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환자 관계 속 신뢰문제
아마 의사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 아닐까? 병원에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명확히 아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만, 현실적으로 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소위 말하는 "돌팔이"가 되어 여러 환자들의 입에 다음과 같이 오르내리게 된다.
이런 병도 진단 못하는 돌팔이가 의사라고 건보재정을 축내고 있구나!
물론, 정말 수준 이하의 진료를 하는 의사가 없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래와 같이 간단한 오해에서 생긴 인식이다.
오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선, 진료의 '비용효율성'에 대한 개념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비용효율성이란, 진료에 들어간 비용과 결과 사이의 비율을 말하는데, 진료의 '가성비' 정도로 이해하면 편리하다. 미슐랭 투스타를 자랑하는 정식당과 편의점 컵라면 중 어떤 것이 더 맛있냐는 질문엔 당연히 전자를 고르겠지만, 직접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점심메뉴로는 선뜻 전자를 택하기 어렵다. 이런 가성비는 진료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모든 질병에 대한 즉각적이고 명확한 진단"을 위해선 지금의 의료비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부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감기는 특별한 치료를 필요로하지 않고, 증상이 심한 경우에 대증치료를 조금 해주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지나면 잘 낫는다. 그래서 기침으로 내원한 환자들에게서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면 그냥 보내거나 증상관련 약을 좀 처방하고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 이후 내원날짜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절대로 "기침만 하는 환자는 무조건 감기라서"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진단명을 묻는 환자에게 의사는 "100% 감기입니다"라는 쉬운말을 못 해준다.
기침으로 내원한 환자가 단순하게는 감기일 수도 있고, 심각하겐 폐암일 수도 있는데, 몇 가지 질문이나 간단한 신체검진만으로는 둘을 구분할 수 없다. 폐암을 진단하기 위해선 x-ray에서 시작해서 CT나 PET CT, 기관지내시경 같은 여러 검사를 해야 하는데, 바닥날 건보재정은 둘째치고서라도, 기침 한 번 했다고 100만원을 가볍게 넘는 비용을 내라고 하면 흔쾌히 지불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기침환자 등쳐먹으려는 "사기꾼"이 되어 있을것이다.
사실 의사들은 다들 사기꾼과 돌팔이의 두 극단 사이에서 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있는것 아닐까?
한 10년쯤 정신없이 춤추다 보면 점점 신명이 나겠지.
애초에 저런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의 진단명을 즉시 알고싶어하는 환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만약 실제로 다른 증상이 없는 폐암이었고, 처음부터 CT를 찍지 않는 바람에 진단이 늦춰져서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리스크를 지는 대신, 의료비를 절감하는 데에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다(물론 CT를 마구잡이로 찍으면 피폭 때문에 생기는 건강 피해가 있어서 정확히 들어맞는 예시는 아니지만, 그 부분은 논외로 했다). 차를 타면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 늘어나지만, 운전으로 얻는 효용을 위해 도로에 나가는 운전자들처럼.
문제는 개인이 이런 합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간단한 감기도진단하지 못하고 진단명을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도 안 해주는 돌팔이가 생겨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의문을 갖는 사람마다 충분히 이해가 될 때까지 붙잡고 설명해주면 좋겠지만, 그 시간이 늘어날수록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결국 앞과 똑같은 비용절감 논리에 따라 환자들의 불만을 놔두는 것 아닐까? 잠깐 생각해보면 의사가 돌팔이라는 불만을 같게 하는 것만으로 같은 진료를 싼 값에 제공할 수 있다면, 안 그래도 박살나고 있는 건보재정을 생각할 때, 나름 괜찮은 장사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미리 '의사는 죄 돌팔이 아니면 사기꾼이다'라는 인식으로 욕까지 먹여 놓을수 있는데, 어찌 마다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