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의 비극
코엔 형제는 늘 둘이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공동 감독으로 영화를 연출하지만, 미국 영화법에 따라 한 명만 감독 이름을 올릴 수 있어 영화마다 형제의 이름이 한 명씩만 올라갔는데, 조엘 코엔의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있다. 또한 '인사이드 르윈,, '위대한 레보스키', '더 브레이브' 같은 훌륭한 작품이 있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도 있다.
특히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흑백 필름의 아름다움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세한 먼지 입자가 가득한 이발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인공 에드의 모습은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 영화 '레이징 불'의 첫 장면, 주인공이 링 위에서 가볍게 몸을 푸는 슬로우 모션이 떠오를 정도로 명장면이다.
흑백 영화는 드물다. 컬러 영화가 시작하고 거의 모든 영화는 컬러 필름으로 찍고, 상영하지만 아주 드물게 감독이 의도해서 흑백 영화로 만드는 작품이 있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도 컬러 필름으로 찍었으나 흑백으로 변환해서 상영했다.
한국 영화에서도 '동주'가 있고, '씬 시티',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로마', 마틴 스콜세지 '분노의 주먹(레이징 불), 짐 자무시 '천국보다 낯선',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박찬욱 감독의 작품 '친절한 금자씨'도 컬러로 개봉했으나 흑백 영화로 다시 만들었다. 이처럼 처음부터 흑백 영화로 만든 영화가 있는가 하면, 컬러 버전을 흑백 버전으로 다시 만드는 영화도 많다.
흑백 영화는 독특한 매력을 갖는다. 흑백의 명암이 주는 느낌이 강렬하면서 단순한 명료함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드러내면서 고전적 느낌을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조엘 코엔이 '맥베스'를 연출하면서 흑백 영화로 만든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며,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연극을 영상으로 옮긴 느낌으로 만들었다. 충분히 의도적이면서 효율적인 방식인데, 연극무대의 미니멀리즘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면서 연극에서 하기 어려운 몇몇 특수 장면에서 극적 효과를 강하게 드러내 이 작품의 특징을 살렸다.
세익스피어 '맥베스'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조엘 코엔이 혼자 감독으로 연출한 첫 작품을 '맥베스'로 한 까닭이 의아할 수 있는데, 내용을 알고 있어도 이 작품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새로운 느낌이다. 그건 원작 희곡의 내용을 조엘 코엔이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연출한 결과인데, '맥베스'의 서사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다.
건물 외에 아무런 장식 없는 텅 빈 공간들은 무대를 상징한다. 이 미니멀한 무대를 채우는 건 빛과 그림자이며, 무대 즉 공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배우들 뿐이다. 연극에서 관객은 배우를 멀리서 바라볼 뿐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 할 수 없지만 영화는 배우의 표정을 클로즈업 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렸다.
흑백 영화의 장점이 특히 도드라지는 장면은 주인공 맥베스가 흑인 배우 덴젤 워싱턴이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물의 피부색으로 정치적 논란을 만드는 사람이라도 이 영화가 흑백이라 피부색을 구분할 수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조엘 코엔은 이런 부분을 의식했을 걸로 생각한다.
연극에서도 음향 효과는 매우 중요하고, 극적 효과를 끌어올리는 장치로 쓰이는데, 이 영화에서 음향은 특히 중요하다. 가능하면 좋은 음향 기기로 듣기를 추천하고, 좋은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들으면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영화가 더 흥미롭게 보인다.
맥베스는 전쟁 영웅으로 귀환하는 길에 마녀들을 만나 예언을 듣는다. 자신이 코더 영주를 거쳐 왕이 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이때 마녀들의 예언은 딜레마를 던진다. 맥베스가 왕이 되긴 하지만, 맥베스가 가장 아끼는 부하 뱅코의 아들도 왕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던컨 왕은 귀환한 맥베스를 코더 영주로 임명한다. 맥베스의 부인은 마녀들의 예언이 이루어진다고 확신하고, 맥베스의 성으로 온 던컨 왕을 살해하라고 맥베스를 부추긴다. 이 뒤의 이야기는 맥베스의 비참한 최후, 목이 잘리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이지만 정작 중요한 서사의 의미는 앞부분에 있다. 맥베스는 전쟁 영웅으로 귀환하다 누구인지 모를 예언자(마녀)들에게 장차 왕이 될 거라는 말을 듣는다. 이때 맥베스 앞에 나타난 예언자라는 인물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예언자들이 실제하는 외부의 인물이었다면, 던컨 왕과 맥베스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누군가일 수 있다. 즉 맥베스가 던컨 왕을 없애고 나면 다시 누군가가 왕위를 찬탈한 맥베스를 없애면서 왕위를 차지하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출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예언자들의 존재를 실제하는 인물이 아닌, 맥베스 자신의 내적 욕망의 현현이라고 한다면, 맥베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 장군으로, 자기 앞에 거칠 게 없는 권력과 권위를 가졌다고 자만할 수 있고, 그 자만의 힘으로 던컨 왕을 없애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꿈꾸었을 걸로 볼 수 있다.
이때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맥베스의 부인이다. 그녀는 남편 맥베스보다 권력을 향한 욕망과 야망이 더 큰 사람이었고,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남편 맥베스에게 투사했다. 그녀는 남편을 부추겼고,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 회유를 하며 결국 맥베스가 던컨 왕을 살해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맥베스 앞에 나타났던 예언자들은 맥베스의 부인이 보낸 인물들은 아닐까 의심할 수 있다.
극의 흐름을 보면, 인물들의 언행이 중의적이거나 알레고리를 내재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등장 인물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도덕적, 윤리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맥베스와 그의 부인만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권력을 향한 암투나 치정극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벌어진 일탈과 어리석은 판단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예언자(마녀)들이라는 매개 존재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 맥베스와 그의 부인은 마치 손에 왕(王)을 쓴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고, 미신과 무당에 취해 남편을 끝없이 부추기고, 회유하며 남편의 권력을 전유하려 했던 한 여자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어리석음의 끝은 비참한 죽음 뿐이다. 맥더프의 칼날에 맥베스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가듯, 손에 왕(王)을 쓴 자의 최후 역시 총알이 목을 꿰뚫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