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_생각
하기야 없어서는 안 될 것들 뿐이라면, 현실은 슬쩍 손도 댈 수 없는 위험한 유리 세공품이 되어버린다······. 요컨대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집에 컴퍼스의 중심을 두는 것이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친구의 생일을 기념하며 만나 나눈 대화 덕분이다. 산책을 하다 들어간 동아리 방 책상 위에 "Abstract Algebra"라는 책의 발음이 무엇인가?를 소재로 시작된 이야기는, 요즘 듣고 있는 수업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위상수학에 대한 대강의 설명을 듣고, 위상수학에서 서로 같다고 여겨지는 도형들 간에, 실수들 사이의 대소관계와 같은 위계 관계가 있는가? 위상공간에 대한 집합적 정의에서 시작해서 기하학적 위상수학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하면서 명확한 답변을 받거나 답변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잊고 살던 수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한없이 자유로운 사고의 확장은 날 즐겁게 한다. 무한집합들의 크기를 비교하다 생긴 연속체 가설이, 집합의 원시적 정의에서 비롯된 러셀의 역설을 보완하는 과정의 끝에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만나는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초원에 누워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쳐다보는 기분이 든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당위와 꼭 있어야 하는 필요의 문제들로 가득찬 유리 궁전으로 늘상 흘러드는 모래를 퍼올리는 일상 속에서, 떠가는 구름을 보며 일상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앞잡이류 곤충을 찾아 떠나지만, 결국 모래 속에 갇히게 되는 모래의 여자 속 주인공이 겹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