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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Kim Mar 05. 2020

그의 문서 - 01 나가는 돈, 변동비 관리대장

지출 관리를 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뱅크샐러드를 활용하여

인쇄한 금전출납부


 킴은 어렸을 때부터 금전출납부를 써 버릇했다. 매주 용돈을 500원씩 받았다. 한글문서로 형식을 만들어 인쇄해두었다가 돈을 쓸 때마다 연필로 한 줄씩 적어 내려갔다. 월말에 결산을 했는데, 사용한 금액과 수중에 남은 돈의 합이 월초에 가지고 있었던 금액과 용돈의 합과 딱 맞아 들어가는 게 재미있었다. 그 파일은 어느 대청소하던 날에 버려졌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 창고에 있을지도 모른다.



현금봉투


 관리하는 액수가 조금 올라가자 현금봉투를 사용했다. 월초가 되면 용도별로 다른 봉투에 돈을 일정하게 넣어두고, 쓸 때마다 봉투 표면에 금액과 사유를 적었다. 월말에 봉투 안에 돈이 남아있으면 기타 봉투에 넣어두곤 했다. 모자라면 기타 봉투에서 꺼내오기도 했다. 기타 봉투에 돈이 모이는 것을 보면 신이 났다. 매달 빠듯해도,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면 큰돈을 쓸 수 있었다. 기타 봉투는 정말 특별했다. 종종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이 큰 지출이 있곤 했는데 이때마다 기타 봉투가 도움이 되었다. 종이가 너무 해지면 새 봉투로 교체했다. 운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엑셀


 해외로 나갈 일이 종종 생겨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남들보다 신용카드를 일찍 만들었더니 다른 사람 몫까지 돈을 지불하고 나중에 돌려받는 일이 흔해졌다. 매달 쓰는 금액이 일정하지 않았다. 용도별 예산을 계획할 수 없어 소비 금액을 관리하는 것은 포기했다.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쓰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엑셀을 켰다. 엑셀이 제공하는 가계부 서식을 활용했다. 매달 말 카드 명세서가 날아오면 엑셀에 하나하나 적었다. 그 달에 무엇을 얼마나 썼는지 용도별로 합산하여 총액을 기입했다. 간혹 거래처만으로는 출처를 알 수 없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하고 이용하는 온라인 몰도 뒤졌다. 두 달 밀리면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썼다.



가계부 앱


 그런데 엑셀 수식에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살펴보고 검색을 해도 무엇 때문에 오류를 일으키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 기능 좋은 스마트폰 앱이 많이 생기고 있던 때라 가계부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분명 멋진 앱들이 잔뜩 있을 거야! 아쉽게도 대부분의 앱들은 엑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는 카드 사용 내역을 자동으로 받아오는 기능이 있었다. 킴이 가장 원했던 것은 ‘내가 한 달에 순수하게 얼마를 쓰고 있느냐’를 편하게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슬프게도... 금액 수정을 할 수 없었다. 결제하고 회사에서 추후 받는 교통비나 부모님이 요청하여 대신 주문한 물건값, 친구 몫까지 함께 계산했다가 나중에 현금으로 돌려받는 경우가 모두 내가 쓴 돈이 되어버렸다. 다른 하나는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오는 문자를 통해 내역을 추적하는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5만 원 이하의 결제 내역은 문자로 오지 않는다(유료다). 킴은 언젠가는 개선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두 번째 앱에 수기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오류투성이인 엑셀을 계속 쓰고 싶지는 않았다.



변동비 관리대장


 킴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결국 소비 관리였다. 이번 달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계산하는 것이 선결과제였다. 소비를 추적하기에 적합한 앱을 찾아냈고, 이것으로는 관리하기에 충분하지 않아 변동비 관리대장을 만들었다. 나 혼자 잘 쓰자고 만들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종종 동일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쓸 수 있도록 정리했다. 사본으로 저장하면 쓸 수 있다. 사용 방법은 일단 관리대장 안에 적어두었다.


