연극 활동으로 다진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천부적으로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리차드 주얼의 엄마로 나오는 캐시 베이츠는 연기 비중이 적어보이는 듯 하지만, 언론 앞에 서서 대통령을 향해 호소하는 장면에서, 훌륭한 배우의 모습을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주며 명불허전의 배우임을 증명했다. 캐시 베이츠는 '돌로레스 클레이본', '타이타닉',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같은 영화에서 모두 개성 있고 뚜렷한 이미지를 남기면서 헐리우드 톱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다.


현실에서 리차드 주얼은 44세에 심장 질환으로 사망한다. 선량하고 반듯한 시민인 리차드 주얼은 옳은 일을 하려다 오히려 국가 권력과 언론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수난을 당했고, 힘든 과정을 겪으며 겨우 일상을 찾을 수 있었다. 권력 집단과 개인의 싸움에서 개인이 이길 확률은 매우 낮다. 집단은 권력과 돈으로 개인을 쉽게 깔아뭉개지만, 개인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내던지면서 권력 집단에 맞서야 하기 때문에, 이런 사건에 휘말리면 개인의 삶, 인생은 고난을 겪으며 비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을 파괴한 경우가 과거에 너무 많아서 사례를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특히 독재 권력이 개인을 '간첩'으로 몰아 감옥에 오래 가둬두거나 사형으로 살해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사례는 세계의 여러 나라 가운데 특히 독재 권력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더 많이, 더 자주 발생했고, 과거 러시아,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는 물론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나라, 아시아와 남미에서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나라들에서 흔하게 발생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 선진국이라고 말하고, 경제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도 '선진국'이라고 자타가 말하지만, 미국 사회에서도 권력 집단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벌어진다. 미국은 인종 차별이 특히 심하고, 빈부 격차도 심각하며, 미국으로 들어오는 각종 마약이 미국인의 삶을 파괴하는 가운데, 총기 사고까지 자주 발생하며 미국 사회의 불안정성이 권력 집단을 위협하는 구조적 모순으로 작동한다.

미국의 지배 계급, 권력 집단은 이런 불안정한 사회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파편화된 개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인종 차별을 눈 감아주고(겉으로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이 마약을 소비하는 걸 방치하며(사람들이 마약에 취해 지배 계급에게 저항하지 못하려는 의도까지 포함해서), 지배 계급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권력 기관(FBI, CIA, 경찰 등)을 동원해 체포, 구금한다.

리차드 주얼도 그런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그는 그나마 운이 좋아 범죄자가 되기 직전에 살아 남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시민의 감시 대상이며, 시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친위 쿠데타처럼, 권력은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 권력이 없는 다수 대중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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