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케이블방송이 개국하면서 많은 대기업들이 방송에 진출했다. 현대(HCN, 현대미디어), 삼성(삼성영상사업단), 대우(DCN), 엘지(엘지홈쇼핑, 강남, 울산 SO), 태광(티브로드, 티캐스트), 오리온(온미디어 오리온 MSO), CJ 등이 채널 사업과 SO 사업에 진출했지만 현재 시장에 남아있는 대기업은 CJ와 GS홈쇼핑, 태광(티캐스트)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가장 규모가 작았던 CJ만이 영화, 방송, 음악, 게임 등 미디어 전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 자이언트로 성장했다.
어떻게 CJ는 살아남았고 더 규모가 큰 대기업은 미디어산업에 자리 잡지 못했을까? 오너의 의지, 경제상황, 사업역량과 같은 여러 변인이 있겠지만 중요한 시기의 몇 건의 결정적인 M&A가 타 대기업들과의 차이를 만들었다. 앞으로 살펴볼 4건의 주요 인수합병은 CJ가 복합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하는 변곡점이 되었고 주요 변곡점을 거치며 다른 기업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성장을 했다. 이런 CJ의 M&A 전략은 미국의 GM, GE, 스탠더드 오일의 시장지배력의 빠른 확대를 위해 경쟁사를 쓰러뜨리기보다 아예 경쟁기업을 통째로 매수해버림으로써 시장지배력을 확대한 전략과 유사하다.
CJ가 엠넷 채널을 인수하면서 진입한 초기 채널 시장의 1위는 온미디어였다. 삼구쇼핑 인수 당시 홈쇼핑의 1등은 LG홈쇼핑이었다. SO 시장의 1위는 태광그룹의 티브로드였다. 영화시장의 1위는 시네마서비스였다. 드림웍스에 무려 3억 달러를 투자해 영화산업에 뛰어들었지만 영화시장은 시네마서비스라는 충무로 세력이 굳게 버티고 있었다. 새로 시작된 케이블방송의 채널 사업도 지상파라는 기존 강자들이 버티고 있었고 초기 가입자가 적어 케이블채널 산업은 성장은 더디기만 했고 게다가 97년 말 IMF 경제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까지 닥쳐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이때 케이블방송의 장밋빛 전망만 보고 뛰어든 대기업들은 하나 둘 미디어 산업을 떠났다.
어느 한 분야도 1등을 하지 못했던 CJ가 모든 분야의 1등으로 도약하게 된 반전의 계기는 삼구쇼핑 인수로부터 시작한다. 삼구쇼핑은 모든 채널 사업자들이 적자를 내던 첫해부터 흑자를 내며 양천 SO와 제일방송(드라마넷)을 인수하며 급성장을 하고 있었는데 CEO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이후 삼구그룹의 의욕상실 등으로 인해 CJ가 인수하게 된다. 홈쇼핑의 인수로 CJ는 자금력, 실탄을 확보한다. CJ홈쇼핑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SO 인수에 나선다. 부산 경남지역의 SO들을 사들이며 동시에 채널도 같이 확보해간다. 성장세가 높았던 홈쇼핑과 SO 사업이 동시에 성장하면서 더 많은 자금력과 더 큰 투자 여력의 확보로 이어진다. 이를 기반으로 더 많은 채널을 인수하고 SO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으며 채널 경쟁력도 비례해 성장해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확보한 것이다.
이런 선순환 속에 CJ미디어의 채널 경쟁력에 날개를 달아줄 인수합병이 이어진다. 바로 2002년 영화시장 1위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를 보유한 플레너스의 인수다. 플레너스 인수를 통해 CJ는 영화시장에서 단숨에 1위 자리에 올라서고 동시에 당시 케이블 채널에서 가장 중요한 콘텐츠인 영화 판권 확보에 있어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CJ미디어의 채널 점유율은 2003년 6.6%에서 2년 만에 16.6%로 두 배 넘게 성장한다.
