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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현 May 14. 2023

젊은 날의 링컨


단평 | 선택을 최대한 보류하는 링컨의 인간적 속성은 훗날 미국 전역이 직면하는 심대한 문제들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빚어낸다. 젊은 날의 행보는 장차 그가 될 영웅적 인물의 핵심 지표들을 짐작케 한다. 세상의 모든 고뇌를 떠안게 된 그는 끊임없는 농담으로 그 무게를 견뎌낸다. 존 포드는 이토록 잘 알려진 인물 속에서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찾아낸 다음, 예우를 갖춰 이를 기린다. | 극장전 | 080 | 한국영상자료원 |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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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 위인의 삶을 다루는 영화로써 <젊은 날의 링컨>은 독특한 형식의 스토리텔링을 구사한다. 물론 이는 사람들이 잘 아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영화다. 그러나 그의 일생 전체를 전기적으로 보여주거나, 아니면 역사에 남게된 그의 활약상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이건 말그대로 링컨의 젊은 날에 대한 인상주의적 소묘에 가깝다. 존 포드는 청년 시절 링컨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주요 분기점들을 취사선택한 후 이들을 서로 엮는다. 비극적인 가정사, 변호사 그리고 정치인으로써의 커리어, 스프링필드 살인 사건과 재판은 느슨한 상관관계로 연결시키고, 그 이음새에는 링컨의 인간적인 속성들을 불어넣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젊은 날의 링컨>은 치밀한 고증에 입각하기 보다는 몇가지 사실들을 편의적으로 재구성하여 링컨이라는 인물의 타고난 본질을 탐구하는 데에 열중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 전 그는 인생에서 어떤 선택들을 거쳤던가. 그리고 기로에 선 그는 얼마나 고뇌했는가. 그러한 고뇌의 조건들을 관객들에게 직접 체험시킴으로서 존 포드는 이 청년의 모습에서 훗날 우리가 기억하는 거대한 위인을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은 바로 링컨의 고뇌가 드러나게 되는 대목들이다. 리더의 역할은 의사결정권자로써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후,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훗날 미국의 위대한 리더가 되는 링컨 역시 그가 내린 선택의 결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남북 전쟁이나 노예 제도의 폐지를 다루는 수정헌법 13조 같은 사안들에 대해서 링컨은 분명 양자택일의 순간을 겪는다. 중대한 문제일수록 올바른 선택을 찾아내기란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결과는 영구적일 것인데도 불구하고, 선택에 주어지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존 포드는 바로 그 고뇌의 순간들 한복판으로 들어가 흔들리는 링컨의 모습을 포착해낸다. 그것도 위와 같이 잘 알려진 사안들이 아닌, 제한된 기록만이 남아있는 젊은 시절의 사건에서 그가 겪는 고뇌의 속성을 다루는 것이다. 젊은 시절이란 어떠한가. 외부 세계로부터의 경험들을 통해 스스로의 천성을 끝없이 담금질하는 시기가 아니던가. 이때 형성된 인격체는 그가 앞으로 지나가게 될 삶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목격하는건 장차 링컨이라는 위인이 될 인간의 원형이나 다름없다.


선택 앞에서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해 망설이는 그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영화 전체의 태도와도 맞닿아있다. 사실 <젊은 날의 링컨>은 우리가 기대하는 영웅 서사나 법정 드라마의 컨벤션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반대로 어딘가 나사가 풀린 화술을 구사하면서 결론을 유예시킨다. 그러다 정신차려보면, 예정지에서 다소 벗어난 지점에 도착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존 포드는 그 어긋남의 원인을 링컨이라는 인물에게서 찾는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링컨은 결단의 순간들을 끝까지 유보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저항했다. 그는 세상의 딜레마들을 모두 끌어안은 상태에서 홀로 고뇌했다. 이 대목에 핵심이 있다. 링컨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내린 결정들이 아니라, 그에 앞서 그가 짊어진 인고의 시간들이다. 영화는 이를 세 번의 각기 연관없는 결단의 순간들을 통해 보여준다.