변동비 관리대장 바로가기





양식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발전되었다.


1단계: 상시 지출내역 추적

 사용한 내역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은 꽤나 귀찮은 일이다. 나는 뱅크샐러드 앱을 활용한다.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지만) 은행의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기만 하면 모든 내역을 자동으로 가지고 와주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금액을 수정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시스템을 마련하는 시점에 이 기능을 갖춘 앱은 뱅크샐러드가 유일했다. 지금은 좋은 앱들이 더 많아진 것으로 안다. 앱 이용만으로도 매달 실제로 사용한 금액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단계: 월평균 지출비용 확인

 앱을 통해 돈을 들쭉날쭉하게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충 살펴본 결과 가장 돈을 많이 쓴 달과 적게 쓴 달 사이에 30만 원 정도 차이가 났다. 예산이라는 기준을 설정할 수 있었지만 꼭 과소비를 하지 않아도 써야 하는 큰돈이 있는 법이다. 또, 지출 액수를 추적하기에는 앱이 좋았지만, 왜 예산보다 돈을 더 썼는지 알 수 없었다(물론 화면에 나오기는 한다. 그런데 구매 목록을 본다고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달마다 비용이 일정하지 않으니, 평균 예산을 잘 잡은 것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앱의 예산 기능은 매달 동일한 금액을 할당한다. 그런데 의류에 10만 원을 배정했다고 하더라도, 매달 10만 원을 일정하게 쓰지는 않는다. 어쩌다 가는 여행비용을 예산에 추가하면 모든 달의 총예산이 늘어난다. 비싼 공연을 예매하여 돈을 많이 쓴 달은 약속을 줄여 금액을 맞추곤 했다. 결과적으로 앱에서 제공하는 예산은 단기적인 한 달 관리 용도가 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소비패턴과 앱의 예산 책정 방식이 다르니, 예산보다 적게 썼다고 뿌듯하거나 더 쓴다고 자책할 수 없었다. 앱은 매주, 매달 보고서를 보내주었지만 주간 보고서는 의미가 없었고(운동 등록 주간은 언제나 초과다), 월간 보고서는 다른 달과 비교하여 보기가 마땅치 않았다.


3단계: 유지비 배제

 문제가 또 있었다. 외식 항목에 쓰는 돈을 살펴보자. 점심 비용은 액수가 적지만 고정적으로 언제나 발생하고, 약속이나 뒤풀이 비용은 가끔이지만 액수가 크다. 그러나 앱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카테고리 계산으로는 이 둘의 구분이 확연히 보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별도의 양식이 필요했다.


 비용 관리를 하기 위해 고정비를 먼저 파악하라고들 한다. 통상적인 고정비는 정말 고정되어 있다. 보험, 예적금, 관리비, 통신비는 한 달 단위로 바뀌지 않는다. 이것을 알기 위해 관리대장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그냥 계산한 다음에 이 돈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간주해도 괜찮다(고정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유지비는 다르다. 실질적으로 변동비에 속하고 매달 액수 차이도 나지만 꾸준히 발생한다. 내 경우에는 회사로 출퇴근하는 교통비, 회사에서 먹는 점심값, 운동 학원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인체로 예를 들어보자. 고정비가 기초대사량이라면 유지비는 활동 대사량이다. 활동을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집에서 꼼짝 앉고 누워있는 것이다. 나는 이 비용은 조절이나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 달을 살면서 필수로 들여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할 때 바쁜 정도에 따라 주 2회를 끊기도 하고 주 3회를 끊기도 한다. 당연히 금액 차이가 난다. 운동 후에 집까지 걸어갈 때도 있고, 대중교통을 탈 때도 있다. 또, 머무는 지역에 따라 평균 식비에 차이가 생긴다(이 금액은 생각보다 크다). 출장이 잦거나 연휴가 많거나 휴가를 가는 달의 점심값은 확연히 다르다. 들쭉날쭉하거나 말거나 대충 얼마나 쓰는지만 알면 충분하다. 내 일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언제나 매달 이 정도의 비용은 나갈 것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돈을 어떻게 썼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위 논리에 따르면 변동비에서 유지비를 제거해야 관리할 대상이 명확해진다. 유지비 파악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변동비를 관리하다 보니 따라온 덤이며, 그 주목적은 신경 쓰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제 내 머릿속의 변동비는 유지비를 제외한 나머지다. 사용하는 비용에서 유지비를 빼고 나면 비정기적인 것이 남는다. 이 즈음에서 변동비 관리대장이 필요해진다. 나는 변동비를 경조사, 의류 구매/헤어 스타일링, 외식, 취미 및 문화생활, 여행, 그리고 기타로 나누었다.


