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플릭스 Feb 14. 2018

어른이 되어 다시 본 '따돌림'

넷플릭스(Netflix); 루머의 루머의 루머 13 Reasons Why

은따;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는 ‘은따’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런 단어도 있구나’ 하며 그저 웃어넘겼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성장하는 시기에 괴롭힘 문제는 전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피해자는 본인이 피해자임을 인식하지만, 가해자는 본인도 모르게 피해자를 괴롭히고 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 해나를 자살로 몰고 간 그녀의 친구들도 테이프에서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 때문은 아닐 거야’라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혀로, 사진으로 그리고 글로 그녀의 숨통을 끊고 있었다.


    클레이에게 배달된 테이프 13개가 이 드라마를 13개의 에피소드로 구분한다. 각각의 테이프에는 해나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줬던 상처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테이프를 순서대로 들으며 드라마를 이끄는 클레이는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기까지 굉장한 내적 고통을 겪는다. 드라마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먼저 테이프를 들은 친구들도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마침내 클레이는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는 테이프를 듣는다. 그리고 해나가 자살한 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며 오열한다. 이 테이프에 담긴 이야기를 친구들로부터 직접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씻으려는 듯이 클레이는 사실관계 확인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저스틴 폴리(브랜든 플린 役), Netflix

 

   저스틴의 여자친구 제시카를 강간한 브라이스의 이야기는 이 드라마를 본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생생하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청소년기 남자 친구들 간 의리에 존재하는 이면을 보여준다. 제시카와 브라이스가 함께 있는 방 문을 바라보며 저스틴은 드라마 내 ‘쿨 키즈(Cool Kids)’ 이미지와는 다르게 바닥에 넘어져 눈물을 쏟는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여자친구가 강간당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심정을 이 장면에서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 저스틴이 브라이스를 끝까지 말릴 수 없었던 이유는 브라이스에게 얕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기에 있는 그에게는 강간이라는 범죄보다 친구들 사이에서 쿨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알렉스 스탠달(마일스 하이저 役), Netflix


    혼자서만 유독 샛노란 머리를 하고 코에 피어싱을 해서 알렉스가 눈에 띄었던 건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테이프에 등장하는 다른 친구들의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해나, 제시카, 알렉스 셋의 모임에서 제시카와 몰래 사귀면서 그 모임을 끝냈을 뿐. 알렉스는 경찰인 아버지의 힘을 빌려 본인의 잘못을 면하게 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진실에 마주하기 위해 노력한다. ‘달러 밸런타인’에서 해나를 이용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 했던 학생회장 마커스, 자신이 게이임을 숨기기 위해 해나를 궁지로 몰았던 코트니 등.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잘못을 숨기거나 합리화하기 위해 입을 맞추고 있었지만 이들이 보기에 알렉스의 자살은 이해할 수 없다. 큰 노력 없이도 잘못을 면할 수 있고, 그 잘못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크지 않음에도, 알렉스는 자살을 택할 만큼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많은 의문을 남겼다.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쏠 정도로 힘들었다면 그는 왜 클레이처럼 적극적으로 진실을 파헤치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그 사건에서 자신을 쉽게 빼내 준 것처럼, 해나의 자살 사건을 아버지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해나의 편이었던 건 아니다. 테이프의 주인공들이 한 목소리로 ‘해나가 말한 건 거짓이야’라고 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실제 대면을 하지 않는 이상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모른다고. 모든 에피소드를 끝내고 난 뒤에는 다행히도 생각이 바뀌었다. 해나는 사실이든 아니든 친구들의 괴롭힘에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충분히 괴로웠다. 상담을 하러 온 해나의 마음보다 객관적 증거와 사실관계를 먼저 따지는 포터를 보며 학교, 더 넓게는 사회도 해나를 죽인 가해자였다.


    해나 같은 ‘은따’는 ‘왕따’보다 충분히 괴로울 것이다. 웬만한 관심으로는 은따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 특히 청소년이라면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관심은 쓸모없다. 어설픈 관심은 오히려 그들의 문제에 부채질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우리가 따돌림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