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오후 일곱 시 홍대입구역 2번 출구 개찰구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유모차에 탄 한 외국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모든 것이 낯설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는 반짝이는 눈동자. 자신의 가족 외에는 전부 자기와 다르게 생긴 이곳이 마냥 신기하단 듯 끊임없이 눈동자와 고개는 움직였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도 반짝였다.
마치 이 아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이 아이의 신기한 감정이 그대로 엄마에게 전이라도 되는 듯이,
한 아이는 낯선 세계를 바라보며 신기해하고,
그 엄마에게는 이 아이가 세계가 되었다.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서른의 남자이지만,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무엇일지 조금 더 깊이 사유하게 된다.
나 또한 나의 부모님에게 갓난아기였다. 유모차에 타고 다니는 작은 어린아이였다.
어린이집과 학교를 오가며 다치지 않을까 걱정을 끼쳐 드린 말썽쟁이였다.
사춘기를 지나며 문제아가 되었고, 익숙한 집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홀로 외로이 싸우던 청소년이었다.
많이 아파했던 아들이었고, 아프게 했던 아들이었다.
서른이 된 지금도 나는 부모님께 어린아이이다.
가끔 전화 통화를 드릴 때마다 들려오는 걱정 가득한 잔소리와 떨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나의 부모님에게 나는 어린아이인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한 아이는 어머니의 배에 잉태되어 열 달의 시간을 견디고 나온다.
그 아이에게는 '처음' 마주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그 부모는 지금까지 지내왔던 세계의 틀을 벗고, 그 아이와 함께하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다.
나와 닮은 아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나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
무엇이 그리 슬프기만 한지, 무엇이 그리 아프기만 한지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아주 작은 생명체.
그 아주 작은 생명체가 조금씩 부모를 인식해 가고, 기억해 가며 빛나는 눈동자를 반짝일 때 부모가 느끼는 마음은 경이로움이리라.
앞으로 최소한 스무 해 정도 함께 지내야 할 나의 세계.
다치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며 어디엔가 빌어보는 금보다 더 귀한 나의 세계.
나는 끼니를 굶을지언정 나의 세상이 굶는 것은 볼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이렇게나 이타적인 사람이었을까,
평소에 전혀 하지 않던 일들까지 거침없이 해 나가게 하는 나의 세계.
아름다운 것이 너무 적은 이 시대이기에.
그대를 위하는 것보다 해하는 것들이 더 많아 마음 졸이게 하는 이 시대이기에,
나의 세계가 맞닥뜨려야 할 이 시대 때문에 더 강하게 맞서 싸우리라 다짐하게 하는 나의 작은 세계.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함께 커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잠시 나의 눈을 감고 생각의 파도에서 유영해 간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더 버텨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언젠가 나타날, 나의 전부가 될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를 해야지.
안심할 것 하나 없는 이 시대에 그래도 나의 세계가 마음 편히 안식할 수 있는 집이 되어 주어야지.
어떤 모멸과 수치를 내가 겪는다 할지라도, 나의 세계의 미소는 지켜 주어야지.
그렇게 강해져야지. 그렇게 강해져야지.
아름다움은 희귀해져 가는 이 시대에, 그래도 나의 작은 세계에게 보여줄 한 움큼의 아름다움은 나의 가슴속 어딘가 간직해 두어야지.
아름답기만 할 나의 세계를 위하여.
그가 다시 만들어갈 또 하나의 세계를 위하여.
아름다움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