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하우스
영화를 보고 선뜻 글을 쓰지 못한 건, 이 영화가 보여 준 흑백의 강렬한 이미지와 인물의 격렬한 감정 때문만이 아니었다. 광기에 휩싸인 두 사람의 행동은 파멸을 예고하지만, 그들이 이 등대만 있는 외딴 섬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곱씹어봤다.
1881년 7월,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작은 섬에 홀로 선 등대를 관리하는 두 명의 관리인이 들어오고, 4주 동안 등대를 관리했던 두 사람이 배를 타고 나간다. 등대 관리는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뤄 4주 동안 하는데, 등대관리인 토머스 웨이크와 처음으로 등대 관리 일을 하는 엘프라임 윈슬로는 이 등대로 들어오면서 처음 만났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나간다. 등대를 관리하기 위해 잡다한 노동을 하는 엘프라임의 상황과, 등대의 전등을 독점해서 관리하는 토머스의 업무는 분명하게 나뉘어 있고, 등대장 토머스는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토머스는 엘프라임의 전임이자 토머스와 함께 일했던 관리인이 미쳐서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살한 등대원은 죽기 전에 인어를 봤다고 했고, 바다새(갈매기)를 죽이면 불행이 닥친다고 경고하지만 엘프라임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엘프라임은 혼자 밤바다에 나갔을 때, 통나무 사이에서 죽어 있는 남자와 인어의 환영을 본다. 토머스와 엘프라임이 보는 환영과 환상은 자신의 죄책감과 응어리진 감정에서 발현된다. 토머스는 젊었을 때 선원으로 배를 타고 넓은 세상을 돌아다녔다. 나이 들고 선원에서 등대를 지키는 일로 바꾸고 꽤 오래 이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엘프라임은 등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벌목꾼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는 집을 떠나 여러 직종에서 일을 했지만 밑바닥을 전전한 것으로 보이고, 돈을 모아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 집을 짓고 조용하게 살겠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가족과 헤어진지 오래되었고, 감정을 교류할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점에서 오랜 세월을 외톨이로 살아왔다고 짐작하게 된다.
엘프라임은 낮에 등대 주변의 잡다한 일을 하고 토머스는 밤에 등대를 지키는 일을 한다. 불을 밝히는 등대 꼭대기에는 오로지 토머스만 올라가고, 엘프라임은 절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
그들이 등대를 떠나는 날, 태풍이 불고, 보급선은 오지 않았다. 엘프라임은 해변에서 인어의 환영을 보고, 태풍이 불어 식량이 물에 젖는다. 보급선이 오려면 태풍이 멈춰야 하는데, 등대장은 과거에 7개월동안 보급선이 오지 않았던 적도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등대장이 숨겨놓은 식량(통조림)을 꺼내 먹으며 태풍이 멎길 기다린다.
토마스 하워드. 엘프라임 윈슬로는 자기 본명이 토마스 하워드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가 말한 엘프라임 윈슬로는 벌목일을 할 때 조장의 이름이었으며, 그가 나무에 깔려 죽었노라고 고백한다. 토머스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통발에서 외눈박이 잘린 목을 발견하고, 인어와 섹스를 하는 환상을 경험한다. 태풍과 폭우가 몰아치고, 집도 모두 물에 잠긴 상황에서 토마스 하워드는 등대장이 적어 놓은 업무일지에서 자기를 무보수로 해고할 것을 건의한다는 내용을 보고 격분해 등대장을 폭행한다. 그리고 목줄을 매 구덩이에 생매장을 하지만 등대장은 살아나 토마스 하워드를 공격하고, 토마스는 하워드를 살해한다. 마침내 토마스 하워드는 등대의 꼭대기, 불을 밝히는 등이 있는 곳에 올라가는데,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을 받아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바닷가에서 새들에게 먹히며 죽어간다.
등대는 불을 밝혀 자신이 있는 위치를 알린다. 안개가 드리우면 소리를 내고, 밤에는 불을 켠다. 등대는 뱃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다. 뱃사람으로 일하던 토머스는 배에서 내려 등대로 온다. 그가 더 이상 배를 탈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배에서 반란이 있었고, 수많은 선원이 죽었을 걸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어쩌면 반란에서 도망한 선원일 수도 있다.
