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경계선 16화

이상적이지 못한 사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by TheGrace

어린아이에 불과한 내 감정과 철학, 그에 비해 벌써 서른을 넘긴 나의 현실. 이 괴리감은 언제쯤 나를 놓아줄 것인가

먹고살기 위하여 회사에 입사했다. 대략 3주간 치열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제출하고, 매 순간 긴장한 탓인지 빳빳하게 굳어버린 뒷목과, 터져버릴 것만 같은 편두통을 안은 채 대략 열다섯 군데의 회사에 면접을 보고 결국 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되려 입사를 하고 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은, 나는 그다지 모두가 원하는 '이상'의 사람과는 심각하게도 상당한 괴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의 문신은 회사 밖에서는 나를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패션이었지만,

이곳에서의 문신은 그저 한 두 번의 이야기로 소모되는 낙인이 되어버린 것일까.

변변찮은 대학과 비어있는 공백이, 삶을 살아내기 위하여 이 악물고 더위와 고통을 참아가며 다녔던 공사장의 나날들은, 저들에게는 별일 없는 하나의 개인이 그저 발버둥 쳤던 쓸모없는 흔적으로 보았을까.


어디서부터, 혹은 언제부터, 나는 모두에게 이방인이 되었을까.

미움받는 것에 대하여 익숙해지지 않고, 또 사람 많은 곳을 수년간 병적으로 피해 다닌 탓에 닫혀버린 나의 입술은 나를 그저 "다가가기 어렵고, 재미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나의 이상은 할 말을 예술로 대신하며, 끊임없이 펜과 붓을 놀리는 예술가이자 작가의 삶이었으나, 저들의 이상은 좋은 대학과 수려한 외모, 모든 이가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진 엘리트의 삶일까.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없고, 모든 가치와 생명과 이를 영위하기 위하여 하는 모든 행위는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설파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다르게도, 나의 추락은 어느 군중에게는 이야깃거리요, 어느 집단에게는 비웃음거리였을까.

겨우 두 손과 발과 마음에 검붉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상태로 절벽을 올라왔건만, 주위는 공허하며 아주 멀리 군중이 함성을 내지르며 전진하는 소리만이 들린다.


빈 속에는 카페인을 들이부으며, 방 안에는 몇 가지의 연기가 가득하다. 좋아하는 음악과, 노트북의 빛 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하루는 거의 다 흘러갔으며, 게으른 나의 낮은 저녁의 나의 멱살을 잡고 명치 부근과 얼굴에 수 차례의 주먹을 날린다.


더 다쳐야 어른이 되는 것인가. 그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사지를 이 악물고 헤쳐 나왔다.

하지만 어린아이에 불과한 내 감정과 철학, 그에 비해 벌써 서른을 넘긴 나의 거울.

이 괴리감은 언제쯤 나를 놓아줄 것인가.

누구의 탓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누구에게 입에서 중얼거리는 욕설을 내뱉어야 하는 것인지도 묘연하다.


아아, 나의 무능의 소치이며, 패배주의의 소치이다. 오만의 소치이다.

만신창이로 내몰았던 수많은 일들의 원인이 결국 나라는 것, 나의 게으름과 재능의 부재, 비교의식과 패배주의와 오만과 교만이 나에게 이 일들을 겪게 했으며, 아직도 그 안에서 헤매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차라리 나의 살갗을 벗기어 나의 표정을 가리는 다른 가면을 만드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에게는 각자의 페르소나가 존재하지만, 나는 아직도 사회적 가면을 착용하는 법을 모른다.

나의 살갗을 벗기어 나의 얼굴 가죽 위로 덮는다면, 그때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일까. 그때 나는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해질까.


두 어잔의 커피로 또렷해진 나의 정신은 더욱 생생히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후회의 여행을 시작한다.

가이드도 없고, 마땅한 표지판도 없지만 길을 잃지 않는다. 길을 잃을 수 없다.

대부분의 후회의 원인은 내가 제공했으니 말이다.

시끄러운 소음들을 지나, 가장 깊은 곳으로, 가장 깊은 곳으로, 다시 빠져나오려면 수 시간을 지나야 나올 수 있을 만큼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예전 홍콩에 있던 구룡성채의 중심처럼.


그곳에는 울고 있는 십 대의 이 사람이 있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이 사람이 있다. 이십 대 초반의 이 사람이 있다. 이십 대 후반의 이 사람이 있다. 전부 눈은 공허하며, 그 눈의 가장자리로 물방울이 맺혀 있다.

구역질이 나올 만큼 역겨운 이 사람의 과거를 바라본다. 바라본다. 바라본다. 한참을 침묵하고 침음하며 바라본다.


침음 양구에 입을 연다. 무슨 말이 나올지 이 사람도 모르는 이때, 딱 한 마디가 혀 끝에서 튀어나온다.


"미안하다"

눈을 감고, 저들 옆에 자리를 잡고 서서, 눈에 생기를 빼고, 그곳에 물방울이 맺히기를 기다린다. 마치 다른 누가 찾아오기를 바라는 듯이.


그래, 이런 내가 어찌 이상적인 남자일까, 어찌 정상적인 서른의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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