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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Dec 24. 2018

파랑으로 여름나기

 올 여름은 유난스레 더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여름을 견뎌내는데, 많은 사람들이 에어컨과 선풍기를 제일로 꼽고, 복날마다 개고기나 삼계탕을 먹어 보신을 꾀한 사람도 많다. 옛 선비들은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았고, 하루 10시간 이상 에어컨 바람을 쐰다는 중년의 택시기사도, 찬바람에 넌더리를 내며 학창시절 자주했던 등목을 추억하며 찬물을 받아 발을 담근다.


<고사탁족도>, 이경윤

 여러 방법들 중 시원한 물로 목욕하기를 가장 좋아한다. 처음부터 차가운 물은 힘드니 미지근한 물을 받아 들어가는데, 적응이 되고 찬 물을 틀면 끓는 물  속 개구리가 된 것 같다. 불꺼진 욕실에서, 눈을 감은 채 온몸에 퍼지는 시원함을 느끼다 보면, 어두운 시야에 푸른빛이 감돈다.    


  청량감 외에도 파랑이 갖는 수많은 상징은 언어에 묻어나온다. 한국에서 청색은 “새파랗게 젊다” 혹은 “독야청청”과 같은 표현에서 드러나듯 젊음이나 절개 등을 상징하고, 영어권에서는 blues라는 음악 장르나 귀족을 칭하는 blue blood라는 표현에서처럼 우울이나 고귀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파랑이 주는 다양한 느낌은, 여러 예술작품들에 활용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예시는 파랑새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혜은이의 노래 「파란나라」로 잘 알려진 파랑새는 노랫말처럼 꿈, 행복, 사랑을 의미한다. 파랑새는 노래 이외에도 동화나 영화, 소설에서 다루어졌는데, 이들은 20세기 초 쓰인 원작 희곡인 <파랑새>처럼 행복이 멀지 않은 우리들 가까이에 있음을 주제로 했다.

<The blue bird>, 1940, 영화 포스터 


 푸른빛 행복을 찾아 떠난 <파랑새>의 주인공 찌르찌르와 달리, 피카소는 파랑에서 우울과 고통, 죽음을 보았다. 이런 관점은 1901년부터 1904년 사이 「늙은 기타수」같은 피카소의 청색시대 그림에 잘 나타난다. 주로 어두운 파랑계열 색으로 표현된 사람들은 하얗게 질려 생기를 잃은 피부 위로 깡마른 근육을 드러내고, 힘없이 늘어진 관절들과 올리거나 내리지 않고 수평으로 뺀 입꼬리는 다물어진 입과 어울리며 담담히 암울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경직된 인물 뒤로는 청회색 배경이 자리해서 음울한 분위기를 가중시키는데, 색감과 달리, 인물 쪽 배경은 경계와 평행한 방향으로 표현되어 고통 속 인물을 감싸준다는 점이 따듯하다.


 

<늙은 기타수(좌)>, <자화상(우)>,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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