토머스는 밤에 혼자 등대 전등 앞에 앉아 전등을 바라보며 환상을 보고, 고통을 느끼거나 쾌락을 느낀다. 등불의 환상은 토머스의 트라우마와 무의식을 반영한다. 마지막에 엘프라임이 토머스를 죽이고 등대에 올라 전등을 바라볼 때, 그가 본 것은 공포였다. 그가 저지른 죄악의 환영을 보고 충격을 받아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는다.
등대는 빛을 비추지만, 빛에 다가갈 수 없는 두 사람은 자신을 비추는 빛(양심)을 바라보며 죄의식이 드러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죄를 지은 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똑바로 들여다볼 용기가 없고, 양심과 마주하면 괴롭고 고통스럽다. 두 사람의 행동은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행위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죄의식이다.
등대는 구원의 상징이지만, 죄 지은 자가 쉽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들은 구원을 바라지만,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속죄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영화의 미장센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단순하고 단조롭다. 외딴 섬의 두 사람이라는 장치부터 강렬한 흑백은 이 이야기가 오래된 과거의 시간임을 말한다. 두 인물은 가난하고 무지한 노동자들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고, 이성과 지성보다는 본능과 감각에 더 쉽게 반응한다.
윌리엄 데포와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격렬하다. 주어진 상황도 예사롭지 않지만, 불길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위태롭다는 본능적 감각으로 광기에 휩싸이는 연기는 흑백의 화면에서 훨씬 드라마틱하다.
게임 라이트키퍼(The Lightkeeper)
스팀(Steam)의 인디게임 '라이트키퍼'는 게임이면서 동시에 한 편의 모노 드라마다. 이 게임은 영화 '라이트하우스'와 깊은 관련이 있는 듯 보이는데, 영화와 게임이 서로 아무 관련 없이 만들어졌다면, 그 우연의 일치가 놀랍다. 물론 많은 부분 다른 내용이고, 서사의 배경도 전혀 다르지만, 영화와 게임이 드러내는 미장센, 개인의 트라우마, 환상과 환각으로 나타나는 알레고리,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근본적인 공포 같은 본질적 정서는 매우 비슷하다.
'라이트키퍼'의 무대는 1925년 8월, 아이슬란드 남쪽 바다의 작은 외딴섬이다. 거센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으며, 천연 항구가 없는 곳으로, 수심이 얕은 남부 대륙붕과 남부 심해로 나뉘어 있는 바다에서 배들이 길을 잃지 않고, 얕은 바다에 좌초되지 않도록 등대의 불빛과 안개 경고음으로 안전한 항해를 유도하는 위치에 등대를 세웠다.
이곳에 등대를 지키는 '아서'가 도착한다. 그와 임무 교대를 하는 사람은 두 명으로, 그들의 표정은 거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인다. 아서는 혼자 등대를 지키는데, 보통은 두 명이 한 조로 일하며, 보통 한 달 정도 근무하고 교대하는 게 일반적 상황이다. 아서가 혼자 등대지기로 들어오게 된 건 지원자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등대지기의 일상은 단순하다. 해가 지면 등대의 불을 켜고, 날이 밝으면 불을 끈다. 안개가 드리우면 소리를 내는 기계를 작동해 불빛 대신 소리로 지나가는 배에 경고를 한다. 이 두 가지 업무는 켜고 끄는 작업만 하면 되기에 섬이 일상은 단조롭고 지루하다.
등대지기는 단조로움과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것으로 보상을 받는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 돌아보면 수평선만 보이는 바다. 바람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파도 소리만 들리는 공간. 등대를 지키는 게 임무라지만 섬에 오로지 혼자 있다는 고립감은 서서히 영혼을 잠식한다.
