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언젠가,
때로 마음이 가난하게 느껴질 때 들르게 되는 국숫집이 있다. 맑은 국물에 계란 지단과 호박이 얹어진, 쉽게 볼 수 있는 국수이다. 5000원이라는 가격 때문인지 다양한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온다. 목에 신분증을 단 직장인도, 몰래 볼에 입을 맞추는 교복 입은 커플도, 큰 목소리로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할아버지들도 있다.
오늘 내 옆에는 지인으로 보이는 두 여자분이 앉아있다. 작은 가게 안에서는 사람들의 대화가 쉽게 들려온다. 한 분은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다른 한 분은 전산 시스템에 정보를 입력하는 일을 한다.
둘은 한참 동안 앞으로의 산업 구조의 변화와 일자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가 강사를 하는 분이 말한다. "나는 이 일이 좋아요. 늘 새로워." "그래요?" 건너편의 상대방이 묻는다. "계속해서 배워 나가야 해요.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어."
그렇게 앉아서 국수 한 그릇을 천천히 먹다 보면 그래,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산다는 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덤덤하기도 한, 그런 날들의 연속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머릿 속 생각을 가볍게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산뜻하게 분별해 준다. 내가 맡은 일에 사심 없이 할 수 있는 바를 다하되 나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날려 보내라고 말해준다.
지금 주변의 이 사람들은 나의 과거이자 나의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한때 나도 저들처럼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까르르 웃으며 학교를 다녔고, 일에 치이다 겨우 차분한 시간에 점심을 챙겨 먹으러 식당에 들어섰다. 나이가 들면 나와 똑같이 나이 든 지인들과 털모자를 쓰고 식당을 다닐 것이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일어나면,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는 감각이, 그 평범함이, 너무나도 다행인 것으로 감사하게 다가온다. 살아간다는 일이야말로 만인의 소명이라는 엄연한 생명의 명제가, 차가우면서도 한없이 따뜻한 말투로, 서서히 전해져 온다.
text by 엘렌의 가을
Alex Katz, Nine a.m.,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