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 친정 엄마가 키워주셨다.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각별하다.
주말에도 할머니네 아침 먹으러 간다고 하면 일찍 일어날 정도로...
새 학년 시작하기 전에 오랜만에 데이트를 한다고 할머니와 아이들이 명동에 나갔다.
나는 70을 바라보는 엄마가 애들한테 이리저리 끌려다닐까 걱정을 했는데,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맘대로 가고 싶은데 다 가보라며 아이들하고 싶은 것을 들어주고 싶어 했고,
아이들은 또 할머니 힘들까 봐 할머니가 하자는 대로만 했단다. (그러면 누구 맘대로 한 건가?)
아이들도 할머니가 예전 같지 않은 걸 아는지, 말하지 않아도 먼저 배려하는 모습에 내가 괜스레 울컥했다.
아이들이 다 큰 지금 돌아보니, 친정 엄마가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한 일이 셀 수 없이 많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때, 할머니가 한 입씩 먹여주던 나물들과 젓갈들, 충청도 음식들 덕에 새로운 음식에 대해서 큰 거부감 없이 한 입 먹어보기도 잘하고 (물론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있지만;)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할머니가 늘 옆에서 따뜻하게 보듬어주듯이, 스스로가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또 하면 되지' 하고 다독일 줄도 알고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할머니처럼 당당하게 물어보기도 하는 용감함도 있다.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배운 세상 사는 지혜를 아이들은 최단코스로 이수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우리 엄마는 또 말씀이 많은 편인데, 이 부분이 아이들이 말을 빨리 하게 하는데 크게 일조한 것 같다.
말 못 하는 아가들에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모든 행동들에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셨으니, 남들은 '아빠 해봐', '엄마 해봐' '딸기!' 이런 거 들을 때, 우리 아이들은 방대한 생활용어를 습득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이게 여기로 가면 엉켜버리니까, 이쪽으로 빼야지. 그렇지 요롷게. 이렇게 되야지만 나중에 뽑아 쓸 때 편하고 그런 거야, 알았지?'
아이들이 한 단어씩이라도 말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아이들 대답이 귀엽고 재미있고 행복해서 더 많이 얘기를 하셨던 것 같다.
이제 그 꼬꼬마들이 10살이 훌쩍 넘어서는, 할머니 핸드폰 선생님이 되었다.
할머니도 인스타그램에 유튜브 좀 해보려고 하는데, 어디 그게 잘 되나?
그럴 땐 아이들이 쪼르르 달라붙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준다.
뭔가 App들의 공통적인 메뉴 위치와 설정들 위주가 아닌, 할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한다. 이를테면,,,
'여기를 누르면 글을 쓸 수 있어'
'여기를 누르면 좋아요를 하는 거야'
'링크를 다른 사람 카톡으로 주려면 이렇게 해야 돼'
저렇게 해서 언제 다 설명하나 싶지만, 체계적인(?) 내 설명보다 당장 필요한 것만 실속 있게 알려주는 다정한 손녀들 설명이 훨씬 좋다고 하신다. 쉽다나? -_-a
할머니랑 명동을 한 바퀴 다 돌고 남대문시장까지 들러오면서 머리끈 100개를 사 왔단다.
손녀들이 늘 머리끈 없다고 투덜대는 것이 눈에 밟혔는지 화끈하게(?) 100개를 사주셨나 보다.
엄마답다 싶어 웃으며 머리끈 한 뭉치를 바라보는데, 불현듯 저거 다 쓸 때까지 엄마가 건강하게 사실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급 슬픔으로 한참 동안 일렁였다. 고작 머리끈 한 뭉치 때문에 이럴 일인가 싶었지만, 그랬다.
할머니는 이번 겨울 방학에도 아이들에게 차곡차곡 추억을 만들어주셨다.
- 할머니랑 김장하기
- 할머니랑 김밥 싸기
- 할머니랑 남대문 시장가기
그렇게 엄마는 또 한 번 딸을 키우고 있다.
두 번째라 그런지, 연륜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아이들이 말하는 모든 것에 마치 별 것 아니라는 듯 초월한 듯, 더 넓고 폭 감싸는 마음으로 혼낼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다그칠 것도 없이 아이들 하는 대로 다 받아주면서 그렇게 아이들과 사랑을 쌓으신다.
오랫동안 건강하시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