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답을 너는 찾았을까?
어떤 거짓말은 화자조차 속인다.
“죽고 싶어.”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사실 살고 싶어.”
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되뇌고 있는 한 소년, 혹은 한 소녀가 손이 묶이고 입이 가려진 채로 구석에서 울고 있다.
“사랑해.”
라는 말을 하며 몇 날을 보내던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아직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하려 발버둥 치고 있다.
너도 그랬고, 어쩌면 나도 그랬다. 아직 날이 많이 추울 때였다. 스물셋의 나는 인터넷에서 8만 원을 주고 샀고, 실수로 밑단을 담배로 지져버린, 부직포 코트를 입고 너를 만났다.
너는 예뻤다. 나의 낮은 자존과 상관없이 너는 예뻤다. 함께 번화가를 걸을 때면 낮이고 밤이고 남자들이 뒤돌아 쳐다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겠지.
남녀가 처음으로 함께 밥을 먹는 장소로는 어색한 동네의 고등어 집에서 너를 만났다. 부담스럽지 않은 몇 가지의 대화 주제가 지나가고, 너는 나의 눈을 보며 물었다.
“사랑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해?”
“아마 서로가 너무 좋아서 서로를 위해 죽어줄 수도 있는 게 사랑이지 않을까?”
“에이, 너무 극단적이지 않아? 어떻게 서로를 위해 죽을 수 있어?”
너는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했어. 낮에 함께 있을 때 사랑한다고 했고, 밤에 함께 있을 때 사랑한다고 했어. 시시때때로 문자와 전화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했고, 특별한 날, 그렇지 않은 날에도 작은 선물, 혹은 꽃을 준비해서 건네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했어.
그 말을 했던 사람들의 표정은 다 똑같아. 낮에는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해. 어딘가 목소리는 떨리고, 얼굴은 약간 붉어져있어.
그런데 밤에는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그 이야기를 해. 목소리도 또렷해지고, 얼굴은 낮이나 밤이나 붉어져있는 것 같아.
웃기지 않아? 낮에는 그렇게 확신이 없던 사람도, 밤만 되면 그렇게 당당해질 수 없어.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사랑한다는 말은 전부 다 그랬어. 그래서 난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
갑자기 쏟아졌던 너의 질문에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모든 두뇌를 사용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하필이면 눈도 커서 똘망한 눈을 피할 수도 없게 해 놓고 나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때의 스물셋의 나는 그 아무와도 연애라는 것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이 당황스러웠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상황을, 이런 생각을,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너는 걷자고 했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너의 이야기에는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아니, 거역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너는 나의 팔을 잡아끌었고, 나는 자연스레 너의 옆에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너는 조잘조잘 나의 옆에서 너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부모님 이야기, 학교 이야기, 연애관 이야기, 그런 것들.
만난 지 이제 겨우 두 시간 되었지만 나는 너에 대해서 꽤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날이 얼마나 추운지, 우리가 얼마나 걸었는지 생각할 새 없이 그때 내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은 너와 너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날씨, 풍경 이런 것이 아닌 그저 너였다.
그리고 너는 내가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한 마디를 공중에 던졌다.
“다음 주에도 만나자. 같이 놀러 가자.”
멋진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 멋진 대답이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고민해 봐도 그 멋진 대답이 무엇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아주 짧게, 아주 짧게.
“응.”
대답했다. 너무 빠른 대답이었을까, 너는 이미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너의 눈동자에 멋쩍어하는 나의 모습이 담겼고, 카메라 셔터가 닫히듯 너의 눈이 닫혔다. 예쁜 초승달 모양이었다. 너는 웃었다. 쑥스럽게 웃는 너의 모습을 보며 나도 어느새 웃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만나 어느덧 해가 져 버린 강변에서, 너와 나는 웃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사랑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생각했다. 아주 조금, 찰나의 순간에 낮은 자존감이 야기한 불안이 나를 멈칫하게 하였으나, 기꺼이 무시하리라. 아마 이것이 사랑일 것이다.
너는 거짓말을 했다.
이후로 나는 너를 볼 수 없었다. 마주치던 곳에서 널 볼 수 없었다. 너의 번호는 바뀌었고, 나의 연락을 넌 받지 않았다. 약속했던 잠실에서 약속 시간부터 두 시간 동안 너를 기다렸지만 너는 없었다. 겹치는 지인에게 수소문했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를 볼 수 없었다.
무너졌다. 함께 걸었던 하루에 너는 누구였을까. 그 하루가 부정되었고, 그 하루 이후부터 나의 안에 들어온 너, 그리고 찾아왔던 모든 기분 좋은 감정이 부정되었다. 설레던 순간은 악몽이 되었고, 너의 거짓말은 어리지 않지만 어른이 아닌 한 사람을 고장 내버렸다.
너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내가 내렸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너의 생각과는 맞지 않았을까. 함께 걸으면서 나누었던 대화들 중에 너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무엇인가가 있었을까. 낡은 부직포 코트를 겨우 어깨에 걸치고 있는 나와, 비싼 집에서 비싼 옷을 입고 나와 늦은 밤이면 외제차가 마중 나와 집으로 모시고 가는 너와는 어울리지 않다는 계산 때문이었을까.
네가 했던 질문,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너의 정의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 그 대답이 궁금하지는 않다. 7년이 지났다. 일부러 더 잔인하게 이야기하자면 너의 생사조차 나는 궁금하지 않다. 나는 더 가난해졌으며, 아직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내리는 정의는 변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고, 알고 싶지 않은데 왜 그때의 음악을 들으면 네가 생각이 날까. 아무렇지 않은 평일에, 심지어 일상에 찌들어 있는 그 하루 중 문득 생각이 날까.
궁금하지 않다는 말이 나에게는 거짓말이었겠다.
그저 웃으며 물어보고 싶다. 왜 나에게 그랬는지 너의 거짓말에 대하여 추궁하는 것이 아닌, 너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그때 무엇이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너는 지금 사랑을 찾았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 사랑을 찾았다면 잘 지키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고, 아직 찾지 못했다면 마음속으로나마 작은 응원을 건네고 싶다.
나는 아주 조금씩 갈피를 잡아가고 있는데, 너는 어떨까. 부잣집 딸에게 이런 질문이 같잖을 수 있으나 그저 생각이 난다. 나는 가난하게 산다. 그저 가난하게 글을 쓰고, 가난하게 그림을 그린다. 가난하게 가끔 음악을 만든다. 가난하게 가끔 책을 읽는다. 나는 지금 사랑이라는 것이 이해되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지고 있다.
앞으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 너에게도 그 답이 내려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