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경계선 11화

살아야겠다는 결심

결심까지 필요한 그 일.

by TheGrace

몇 번 적었던 문장이지만, 삶은 불친절하다.

아니 어쩌면 삶을 불친절하게 만든 이 세상 자체가 불합리한 것일 수 있겠다 오만한 생각을 해 본다.

모든 사람은 결국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 간다.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모두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큰 숨을 내쉬며 태어나고,

큰 숨을 내쉬며 죽음을 향하여 달려간다.


그리고 이렇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은, 우리에게 죽음을 요구한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자살을 요구한다. 끝없는 비교와 열등감, 빈곤과 괴로움, 상실과 질병은 모두 우리에게 죽음을 요구한다. 누군가는 상상할 수 없는 빈곤 속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들어가기도 하며, 나을 수 없는 질병을 겪기도 한다. 지옥 같은 삶에서 그래도 사랑할 사람을 찾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뜨겁게 사랑하여도, 상실을 맞이한다.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에게,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 자살을 강요한다. 자살을 요구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지 끝없이 질문한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잘려 겨우 남아있는 이로,

치악력으로 삶의 밧줄을 당기며 버티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질문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질병의 굴레와 상처의 반복, 상실의 고통을 너는 맨몸으로 마주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눈을 뜨면 반복되는 빈곤은 전화기를 울려대고, 맘 편히 밖에서 식사 한 끼 할 수 없는 네가 사는 것에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귓가를 속삭이며 질문한다.


그리고 그 세상은, 그 삶이라는 것은 나의 손에 가죽 벨트로 만든 올가미를 쥐어준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저번에는 약이어서 실패했다고, 더 확실한 방법이 너의 손에 있으니 어서 휴대폰의 전원을 끄고, 방의 불을 다 끄고 어딘가에 그 올가미를 지탱하고 너의 체중을 그 올가미에 실으라 말한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마포대교와 양화대교에 찾아가 봤자 누군가 너를 찾아낼 것이라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라 속삭인다.

최근까지 그 목소리에 휘둘렸다. 그 목소리가 정말 진리인 줄 믿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까.


여하튼, 나는 나의 삶에서 [자살]이라는 것이 가장 최선인 줄 믿었으며, 내가 정말 죽음을 갈구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수많은 눈물과, 수많은 외로운 밤을 그 어떤 방패 없이 홀로 맞았으며, 온몸의 피가 터지고, 눈물을 흘리다 못하여 속이 뒤집혀 몇 번의 구역질을 하고, 옆 집에 피해를 끼칠 수는 없으니 베개에 나의 고개를 처박고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 역겨우니 떠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새벽에 나는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몇 주간의 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살고 싶었구나.


아무리 역겹고 더러운 삶일지라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구나.

지금은 비루하고, 가진 것이 없고, 온갖 더러운 오물이 나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적시고 있었을지라도 나는 살고 싶었구나.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나는 나아가고 싶었구나. 내가 그토록 반복했던 이 삶을 이제 끝내고 싶다는 울음은, 정말 죽음을 갈구하고, 죽음을 갈망하는 울음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절규였구나. 아, 나는 이 삶을 사랑했구나. 알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한 가지 결심을 한다.


살아야겠다는 결심, 생존해야겠다는 결심. 죽음을 요구하는 삶에게 끝까지 생존으로써 저항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결심을 했다고 당장 크게 무엇인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비어버린 지갑이 당장 채워져 밀린 대출 이자와 휴대폰 요금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지갑이 채워져 그동안 먹고 싶었으나 먹지 못했던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나의 마음에 어떤 큰 바람이 불어와, 잃어버렸던 삶에 대한 의지가 한순간에 불타지도 않는다. 당장 잃어버렸던 감정이 찾아와 한 순간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람과 남은 삶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마법 같은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단 한순간, 단 하루씩만이라도 살아야겠다는 결심이다.


그저 단 한순간, 단 한순간만이라도 저항해야겠다는 결심이다.


그 저항이 삶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서른의 나이에 다다라서야 그것을 알았다. 그저 순응하고 나의 몸을 한강에 던지는 것, 그저 순응하고 나의 입에 수십 알의 알약을 털어 넣는 것, 그저 순응하고 올가미에 나의 체중을 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요구하는 수많은 상황과, 수많은 목소리와, 수많은 압박에 안간힘을 써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버리는 것이 추하지만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늦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목소리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내일도 그 목소리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릴 것이다.

숟가락 들 힘이라도 남아있다면 언제고 그 손가락을 목소리의 원천인 빌어먹을 세상의 얼굴에 들이댈 것이다.

그리고 안간힘을 써 말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살아남았다고, 오늘도 나는 살아남았다고.

너희들의 빌어먹을 요구에 나는 오늘도 저항했다고.

비루한 몸뚱이와 빈곤한 지갑이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다고.


말할 것이다.


기도를 쌓을 것이다. 매일, 단 5분이라도 내가 믿는 그분께 나의 기도를 쌓을 것이다. 살게 해 달라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살고 싶다고. 그렇게 나의 기도를 쌓을 것이다.

최대한 웃을 것이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웃게 해 주는 사람들을 찾아 빌붙어서라도 함께 하며, 하루의 마지막을 웃으며 마무리할 것이다.

사랑을 할 것이다. 단 한순간의 몸의 만족을 채워주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포기했던 그 삶의 사랑. 나의 남은 삶을 그대에게 맡기고, 그대의 남은 삶을 나에게 맡기며, 함께 늙어가고, 함께 서로의 분신을 만들어내는 그런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랑을 할 것이다.


복수가 아니다.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삶과 세상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그저 의지이다. 일단 살아남겠다는 의지이다. 보여주고 싶은 의지이다. 너희들이 얼마나 나의 삶을 부수고, 망가뜨리고, 나를 죽이려 했던, 그것들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보여주고 싶은 의지이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고, 아름다움을 찾았다고 말해주고 싶은 의지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살아남겠다는 결심을 한다.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생존해야겠다는 아주 작은,

너무나도 작은,

그런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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