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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Aug 01. 2019

진짜 조용하네요. 이 양반, 진짜! 죽었나요?

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45

사람 45     

                  

              진짜 조용하네요. 이 양반, 진짜! 죽었나요?     


그래서, 그렇게, 죽은 이들은 고요했는가.      



지구를 얹어놓은 것처럼 꽉 덮인 눈꺼풀, 세상의 말은 다 삼키고 가겠다는 듯 숨길을 막은 입술, 정말 그는 죽었는가.     


요란한 세상살이에 늘 쥐었던 주먹이 풀어진다. 처음으로 그의 손바닥과 손금을 본다. 손등 가까이까지 색연필로 그어놓은 것 같은 굵은 생명선이 보인다. 그의 나이 육십구 세, 태어날 때 까지고 나온다는 운명이란 것에 또 속았다.     


“구십은 너끈히 사셔야 하는 명줄인데...  내가 그 명(命)을 잘라먹었나... 너무 일찍 가셨어요.”     


죽은 이보다 일곱 살이나 연상이라는 살아 있는 그의 아내가 자신의 손바닥을 그의 손에 포갠다. 삶과 죽음의 합체가 저리도 쉽다니... 그러나 산 자의 체온은 죽은 자의 체온을 데우지 못한다. 오히려 산 자의 체온이 내려간다. 그래서 떨고, 그래서 운다.     

온 힘줄을 모아 살 빠진 다리로 걷는 꿈을 꾸었던 그의 발목이 하얗게 탈색된 나뭇가지 같다.      


©픽사베이


“이 다리로 평생을 종종거렸어요. 나이 많은 마누라 배곯을까 봐 벌목장으로 토목 공사판으로 한여름 지하방 선풍기 날개처럼 밤낮없이 돌아다녔어요.”     


나이 많은 아내의 입에서 나온 한여름, 지하방, 선풍기 날개, 라는 말! 한 사람의 일생이 세 단어로 압축된다. 한여름 지하방 선풍기 날개가 사라진 그의 아내가 울음으로, 땀으로, 온몸이 젖고 있다.        


진구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삼 개월 전 그가 병원에 입원하던 날이 떠오른다. 그는 왼쪽 쇄골 아래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인공심장박동기를 삽관하고도, 산소 탱크까지 단 몸으로 실려 왔다. 사십 대 때부터 자력으론 순탄한 호흡이 불가능해 삽관한 인공심장박동기는, 그 사이 네 차례나 교체 시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고도 일을 쉬지 않을 만큼 잘 버텨왔는데, 일 년 전 일하던 산에서 넘어지는 나무에 깔린 이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부러진 뼈는 붙었으나 몇 달 누워 있는 동안 심장 기능이 급속도로 떨어진 게 이유였다.      


“저 양반 심장은 넘치게 뛰었대요. 동전 같은 저 기계를 속에 넣고도 산으로 공사판으로 그렇게 모진 일을 했다는 게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대학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하는데 집으로는 언제 어떻게 될지 겁이 나서 못 데려가겠고, 요양원은 평생 나 벌어 먹인 사람 버리는 것 같아 지하 연립을 팔았어요. 다행히 월세를 놓는다길래 이사 안 가고 그냥 그 집에서 월세를 살아요. 그렇게 해서 그 돈으로 요양병원으로 오게 됐어요.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고 간병하시는 분들도 있는 요양병원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오는데, 어찌나 좋던지요. 처음으로 우리가 부자 같던 날이었어요. 그래서... 누가 묻지도 않는데 우리 남편 지금 요양병원에 있다고... 요양원 말고 요양병원 하며 잔뜩 힘을 줘... 세상에 그런 자랑을 다 했네요. 제가요.”     


남편이 죽었는데 진구 어르신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보다 그의 삶을 우리에게 쉴 새 없이 말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받은 게 많은 사람이다. 진구 어르신 부부는 참 잘 살아온 사람들이다. 죽은 사람 앞에서 그 죽음의 애통함보다, 그와 함께 했던 삶을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그랬다.      


©픽사베이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건 그런 거였다. 존중하고 존중받는다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했고 평생이 서로에게 고마웠던 사람들은 상대가 죽으면 죽음보다 삶을 말했다.      


살았던 시간은 그래서 정직한 것이다. 사람은 죽었는데 그가 살았던 시간은 오히려 더 확실하게 살아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망선고가 끝나자마자 체온도 아직 식지 않았는데 살았던 시간 먼저 백골이 되는 사람도 있다.      


“면 종류를 참 좋아했는데... 특히 냉메밀을 참 잘 드셨어요. 어쩌다 외식하면 두 판 세 판도 거뜬했거든요. 그렇게 숨이 찬데도 산도 얼마나 잘 탔게요. 다람쥐 같은 양반이었어요. 지하 연립이지만 우리 집 처음 샀을 때, 제게 언질도 없이 집 명의를 제 앞으로 했더라고요. 부부지만 제가 나이가 많으니 그것이 맞다면서요.”     


시신 수습은 끝났지만 나는 그녀 앞에서 물러나올 수가 없다. 이웃에 사는 사람 붙들고 일상을 이야기하듯 하고 있는 그녀를 어떻게 혼자 둘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이 말하고 있는 당신 남편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니라는 말이, 그녀 말에 맞장구가 되어 안에서 솟구친다.     


©픽사베이


“참 조용하네요. 산소 탱크 돌아가는 소리도 끊기고, 저 양반 숨이 내쉬어지지 않아 시퍼렇게 찡그려지던 얼굴도 확 펴졌고, 듣는 사람 오금이 졸아들 만큼 뻑뻑하던 가래도 다 어디 갔데요? 진짜 조용하네요. 진짜, 죽었나요?”     


고개를 끄덕였던가? 잘 모르겠다. 이미 의사는 진구 어르신의 이름 석 자는 물론 날짜와 시간까지 정확한 발음으로 우리 앞에서 그의 죽음을 말했다. 간호부에서는 그의 몸에 달렸던 선들을 다 빼냈고, 요양부에서는 새 기저귀와 새 환의로 그를 정돈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묻는다.     



진짜, 죽었나요?     



“살았을 때는 천지사방으로 일 다니느라 혼자서는 숨도 못 쉴 만큼 요란했는데... 죽고 나니 왜 이렇게 조용하데요? 그날 꿈자리 사나웠는데... 그 산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안 보냈으면 그 나무에 깔릴 일도 없었고, 그랬으면 이렇게 빨리 가지도 않았을 텐데... 그놈의 돈이 뭐라고 돈, 돈 했네요. 자기가 뼈 빠지게 벌어 장만한 집 팔아 다 쓰게 해 주려고 했는데... 그것도 다 못 쓰고 이렇게 가네요.”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들이 병실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죽은 아버지와 살아 있는 어머니를 보고 있다. 아버지 머리맡에서 가동을 멈춘 채 서 있는 산소 탱크가 아들을 보고 있다.      


“진짜 조용하네요. 세상이 이렇게 조용한 거 처음 보네요. 이 양반 진짜 죽었나요?”     


진구 어르신의 아내가 또 묻는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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