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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Aug 05. 2019

우리 언니는 지금 '죽음 잠'을 자는 거라고요

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46

사람 46     

               우리 언니는 지금 ‘죽음 잠’을 자는 거라고요     


“우리 큰 언니 왜 저렇게 잠만 잔대요? 어제도 그제도 통 깨어 있는 걸 못 보네요.”     


민자 어르신의 여동생이 또 묻는다. 벌써 네 번 째다. 그녀가 입고 있는 흰색 마 블라우스 앞섶이 눈에 보이게 오르내린다. 그녀의 불안과 답답함이 보인다. 들린다. 만져진다.      


민자 어르신은 대퇴부 골절로 수술 후 재활과 요양을 위해 오 개월 전에 입원하신 팔십사 세 여성 환자다. 수술 상처가 예상외로 잘 아물어 곧 퇴원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노령에다 체력이 워낙 약한 탓인지 기력을 차리지 못하시더니, 한 달 전부터는 잠에 취해 계시는 시간이 하루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식사 때가 되어 억지로 깨우면 밥 한 그릇을 다 받아 드시고도 곧바로 또 잠에 빠져드는 일상이 이어졌다.       


“혼수상태인가요? 조카는 그건 아니라고 하던데...”     

“네. 아니에요. 민자 어르신은 지금 주무시는 거예요. 혼수상태는 의식이 없는 거지만, 민자 어르신은 식사 때 되어 깨우면 일어나셔서 밥도 드세요. 물론 저희가 먹여드리긴 해야 하지만요.”


윤 간호사가 고개를 흔들며 다정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때로는 저런 단호함이 보호자들에겐 약이 되는 위로로 전해진다는 걸 이미 많이 봐 왔다. 


“그렇게 먹고 나면 또 자는 거... 저런 걸 죽음 잠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이제 곧 죽으려고 저렇게 미리 길 만드는 거예요?”     


©픽사베이


설핏 보아도 칠십은 넘었을 민자 어르신의 여동생은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짓이기듯 눈을 닦았다. 진물처럼 번져 나오는 그녀의 눈물이 짙다.     


“옛날 우리 고향에 노환으로 자리에 누운 옆집 어르신이 계셨는데, 저렇게 몇 날 며칠 잠만 자더라고요. 그때 어른들이 그러대요. 저게 저쪽 세상 미리 가보는 죽음 잠이라고. 저러다 진짜 간다고. 그 말이 맞는지 정말 열흘 뒤에는 돌아가셨어요. 생각해보면 그 어른만이 아니었어요. 많은 어르신들이 며칠을 자다가 어느 날 보면 숨이 끊어져 있었어요.”     


죽음 잠?     


드레싱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내 귀와 마음에 삼 음절짜리 단어가 단숨에 들어와 박힌다. 죽음 잠... 죽음과 잠... 외형적으론 가징 비슷하지만 실상은 가장 반대 지점에 있는 두 단어가 조합되자, 신생의 어떤 공간, 어떤 지점, 어떤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픽사베이



그곳에 가기 위해 미리 그곳 탐험을 한다? 이사를 가기 위해선 미리 점찍어 둔 그 동네 그 집을 몇 번이나 가보듯이, 죽음 후의 세상도 저렇게 긴 잠으로 미리 가 본다?       


그렇다면 민자 어르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세상을 보느라 저리도 자고 또 잘까?      


“사람들은 그래요. 저렇게 가는 게 호상이라고. 아프지도 않고, 그냥 자다가 가는 거니 본인도 얼마나 편하겠냐고. 하지만 형제나 가족은 어디 그래요? 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그래도 산 사람인데, 서로 보고 말도 하고 그래야지요. 깨우면 일어나 밥도 먹는다지만 저렇게 깊게 자는데 깨우는 게 맞는 일인가 싶기도 하고...”     


윤 간호사가 일어나 민자 어르신 여동생의 어깨를 감싸 안고 병동 로비 의자로 가서 함께 앉는다. 간호사들의 남다른 따뜻함을 나는 또, 본다. 저런 순간들 때문에 간호조무사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생각이 이어진다.      