4단계 : 변동비 기록

 변동비를 기록하는 것은 유지비를 기록하는 것보다 쉽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적어두면 된다. 회사나 집이나 어디서나 접근 가능하도록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만들었다. 변동비를 쓸 때마다 옆에다 사유를 적어두었더니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현 양식의 유지비는 총소비에서 변동비를 빼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유지비가 변동하는 경우에는 이유를 잘 모른다. 그저 대강 알고 있을 뿐이다. 이번 달에는 운동을 을 많이 갔지. 요 근래에는 비싼 밥을 먹지 않았어.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내 유지비 연평균 금액은 지난 4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반면 변동비는 해마다 차이가 크다. 변동비 관리대장에 그 이유가 담긴다. 또한 매달 변동비 금액을 비교함으로써, 내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쓰는 적정 비용과 쓰지 않아도 되는데 욕심부린 비용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5단계 : 앞으로

 내가 이 양식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매달의 유지비와 변동비, 그리고 총지출액을 월별로, 그리고 연별로 비교해서 보기가 좋다는 것이다. 일 년 동안 변동비 관리대장을 쓰면 1년의 모든 소비를 5분 만에 파악할 수 있다. 매년 기록을 쌓았더니 연별로 월평균 소비도 알 수 있었다. 매달 기록을 하면서 욕심이 생겼다. 소비만 작성하는 것이 아쉽고 앱에서 자산 정보도 나오니, 자산과 증가액, 수익을 추가했다. 수익 기준 소비 정도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연마다 항목별로 금액을 확인하기 위해 월평균 총 변동비와 항목별 변동비도 추가했다. 이제는 내 생활패턴을 고려한 연예산까지도 배당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이 글을 처음 쓴 시점에는 없었지만 배포되는 시점에는 연 예산도 양식에 추가되었다).  


 이번 달에 예산 N만원을 정확히 지켰느냐를 고려하기보다는 일 년에 변동비를 어떻게 썼는지 이해하고 꾸준히 조정하는 것이 내 사고와 생활에 맞았다. 옷 한 벌 안 사 입고 전시 한 번 안 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무절제하고 싶지도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준을 파악하고 설정하는 과정이 되겠다.


 그렇게 양식이 넘쳐나는 세상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변동비 관리대장 바로가기


 덧. 브런치에 글을 올린 소식을 전하자 친애하는 Grace Lee가 사용 후기를 남겨주었다. 고마워요.

공유해주신 시트를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모으고 있는 일일 지출목록이랑 같이 병행해서 쓰고 있는데, 작은 단위의 소비는 일일 지출목록에서 파악하고 연간 시트는 한 달 단위의 예산 사용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일일 가계부만 쓰면 매일매일 지출만 눈에 들어오는데 연간 시트가 있으니까 지난달 대비로 이번 달에는 예산을 얼마나 어디서 절약해야 하는지가 바로 보이고 자산 증가율도 같이 파악 가능해서 좋아요.

베타테스터 Grace Lee, 2개월 사용자



킴은 기록의 달인이다. 기록은 정리로 이어진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그가 사용하는 도구와 그 방법에 대해서 알려달라는 요구를 종종 들어왔다. ‘그의 문서’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정리하는 곳이다. 개인이 쓰는 양식에 불과하지만, 계속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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