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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May 09. 2018

‘그 사람’ 아닌 ‘감정’을 그리워한 남녀의 이야기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리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스틸컷
모든 감정은 언젠가 변한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여전히 사랑할 수 있지만 처음처럼 열정적일 수는 없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남녀와 30년을 함께 산 부부의 사랑이 같을 수는 없다.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여러 경험을 통해 얻은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한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랑의 끝을 정하고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끝을 맞고 싶지 않을 만큼 미치도록 좋아서 시작하는 것이 연애 아닌가?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의 애나와 제이콥 또한 그랬다. 둘은 떨어져 있는 시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고 많은 시간이 흐르자 반짝반짝 빛나던 그들의 사랑도 빛이 바래 버렸다.

영국인인 애나는 공부를 위해 찾은 미국 LA에서 제이콥을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순식간에 빠져들었고 잠시의 떨어짐이 싫어 함께하는 사이 애나의 학생 비자는 만료된다. 그렇게 애나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됐고 두 사람은 강제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다.

함께했던 시간이 특별했고 격렬했기에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미국에 갈 수 없는 애나 대신 제이콥이 영국을 오가며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 하지만 먼 거리와 헤어짐의 시간이 지속될수록 두 사람의 감정은 천천히 소리 없이 식는다. 급기야는 각자 다른 연인을 만나고 함께 있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스틸컷

하지만 누구와 있어도 애나는 제이콥에게, 제이콥은 애나에게 느꼈던 뜨거웠던 감정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어떤 사람도 그때처럼 빠져들 수 없다는 생각이 서로를 포기할 수 없게 한다.

애나는 비자 문제가 해결된 뒤 제이콥과 함께 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간다. 하지만 함께해야 한다는 의무감만 남은 두 사람의 기류는 어쩐지 어색하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던 예전과는 다르다.

결국 두 사람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은 상대가 아닌 미치도록 서로를 사랑했던 감정이란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애나를 연기한 펠리시티 존스와 이제는 고인이 된 제이콥 역의 안톤 옐친은 뜨거운 사랑과 그것이 식어가는 감정 상태를 설득력 있게 그린다. 사랑스러운 커플이 너덜너덜한 관계가 되기까지 그 긴 시간을 한 얼굴 안에 담는다.

‘라이크 크레이지’는 흔히 ‘현실 연애 영화’라고 불린다. 이런 맥락에서 마크 웹 감독의 작품 ‘500일의 썸머’와 비교되기도 한다. 두 영화는 연인이 사랑을 시작하고 현실적인 끝을 맞는다는 전체적인 서사는 비슷하다. 하지만 ‘500일의 썸머’가 조금 더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라면 ‘라이크 크레이지’는 무거운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끝을 정하고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끝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사랑의 연장이다. 감정은 언젠가 변하니 지금의 느낌이 영원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말자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 2017, Kimjiyoung 글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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