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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akonomist Mar 08. 2018

미국에서 찾은 한국맛

    '꽃보다 할배'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노배우들이 유럽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꽃보다 할배에서 재밌었던 점은 출연자들이 유럽을 여행하면서도 음식은 한국음식을 찾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알프스산 위에서 라면을 먹고, 숙소 커피 포트를 이용해 된장찌개를 끓이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 심정이 이해됩니다. 해외에 나가면 특히나 한국 음식이 그립습니다. 한국 음식을 먹으면 해외에 있어도 집 같은 포근함을 느낄 수도 있죠. 


    저는 미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음식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상용으로 들고 왔던 라면을 끓여먹기로 결심하죠. 정말 먹고 싶을 때를 대비해 아끼고 또 아꼈던 라면이었습니다. 그 라면을 맛있게 끓여서 먹으려는 순간, 제가 하숙하는 미국집엔 젓가락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포크로 라면을 떠먹은 눈물겨운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사는 곳엔 한국인이 꽤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음식점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요즘엔 거의 한국 음식점만 가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 음식만 찾게 되는 게 제가 나이를 먹어선지 집밥이 그리워선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미국에서 갔던 한국 음식점들에 대해 느낀 점을 적어볼까 합니다.



라면은 싼 음식이 아니다


    작가 김훈이 쓴 '라면을 끓이며'에 보면 한국인 연평균 라면 소비량이 70개 언저리라고 합니다. 한국인은 라면을 참 좋아합니다. 인천 공항에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라운지에 가보면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을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이 준비돼 있습니다. 샌드위치, 샐러드, 크루아상 등등 종류도 꽤 다양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한국인은 그 많은 음식이 있어도, 구석에 비치된 라면을 선택합니다. 이제 곧 외국으로 떠나니까 라면을 먹어둬야 한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누군가 한 명이 라면을 먹기 시작하면 거기서 나는 라면 냄새를 한국인이라면 거부하기 힘듭니다.


    라면 국물의 얼큰함과 포만감은 서양식에서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라면 한 봉지 가격이 1000원도 안 하지만, 라면에 따뜻한 국물까지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고 한 끼 제대로 먹은 기분이 납니다. 그에 비해 서양식은 그런 '포만감'이 적은 것 같습니다. 큰 햄버거를 먹든 피자를 먹든 배는 부르지만 포만감이 없습니다. 속이 든든하거나 따뜻한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양식을 연달아 먹으면 그렇게 라면이 당깁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라면을 먹으려면 돈을 꽤 지불해야 합니다. 물론 마트에서 라면을 직접 사와 끓여 먹으면 가격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기숙사나 셰어하우스에 산다면 라면을 쉽게 끓여먹을 수가 없습니다. 라면 냄새가 강해서 이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라면을 먹고 싶으면 한국 음식점에 갑니다. 그런데 한국 음식점에 가면 신라면 하나가 $7~8(한화 8000원)로 둔갑해 팔리고 있습니다. 이럴 바엔 $2, $3달러만 더 내고 제육볶음이나 갈비를 먹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신라면 하나에 8000원이라니,,, 너무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시장 원리는 어쩔 수 없습니다. 비싸게 팔아도 먹는 사람이 많으니 주인 입장에선 가격을 낮출 이유가 없죠. 그래도 제가 가는 한국 식당은 물 조절도 괜찮게 하고 계란도 하나 넣어주시니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있습니다. 

  


순두부찌개 많이 드시나요?


    순두부찌개 많이 드시나요? 저는 군대나 고등학교 배식으로 먹은 걸 제외하면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음식점을 찾아가 본 기억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입니다. 미국에 있는 많은 한국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를 팔고 있습니다. 어느 식당이든 메뉴를 보면 찌개란에 순두부찌개가 등장합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마치 순두부찌개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 해물순두부찌개와 고기 순두부찌개로 나누어 파는 게 보통이고, 더 세분화시켜 (고기+해산물) 섞어 순두부, 버섯 순두부, 만두 순두부 등 다양하게 파는 식당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순두부찌개를 시키면 '매운 정도'를 먼저 정하고, 음식이 나오면 달걀 하나와 같이 서빙되는 것으로 꽤 정형화돼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역수출된 순두부찌개 브랜드가 있을 정도로 미국에서 순두부찌개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미국에서 유난히 순두부찌개를 많이 파는 이유는 다른 찌개에 비해 외국인 입에 더 잘 맞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국인이 자주 먹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맛에 적응하지 않은 외국인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순두부는 처음 먹는 사람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죠.     

    


MSG (feat. 단맛)


    미국에서 먹는 한국음식의 한 가지 흠이라면 과도한 MSG와 단맛 사용입니다. 대개 한국 식당에서 너무 많은 인공감미료를 사용합니다. 찌개, 고기류, 밑반찬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공감미료를 적당량 사용하면 맛을 살릴 수 있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재료가 가진 본연맛을 느끼지 못하고 인공적인 맛과 단맛에 질릴 수 있습니다. 저도 항상 첫 숟가락은 맛있게 먹으면서도 밥을 다 먹을 때쯤엔 단맛에 질려버릴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일본 음식은 고급 음식으로 마케팅돼 팔립니다. 비싼 값을 지불하는 대신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죠. 하지만 한국음식은 그런 고급화된 전략을 사용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대개 김밥천국처럼 많은 음식을 비교적 싼 값에 먹을 수 있습니다. 인공감미료를 사용하는 이유가 단맛을 좋아하는 외국인 입맛에 맞추기 위해선지 아니면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먹는 집밥처럼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없는 게 아쉬운 점입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음을 실감합니다. 비싼 돈 주고 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보다 군대 때 값싼 CD플레이어로 들었던 음악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좋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비싼 돈 주고 고급식당에서 먹은 밥과 미국에서 먹은 눈물겨운 라면맛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가끔 우울한 유학시절 이곳에서 먹던 MSG 팍팍 들어간 음식이 그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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