아서는 섬에서 이상한 흔적들을 발견한다. 그가 앞선 근무자들이 남겨둔 트렁크에서 쪽지를 찾아 읽는데, 내용이 섬뜩하다. 1912년에 세 남자가 등대지기로 들어왔다. 조나단, 윌리엄, 빅터 세 사람은 유능한 등대지기였지만 2주 후, 교대 근무선이 도착했을 때 세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등대는 꺼졌고, 건물 내부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섬 한 쪽에 있던 세 개의 십자가는 이들 세 명의 무덤으로 보이지만, 그곳에 이들의 시신이 묻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세 명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다른 쪽지에서, 등대 지하실이 언급된다. 실종된 세 사람은 바다 악마에게 희생되었다고 아브라함 신부가 말했고, 섬 곳곳에 성물을 놓고 악령을 쫓아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렇게 섬과 등대는 악마의 저주를 받은 채 망망대해에 홀로 서 있었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등대지기들은 숨 죽이며 2주 근무를 마치고 무사히 살아 돌아오거나, 또 다른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섬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섬찟한 사건들 -갈매기가 참혹하게 죽어 있고, 피가 낭자한 상태로 발견된다 - 을 통해 아서는 작은 단서들을 발견하며 마침내 등대 지하실로 내려간다. 지하실로 내려가기 전, 아서는 등대 꼭대기에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쫓다 열쇠 꾸러미를 발견한다. 열쇠 꾸러미는 섬과 등대 내부에 있는 모든 벽장, 서랍, 문을 열 수 있는 만능 열쇠로, 이때부터 아서는 섬의 비밀을 본격 찾아 나선다. 아서가 가장 먼저 연 장식장에는 오래된 와인이 가득한데, 아서는 이 와인병을 보면서 낙담한다.
아서는 술과 깊은 연관이 있고, 술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는 술을 끊었다고 생각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장식장에 있는 술을 마시고 만다. 그는 술에 취해 일몰 때 등대의 불을 켜는 것도 놓친다. 알콜중독이었던 아서가 다시 술을 마시면서, 외딴 섬에서 홀로인 아서의 존재는 점차 변해간다. 아서의 존재는 영화 '샤이닝'에서 잭 토렌스가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 잭 토렌스도 과거 알콜중독이었으나 가족과 함께 '오버룩호텔'의 관리인으로 들어올 때는 그래도 술을 마시지 않고,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왔으나, 긴 겨울의 고립감으로 정신이 조금씩 이상해지면서 마침내 거대한 환각, 환상을 보고, 호텔 바에서 술을 마음껏 마신 다음부터 완전히 정신줄이 끊기게 된다.
아서 역시 술을 발견하고 몹시 긴장한다. 그건 과거에 술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에도 아서는 섬에서의 고립감, 정서적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술을 마셔 스트레스를 잊으려 한다. 그는 환상, 환각을 보며 공포에 질리는데, 순간 잠에서 깬다. 그는 꿈을 꾸었고, 꿈에서 과거의 트라우마 일부를 본다.
마침내 지하실로 내려가기로 결심한 아서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열지만, 문을 열면 또 다시 똑같은 복도가 나타나고, 각각의 복도에서 해결해야 할 사건이 벌어진다. 똑같은 복도가 반복해서 나타나고, 그 복도에서 보게 되는 쪽지의 내용은 아서의 과거를 건드리는 강력한 트라우마들이다. 아서는 이 트라우마의 긴 복도를 지나야 비로소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지하'는 인간의 '무의식'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서가 내려간 등대의 지하는 앞서 사라진 세 명의 등대지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면서, 세 명의 죽음과 유령을 맞닥뜨린다. 아서가 찾아낸 물증에 따르면, 윌리엄이 악령에 씌여 이상한 행동을 하자 빅터가 윌리엄을 살해한다. 빅터는 조나단에게 메모를 남기는데, 자신이 악마를 불러들인 장본인이라며 자신의 시신을 태워달라는 말을 남긴다.
아서는 등대 지하를 돌아다니다 갑자기 타임슬립해 자신이 참전했던 1차 세계전쟁 당시 참호 내무반으로 이동한다. 1918년, 아군의 공중 폭격이 있을 때, 폭격 위치의 좌표를 불러준 장교가 아서였다. 아서는 좌표를 불렀으나 그 좌표는 적군 참호가 아니었다. 그 위치는 등대 아래 사람들이 대피해 있던 지하 참호였고, 아군의 오폭으로 수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책임은 오롯이 아서가 잘못 판단한 결과였으니, 아서가 져야 할 몫이었다.
아서는 조나단을 찾으러 지하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조나단을 만났으나 조나단은 악령에 씌인 건 아서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건 아서가 지은 죄가 너무 깊어 어떻게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뜻한다. 아서는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그가 지은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게임의 결말은 세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직면, 굴복, 탈출 가운데 어떤 걸 선택해도 아서의 운명은 참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