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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Oct 23. 2017

찬바람이 불어오면 부산으로 가고 싶다

2017 부산국제영화제 방문기

부산국제영화제 티켓 / 사진=jeong

찬바람이 슬슬 불어온다. 그렇다. 부산국제영화제 시즌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가을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계절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10월초에 열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영화제다.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며 아시아로 눈길을 돌려도 이만한 영화제를 찾기 힘들다.

올해 22회 째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잡음도 있었다. 2014년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으로 부산시와 영화제 측이 갈등을 빚은 것이 바로 그것. 이 갈등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제지만 나에게는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없는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설레는 연례행사다. 게다가 부산에는 맛집도 풍부하니 안 갈 이유가 없다.

짧은 일정이라 올해에는 많은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내가 선택한 영화는 3편으로 오눌 사일락(Onur SAYLAK) 감독의 ‘조금만 더(More)’, 레오노르 세라이(Léonor SERRAILLE) 감독의 ‘위기의 파리지엔(Montparnasse Bienvenüe)’, 페드로 피뇨(Pedro PINHO) 감독의 ‘공장에는 아무것도 없다(The Nothing Factory)’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로또 번호를 고르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다. 잘 고르면 그야말로 대박이지만 그렇지 못했더라도 “실패 했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된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딱히 없다. 제목을 보고 끌리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영화 설명을 보고 정하기도 한다. 때로는 원하는 시간대에 맞춰 남은 자리가 있는 영화를 예매할 때도 있다. 나름의 기준이 있다면 한국 영화는 되도록 고르지 말 것. 이미 유명한 영화도 선택하지 말 것. 정도다. 한국 영화는 개봉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쉽게 접할 수 있고 이미 유명한 영화도 구하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즉, 혼자서는 구하기가 까다로운 영화를 보자는 게 내 유일한 선택 기준이다.

영화 '조금만 더' 스틸컷

올해 내 선택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다. ‘조금만 더’는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강렬했다. 영화는 난민들의 밀입국을 돕고 돈을 버는 아버지를 둔 열네 살 터키 소년 가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또래 청소년들처럼 순수한 면도 있고 꿈도 있는 가자는 아버지의 폭력과 환경에 찌들며 점차 변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강렬하다. 가자 역을 연기한 배우의 연기도 일품이다. 배우의 얼굴에는 순수함부터 맹수 같은 모습까지 다양한 표정이 묻어있다.

영화 '위기의 파리지엔' 스틸컷

‘위기의 파리지엔’은 제목 그대로 파리에 사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예술가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파리에 머물 곳 하나 없는 이 여성은 벼랑 끝까지 몰린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면서도 “내가 이런 곳 다닐 사람은 아니지”라며 자존심을 부린다.

혼자 사는 법, 돈을 버는 법을 모르는 괴팍한 이 파리지엔은 한국의 젊은이들과도 많이 닮아있다.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부모의 보호 아래 평생을 산 지금의 청년들은 스스로 살아야 하는 시기가 올 때 매우 큰 혼란을 느낀다. 극 중 주인공이 겪는 것처럼 가고 싶은 직장을 갈 수도 없다. 대부분 “저런 곳에는 안 간다”라고 다짐했던 회사에 가게 된다. 이리저리 현실에 부딪히며 타협하게 되고 그런대로 만족하게 된다.

영화 '공장에는 아무것도 없다' 스틸컷

‘공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영화로 포르투갈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극 중 노동자들은 다니고 있던 공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힘을 모아 행동에 나선다. 영화 중간 중간 유럽의 경제 위기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도 등장한다.

영화의 의미는 이해하지만 웬만한 집중력 없이 끝까지 보기 힘든 영화다. 극영화 같기도,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이 영화는 3시간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러닝 타임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관객을 사로잡기는 실패한 것 같다.

소재 자체는 흥미롭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다소 지루하다. 일반 관객이 이해하기 힘든 경제 전문 지식도 쏟아진다. 결국 관람을 중도 포기하고 영화관을 나가는 관객이 속출한 영화였다.

영화제 기간 3편의 영화를 보며 재밌기도 했고 지루하기도 했고 온 신경이 집중될 정도로 짜릿하기도 했다. 재밌게 본 영화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기획부터 촬영, 후반 작업까지 고생한 감독, 배우, 스태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이 몇 줄로 그들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영화제가 그렇듯 감독도, 배우도, 줄거리도 모르는 작품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홍수 속에서 보석 같은 영화를 찾아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 매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빛났던 올해의 작품을 무엇일지, 내년에는 또 어떤 작품들이 우리를 맞아줄 지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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