첫번째는 링컨이 법조계 진출을 고민하는 장면이다. 그는 우연히 손에 넣은 법학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법치주의가 제시하는 명쾌하고도 심오한 원칙들에 매료당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는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이치를 깨닫는다.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기본 권리들을 수호하는 법은 그 자체로 모든 구성원들의 신성한 의무가 된다. 이를 통해 서로의 존엄을 지키고,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상호 독려하여 진보할 수 있다. 링컨은 법이란 곧 휴머니즘의 가장 최소 단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지키지 않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법조인들은 바로 그 경계선을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링컨은 사람들이 경계선의 올바른 편에 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는 사명감을 찾는다. 그러나 그는 확신이 없다. 이 길은 지역 정치인으로써의 삶을 잠시 중단하고 험난한 여정에 나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결정을 그의 죽은 약혼자인 앤에게 넘긴다. 그녀의 묘비 앞에서 사정을 설명한 뒤, 나뭇가지가 넘어지는 방향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너의 방향으로 나뭇가지가 넘어지면 법조계로 진출할께. 나뭇가지는 묘비 쪽으로 넘어진다. 그는 이를 보고 중얼거린다. 내가 네 쪽으로 살짝 민걸까.


이러한 링컨의 첫번째 고뇌는 그 삶의 궤적을 결정짓게 되는 소명의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길을 택함으로서 사랑했던 이들을 잠시 떠나보내야 하는 것에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즉 링컨이 원대한 야심을 품는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흔들릴지 언정, 이를 한꺼번에 수용하기로 결심한다. 둘 중 하나라도 그는 포기할 수 없으며, 단지 우선순위를 그때마다 조정할 뿐이다. 그러니 그는 이 양자택일에서 대답을 알고 있다. 링컨은 선택에 그의 의지를 살짝 담는다. 그리고는 이 점이 그의 약혼자에게 걸린 나머지, 작게나마 본심을 고백한 셈이다. 고민하는 척 했지만 사실 링컨이 확신을 품었다는 걸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법치주의를 향한 그의 강한 신념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은 고뇌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그의 인격 바탕에 깔려있는 본질적 요소들이며, 절대 타협할 수 없다. 그러니 그는 결단을 내리기 보다는, 아주 조금만 한쪽을 향해 기우는 방식으로 기로에서 빠져나온다.


두번째 결단의 순간은 그가 막 변호사 사무소를 차린 스프링필드 마을의 독립기념일 축제에서 찾아온다. 링컨은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파이를 정하는 컨테스트의 최종 심사위원으로 선정된다. 그는 결승에 오른 두 개의 파이를 시식한다. 사과 파이를 한 입 문 그는 이것이 자신이 먹어본 가장 맛있는 파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로 뒤이어 복숭아 파이를 먹자, 이것도 만만치 않은 최고의 파이라고 덧붙인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선택만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링컨은 계속 파이를 먹으면서 결단을 보류한다. 사과 파이도 복숭아 파이도 맛있다면서 어느새 두 개의 파이를 전부 다 먹어버린 후에도 그는 그저 두루뭉실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영화는 링컨이 어떤 파이를 선택했는지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가볍게 웃음을 주는 장면이지만, 이 역시 링컨의 고뇌를 잘 드러내준다. 마을 최고의 파이를 겨루는 이 컨테스트는 분명 그 파이를 만든 이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링컨은 그들의 정성에 진심을 다하여 화답한다. 두 개의 파이를 다 먹을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은 역으로 둘 다 정말 맛있다는 뜻이다. 그는 파이를 만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동시에 마을 사람들 대상으로 은근한 홍보도 해준다. 컨테스트는 어쨌든 최고의 파이가 무엇인지 결론을 내야하지만, 링컨은 그 결단을 최대한 뒤로 미루어 모두가 만족하는 최선의 상황을 끌어낸 것이다. 그가 고뇌하는 방식은 이렇듯 유머와 휴머니즘을 품고 있다.


