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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현 Mar 14. 2023

타오름


원작소설을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이치가와 곤은 몇가지 현실적인 각색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인 미조구치에게 금각사가 가지는 의미일 것이다. 잘 알려진대로 <금각사>는 1950년 교토에서 벌어진 방화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이를 르포의 관점에서 재현하지 않고 범인의 증언 중 일부만 선택적으로 빌려와 미에 대한 관념소설이자 치밀한 캐릭터 탐구를 완성한다. 이것은 표면의 사건들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사투가 핵심이다. 때문에 미조구치의 독백이나 심리표현이 중요하다. 그러나 <타오름>은 이 부분을 과감하게 덜어내고, 극 중 사건들만을 충실하게 전개시킨다. 그렇다면 이 사건들의 연쇄만으로도 미조구치의 범죄 동기가 충분히 납득되는지가 작품의 승부처가 될 것이다.


영화가 소설보다 더 강화된 지점이 있다면 미조구치의 아버지일 것이다. 작중 시점에서 그는 <금각사>에서와 달리 이미 죽은 후이다. 미조구치는 그의 유언에 따라 금각사의 도제가 되었으며, 해당 절의 노사와 유사부자의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생전에 그에게 말해주었던 금각사의 아름다움을 일종의 이상향처럼 마음 속에 새겨두었다. 그러므로 미조구치에게 미라는 관념은 소설에서처럼 스스로 도출해낸 결론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인 셈이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의 시신을 태우는 불을 금각사의 형상 위에 겹쳐 보고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죽었으므로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다. 그에 대해 미조구치가 가진 이미지는 일종의 멸균 상태에 있으므로, 가장 순수하고 절대적인 모습을 유지한다. 이에 가장 가까운 존재는 금각사이며, 그 외 다른 인물들 역시 미조구치의 척도에서 저마다 다른 위치를 점유할 것이다. 일대일로 대입해보자면, 금각사는 아버지의 찬미의 대상, 노사는 그의 대체자, 미조구치의 두 친구들은 그의 음과 양, 그리고 어머니는 그를 배신한 부정 (不正)의 인물이다.


이 중 가장 진폭이 큰 인물은 바로 노사이다. 미조구치는 그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노사 역시 절친의 아들을 특별한 애정을 갖고 보았기 때문에 초반에는 이 둘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허나 그 관계는 곧 틀어지게 된다. 직접적인 원인은 매춘부 폭행 사건에서부터 찾을 수 있겠다. 미조구치는 미군과 같이 금각사에 온 매춘부를 밀쳐서 실수로 뱃속의 아기를 유산시킨다. 이를 알게된 노사는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되나, 미조구치도 우연히 그의 약점을 잡게 되어 노사가 그런 평가를 내릴 자격이 없는 위선자임을 폭로한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가장 알기 쉬운 방화의 동기는 노사와의 갈등이다. 절의 후계자는 그의 최종 결정이므로, 노사는 실질적으로 금각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자다. 그런 노사가 그를 밀어냈으니, 미조구치에게는 원한 관계가 충분히 성립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미조구치는 애시당초에 왜 매춘부를 밀쳐서 그런 빌미를 제공해준 것인가. 이 대목에서 영화와 책은 해석을 달리한다. <타오름>에서 그는 매춘부가 금각사에 무리해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개입한다. 금각사를 그녀로부터 지키겠다는 본능적인 생각에서다. 즉 그는 미의 정당방위로서 죄를 짓게 되고 이는 연쇄작용을 통해 더 큰 죄로 번진다. 그렇다면 영화는 그에게 적어도 항변의 여지를 준 것이다. 반대로 <금각사>에서 이 장면은 매우 기이하게 표현된다. 매춘부는 이미 동행한 미군에게 맞고 있었는데 미조구치가 나타나자 미군은 그에게 폭행의 바톤을 넘겨주고는 말한다. 자, 이제 네가 해봐. 그 순간 오후의 태양과 미군의 파란 눈과 금각사가 중첩되면서, 미조구치는 무언가 홀린듯 매춘부를 마구 짓밟는다. 그 일을 저지르면서 심지어 희열을 느꼈다고 하는 그는 과연 선한 인물인가. 그가 추종하는 금각사, 그리고 더 나아가 미는 본질적으로 악의 속성을 내포한다. 파괴가 없는 아름다움은 불완전하다. 그러하여 미는 세계의 안정성을 적극적으로 뒤흔들기를 희망한다. 미조구치는 미의 착실한 제자답게 이를 행한다. 영화에서의 그는 방화를 마친 후 자살하지만, 책 속에서는 태연하게 살아남아 담배를 피우는 것도 같은 이치로 보인다. 불에 타오르는 금각사는 결국 그 심연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저마다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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