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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Dec 18. 2024

갇혀버린 모든 예술가들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그대를 위하여.

창작을 하는 모든 이들은 갇혀있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기도 하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방 안에 갇혀있기도 하다. 작업실 안에 갇힌 음악가, 

자신의 작은 방 안에 갇혀버린 작가, 페인트와 잉크 냄새가 가득한 화실에 갇혀버린 화가. 

수많은 창작인들은 자신의 공간에 틀어박혀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올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들은 배가 고파도,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도 그 문 밖을 나설 수 없다. 

당장 자신의 체면이 구겨지고,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지라도 그 문 밖을 나설 수 없다. 

지금 나의 영혼을 갈아가며 만들어내는 무엇인가가 쓰레기통에 처박힐 뿐이라도 그 문 밖을 나설 수 없다. 그들이 멍청해 보이는가? 

내가 멍청해 보이는가? 

그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내 가족들이 나한테 고통당하는... 나도 당장 그래, 나도 뒤질 것 같아, 힘들어!... 그런데 내가 지금 여기서 벗어나서, 정말 무슨 사이드 잡이라도 도 하나 구하면 당장이라도 생계에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여기서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다 좋은데, 그 알바 자리 한 번이라도 내가 갔을 때, 내가 다시는 이 작업실에 돌아오지 못할까 봐... 그렇다. 
故 신해철의 2014년 11월 2일 [속사정쌀롱] 방영 중

창작자는 절박하다. 예술가는 절박하다. 

창작이라는 것은, 예술이라는 것은 쏟아부은 시간에 비례해서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한들, 

얼마나 오래 내가 피아노와 기타를 잡고 있다고 한들, 

얼마나 오래 내가 자판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고 한들, 

얼마나 오래 내가 붓과 연필을 가지고 종이와 눈싸움을 하고 있다고 한들, 

창작과 영감이라는 것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다.


창작과 영감이라는 것의 부재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창작하려 한다면, 

그 행위는 창작이 아닌 자학과 자해에 가깝다. 분명히 만들면서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 없는 자해의 편린이며, 

이 모든 흔적은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고 말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수많은 예술가들이 술과 담배, 

심지어는 금지된 약물에까지 손을 대는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영감을 더 선명히 바라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조금은 보이는데, 자세히는 보이지 않으니, 선명히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영감을 더 자세히 보려면 그 심연 속으로 눈을 두어야 한다. 

그 심연은 굉장히 불친절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심연은 어느새 예술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불쾌한 포옹을 한다. 

불쾌한 행위를 한다. 한참이나 오래 그 심연과 대화를 하고 나면, 

그는 수고했다며 영감의 한 조각을 남겨주고 다시 떠난다. 얼마나 불쾌한 경험인가. 

얼마나 아쉬운 경험인가. 그러나 그는 그 심연을 그리워한다.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이 예술과 창작에서 떠나고 싶지 않기에 

그는 지옥 같은 경험일지라도 그 자리를 그리워한다.


지금도 어떠한 형태로든 창작을 하고,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살아남고 있는 모든 예술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삶이 지옥일지라도, 한 순간 영감의 희열을 느낀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표한다. 

굽은 허리와 목, 곯아 쓰라린 배를 부여잡고, 줄담배를 태우며, 한 잔의 소주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리고 더 나은 내일과, 더 나은 작업과,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모든 작가, 소설가, 화가, 조각가, 타투이스트, 가수, 연주자, 배우, 

미처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대는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돈 되는 것이 아니면 멸시하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는 저항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인간이 마지막까지 향유할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닌, 예술임을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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