그리하여 링컨은 마침내 세번째 결단의 순간에 다다르게 된다. 같은 날, 마을의 외곽에서 싸움이 벌어져 한 사람이 살해된다. 현장에 있던 두 형제는 살인범으로 몰려 린치 당할 뻔하지만, 링컨이 재치를 발휘하여 이들을 무사히 법정에 세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변호를 맡게된다. 본 사건의 핵심은 둘 중 누가 피해자의 가슴에 칼을 꽂았는지의 여부다. 두 형제는 서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죽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일한 목격자인 이들의 어머니가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아들 중 한명이라도 구하려면 누가 피해자를 죽인건지 밝혀야 한다고 그녀를 압박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증언을 거부한다. 이런 상황에서 링컨은 이들의 무죄를 - 한명이라도 -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도 처음에는 어머니의 진술에 기댄다. 이것만 확보된다면 적어도 형제 중 한명의 누명은 풀 수 있다. 진실은 게임 이론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며, 영화 후반부에 펼쳐지는 재판 역시 이에 초점을 맞추어 돌아간다. 검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에게 아들 한명을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하자 위협적인 어조로 그녀를 협박하다가 판사에게 제지당한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형제의 살인을 기정사실화하고, 판사도 이 사건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어머니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다.


그 와중에 링컨은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법정은 요란스럽게 형제들과 그들의 어머니를 몰아세우지만 그는 별다른 항변을 하지 않는다. 그저 증인들에게 주변적인 질문을 묻거나,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등 도무지 핵심에서 벗어난 행동들만을 보인다. 법정 드라마를 기대했다면, <젊은 날의 링컨>은 해당 장르가 약속하는 쾌감을 전혀 주질 않는다. 누명을 쓴 것이 분명한 두 형제들이건만, 링컨은 그 문제를 파고들지 않는다. 검사나 배심원, 그리고 재판에 연루된 모든 이들의 공격과 그 대척점에 선 링컨의 방어는 전혀 조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의 모습은 영웅적이지 않고, 어딘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의심의 과정 속에서 그가 핵심 자체를 교란시키고 싶어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채게 된다. 재판의 중심부에는 아들 한 명을 살리기 위해 결국 다른 한 명을 사형대로 보내야 하는 어머니가 있다. 그도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해서 어머니가 내려야 하는 결단이 그녀의 모든 것을 뒤흔들고 말 것이다. 그는 이 선택 앞에 서서 자문한다.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 과연 정의이고, 법인가. 그것은 인도적인가. 세상의 순리에 맞는가.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두 눈을 뜬 채로 용인할 수 있는가. 그는 이 질문들 앞에서 침묵한다. 그리고 고뇌한다. 링컨의 세번째 고뇌는 이러한 실존적인 내적 격전 속에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링컨은 이 고뇌의 끝에 어떤 해결책을 내놓는가. 그는 우선 결단의 주체를 어머니에서 자신으로 전환시킨다. 이건 사실 이 가족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작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딜레마를 스스로 짊어지게 된다. 그런 다음에 그는 핵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두 개의 파이 중에서의 선택을 미루듯, 그는 첫째와 둘째 아들 중에서의 선택을 미룬다. 의도적으로 무시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번 링컨은 사건의 핵심이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살해 당한 피해자의 친구가 아무도 지목하지 않는 이 사건의 진범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그는 재판 내내 이 점을 파헤치는데 할애하고, 마침내 입증해낸다.


삶에서 처음 겪는 이 투쟁에서 링컨은 승리한다. 이것은 그가 구사하는 전략적 고뇌를 긍정하는 첫 공식적인 사례로 기록될만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링컨의 성공 공식을 읽을 수 있으며, 난세의 리더로 옹립시킬 근거로 내세우게 된다. 신화적 인물의 연대기를 각색하고 재해석을 가미하여 영웅의 고유한 법칙 중 하나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존 포드의 작업은 이미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 승리는 그만큼 링컨의 업보를 누적시킨다. 재판이 마무리된 후,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와는 달리 링컨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법조계의 진출을 정할 때나, 마을 축제에서 파이를 맛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빛을 띤다. 링컨은 이 사건을 통해 더 무겁고 복잡한 인간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다. 이는 그의 존재론적인 구성을 깊고 광범위하게 만들어, 마침내 미국 전역이 안게 되는 심원한 딜레마까지 혼자서 품을 수 있게 할 터이다. 그의 멋진 승리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의 링컨>이 그의 앞날을 고독하고 불안하게 전망하며 끝나는 이유다. 링컨의 미래는 고통과 죽음 그리고 고뇌로 가득차있다. 링컨 본인도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예감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시도때도 없이 농담을 던졌던 건지도 모른다. | 극장전 | 080 | 한국영상자료원 |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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