병원 직원이라는 입장에서는 서운한 점, 이해불가의 위력 앞에서, 소리치고 대들고 조목조목 따지고 싶은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더 많았던 건 환자와 보호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그들의 태도는, 솔직히 말한다.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들과는 달랐다. 물론 전체, 전부의 간호사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환자나 보호자들을 대하는 마음에,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어떤 마음 하나를 더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픔 앞에서, 그 아픔을 바라봐야 하는 보호자들 앞에서, 간호사들은 아무리 나이가 어린 간호사라 해도 어른이었다. 지휘자였으며, 간호부와 요양부를 막론하고 따르게 되고 따라야 하는 ‘모범’이었다.      


학과 수업과 실습으로 1,520 시간을 이수하고 국가고시까지 대략 일 년이라는 기간을 거친 조무사나, 이론과 실습, 실기까지 각 80시간씩 총 240 시간만 이수하면 시험을 치르고 될 수 있는 요양보호사는 따라갈 수 없는 어떤 정신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적게는 이 년 과정의 간호전문대학부터 시대에 따라 삼 년제, 학부 과정의 사 년제 기간 동안 그들은 이론과 실기만 배우진 않았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며 그들은 자신이 나이팅게일 화 되는 체험을 가졌을 것이고, 그것이 간호 업무 전반에 걸쳐 굳건하게 자신을 지키는 다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픽사베이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빛에서 따뜻함과 존중의 느낌을 읽었을까? 드레싱 카를 끌고 그 앞을 지나가는데 윤 간호사가 슬며시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가 놓는다.     


“샘, 드레싱 많죠? 와상 환자가 많으니 샘들 수고가 너무 크네요.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계시니 우리 어르신들 어떡해요?”     

윤 간호사의 말에 병실마다 꽉 찬 드레싱 일정표를 한 손에 들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던 나는 부채처럼 일정표를 크게 흔들었다.     


“저희야 해 드리면 되지만, 인지 있으신 분들은 아파하시니 그게 힘들죠.”     

내가 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스로가 좋아졌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좋은 것은 따라 하게 되고, 옳은 것은 따라가게 되는구나... 나는 윤 간호사를 다시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또 배웠네요... 그 말이 입안에 가득 고이고 있었다.      

“아이고, 저 아픈 걸 또 해야 되나요? 전에 보니 우리 언니 엉덩이가 손바닥 크기보다 더 넓게 파였던데...”     

민자 어르신 여동생이 갑자기 불쑥 일어나더니 또 훌쩍거린다. 윤 간호사가 다시 그녀를 붙잡아 앉히며 이번엔 두 손을 꼭 잡는다.     


“동생 분은 여기 계세요. 치료하는 거니 아프죠. 하지만 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새살도 조금씩 차오르고 있고요. 그리고 지금 깊이 주무시고 계셔서 잘 모르세요. 그러니 주무시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죠?”      


“그러게요. 얼마나 아프겠어요? 칼에 조금 배이기만 해도 쓰라린데 손바닥보다 더 크게 살이 파였으니... 저렇게 자는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네요.”     


“그럼요. 지금 민자 어르신은 길게 쉬시는 거예요. 죽음 잠이라뇨? 그런 거 아니에요. 신생아들이 쑥쑥 크려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러잖아요? 민자 어르신도 나으시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잠만큼 좋은 휴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동생 분도 울지 마세요. 아셨죠?”     



윤 간호사가 일어서고 내가 막 603호 병실로 들어서려던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못에 발바닥을 찔린 것처럼 우린 둘 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조금 진정되는가 싶던 민자 어르신 여동생이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뭐라고 해도 저건 죽음 잠이 맞아요. 죽으려고 저렇게 자는 거라고요. 얼마나 무서운 곳이길래, 얼마나 멀고 험난한 곳이길래, 같이 가 줄 동무 하나 없이 얼마나 외로운 곳이길래, 저렇게 오래 쉬어 힘을 내야 갈 수 있는 건지... 우리 큰언니는 지금 죽음 잠을 자는 거라고요. 죽으려고 지금 힘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요. 이제 봐요. 우리 어머니도 저렇게 갔어요. 그때는 큰언니가 엄마 지금 쉬고 있는 거라고 간호사 선생님 말과 똑같은 말을 했지만, 며칠 못 가 어머닌 죽었어요. 이 나이쯤 되니까 의사는 아니지만 보입디다. 쉬려고 자는 것과 죽으려고 자는 것은 달라요.”     


©픽사베이


윤 간호사와 내가 서로를 바라보고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죽음 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경한 이 잠이, 그날 이후 내가 가진 언어 목록에 추가되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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