반면 당시 1위 MPP였던 온미디어는 급격한 내리막을 걷게 된다. 온미디어는 SO 4개를 인수하는데 그쳐 MPP의 우군인 MSO 확대에 실패하고 영화 판권 시장에서 쇼박스는 CJ엔터테인먼트에 크게 밀리며 온미디어의 주력 채널인 OCN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CJ와는 정반대의 악순환에 빠진 온미디어는 결국 CJ에 백기를 들고 인수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CJ미디어와 온미디어가 통합해 22개 채널을 보유한 독보적인 1위 MPP이 등극하고, 오리온의 4개 SO를 합병한 CJ헬로비전도 티브로드를 제치고 1위 MSO에 올라서게 된다. 온미디어까지 인수해 탄생한 CJ E&M은 2011년 1조 1천4백억 원의 매출을 올려 7-8천억 원 수준의 지상파방송마저 뛰어넘는다. 삼구쇼핑, 플레너스, 온미디어 3건의 M&A를 통해 CJ는 홈쇼핑-MSO-MPP-영화의 전분야에서 1위 사업자가 된다.
이제 CJ에게 남은 것은 채널 시장의 터줏대감들인 지상파 방송사들뿐이다. 유료방송시장을 장악한 CJ는 tvN 채널에 본격적인 콘텐츠 투자에 나선다. 수백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해 슈퍼스타K 등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지상파방송사들의 드라마 시장은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생>과 <응답하라> 시리즈 등이 성공을 거뒀지만 다수의 드라마들이 1%대 시청률에 그쳐 리스크는 크고 수익성은 나빴다.
CJ는 2016년 주요 스타 작가들이 소속된 제작사들을 인수 합병해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한다. 그리고 불과 1-2년 만에 지상파방송을 넘어선다. 넷플릭스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지상파방송사는 엄두도 못 낼 430억 원(회당 18억원)이라는 제작비를 투입한 <미스터선샤인>을 성공시키고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한국 드라마 시장의 1인자로 우뚝 선다.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통해 전세계에 K-드라마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이제 더 이상 로컬사업자가 아닌 글로벌 콘텐츠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더 이상 국내시장에서 CJ의 경쟁자는 없어 보인다.
미디어산업은 구조적으로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 방송 프로그램 중 다수는 1% 이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다수의 도서는 출간되지만 읽히지 않고 사장된다. 음반 대부분 수익을 내지 못한다. 즉 미디어산업은 구조적으로 소수의 콘텐츠만 성공하는 리스크가 큰 산업이다. 그래서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수요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는 수평, 수직결합을 통해 수익원 다각화와 규모의 경제 확장을 도모한다. 우리나라에서 다각화에 가장 성공한 기업은 단연 CJ다.
여러 대기업들이 미디어산업에 진출했으나 대기업 중 일부가 특정 분야에서 성공을 했지만 CJ와 같이 다각화를 실현한 기업도 없고 특히 연관다각화를 정교하게 실현한 기업은 없다. 훨씬 규모가 크고 투자여력도 컸던 SK텔레콤과 KT도 수많은 기업들을 인수합병했지만 연관다각화를 이루지 못하고, 유기적으로 수평 수직 결합을 하지 못했다. KT의 경우 2010년 금호 렌트카 인수를 시작으로 BC카드, 웅진코웨이 등을 인수했지만 연관성이 없는 다각화는 시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또 한편 사업을 독자적으로 키우려고 노력한 오리온그룹도 CJ의 인수합병을 통한 속도전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1997년부터 25년동안 CJ는 공격적으로 연관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많은 기업들을 인수했지만 유료방송시장의 무게 추가 IPTV로 기울자 또 발 빠르게 CJ헬로비전의 매각에 나선다. SKT에의 매각은 무산됐지만 바로 LGU+에 매각하고 MSO시장에서 자진 퇴장한다. 향후 미디어제국 CJ가 어떤 기업을 인수하고 또 매각하고 어떤 분야로 도약할지 그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