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등의 추격의지를 완전히 상실할 정도의 무한경쟁력인 '초격차 역량'이 필수적이며, 초격차 역량을 갖춘 1등이 바로 CJ가 추구하는 온리원(OnlyOne)"
이재현 회장 '2018 온리원 컨퍼런스'
CJ ENM은 2016년 5월 드라마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한다. 설립 후 6월 드라마 제작사 <문화창고>와 <화앤담 픽쳐스>를 각각 315억 원, 365억 원 규모의 지분교환 방식으로 인수하고 9월에는 <(주) 케이피지에이>를 150억 원에 인수한다. 그리고 2017년 11월 스튜디오드래곤이 코스닥시장에 화려하게 상장한다. 당시 시총은 무려 1조 원.
2019년에는 <지티스트>를 250억 원에 인수하고, 송재정 작가가 속해있는 메리카우의 지분 19%도 인수한다. 약 1,080억 원을 투자해 4개 드라마 제작사를 인수해 지금의 스튜디오드래곤이 된다. 스튜디오드래곤은 2016년 5월 설립 후 <38사기동대>부터 시작해 <디어 마이 프렌즈> 등을 연이어 내놓고 최고 시청률 작품 <도깨비>를 내놓는다. <도깨비>는 16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한국케이블TV 대상을 수상하며 최고 드라마의 자리에 오른다. 상장 이후에는 2017년 <비밀의 숲>, 2018년 <미스터 선샤인>을 내놓으며 그야말로 독보적인 드라마 스튜디오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매년 20편 이상의 드라마를 모회사인 CJ 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사와 넷플릭스 등에 공급하는 국내 최고, 최대의 글로벌 드라마 스튜디오로 성장했다.
불과 2015년 경까지 지상파방송사 드라마의 아성은 철옹성과도 같았다. KBS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는 시청률 43%를 넘는 고공행진을 했고, MBC <전설의 마녀> 31.4% SBS <용팔이>는 21.5%로 인기 드라마는 보통 시청률 20%를 넘기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반면 케이블 채널 드라마들은 <미생>, <응답하라> 시리즈 등 인기작이 나오기는 했지만, 다수의 드라마들은 1~3%의 시청률에 그치며 고전하고 있었다. 당시 ‘케이블은 왜 시청률 3% 넘으면 대박일까?라는 식의 기사들이 많이 보도되기도 했다. 드라마 <미생> 때도 시청률 공약에서 3% 달성 시 출연 배우들이 치맥 쏘기 공약을 할 정도로 케이블 드라마는 고전하고 있었다.
성장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고전하고 CJ ENM의 대응 전략은 주요 드라마 제작사의 인수를 통한 스튜디오드래곤의 설립이다. 그리고 그 인수 합병의 핵심은 스타 작가 확보였다. 초기 인수한 제작사 3곳은 다음과 같다. ‘문화창고’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 <별에서 온 그대>, <프로듀사>의 작가 박지은과 배우 전지현이 소속되어 있고, ‘화앤담 픽쳐스’는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등으로 인기가 높은 김은숙 작가를 보유하고 있었다. ‘KPJ’는 <대장금>,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등을 집필한 박상연과 김영현 작가의 소속사다. 19년 인수한 ‘지티스트’는 <그들이 사는 세상>,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등의 노희경 작가의 소속사다.
CJ ENM은 이미 드라마제작사 <JS픽쳐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5년부터 인수한 제작사의 스타 작가들을 장기 계약을 통해 확보하고 있었다. 그 외 홍자매(홍미란, 홍정은, <주군의 태양>, <최고의 사랑> 등), 송재정(<W>, <알함브라의 궁전>) 작가와도 계약을 체결해 스타 작가 라인업을 확보해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었다. 이미 드라마 제작과 관련된 제작사는 물론 주요 요소라고 평가받는 작가들까지 확보하고 있던 CJ ENM이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하고 그 드라마 제작사들을 자회사로 흡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핵심은 스타 작가로 보인다. 스타 작가는 ‘내가 확보했을 때는 핵심역량이지만 경쟁사와 확보하면 핵심 리스크’가 된다. CJ ENM은 스타 작가들과의 1회 성 계약이 아닌 인수를 통해 내재 자원화로 핵심역량을 확보함은 물론 리스크까지 제거한 것이다. 이제까지 드라마 시장을 장악해온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들 스타 작가들과 텐트폴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잠재 리스크를 제거해버린 것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인수한 제작사의 주요 스타 작가들과 100회의 집필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니시리즈(16부작 기준) 약 5~6편으로 평균 기획 및 집필 기간을 고려할 경우 약 10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반대로 경쟁사는 이들 스타 작가들과 앞으로 10년간 드라마를 만들지 못한다는 의미고 CJ는 이들 스타작가들과 연간 2~3편 이상의 텐트폴 드라마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향후 10년간 경쟁우위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선덕여왕>과 같은 텐트폴 드라마를 만들어온 지상파방송사들은 이제 CJ의 허락 없이는 스타 작가들과 제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져 버렸다. 지상파방송사는 이제 스튜디오드래곤의 판매처로 전락했다. 실제 사례를 보면 SBS가 방송한 <푸른 바다의 전설>은 ‘문화창고’의 박지은 작가, <더킹: 영원의 군주>는 ‘화앤담픽쳐스’ 김은숙 작가가 집필했다. <더킹: 영원의 군주>의 경우 320억 원이 넘는(회당 제작비 25억 원) 대작이지만 최근 대작 드라마의 주요 수익원인 넷플릭스 판매는 스튜디오드래곤이 했다. SBS는 1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주고 스튜디오드래곤으로부터 국내 방영권과 VOD 등 유통 권리만을 구매했다.
그 결과 320억 원의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드래곤은 30%가 넘는, 즉 1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시청률이 그리 높지 않았던 SBS는 해당 분기 8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MBC도 2019년 드라마 <봄밤>을 스튜디오드래곤으로부터 약 7억 원에 국내 유통권만 구매했다. 넷플릭스 판매는 스튜디오드래곤이 했다. 지상파방송사가 갑이던 드라마 시장의 구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게다가 스튜디오드래곤은 타 드라마 제작사와 달리 모회사에 tvN과 OCN이라는 안정적인 캡티브 채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높은 협상력을 바탕으로 판매자 우위(seller’s market)를 확보해 스튜디오드래곤이 게임 체인저가 되었다.
성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드라마의 특성상 일반 드라마 제작사는 연간 평균 3편 내외의 드라마를 제작하고 매년 적자와 흑자를 반복하기 때문에 자본 축적을 하기 힘들어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형 스튜디오가 되기 힘들다. 반면 스튜디오드래곤은 연간 20편 이상의 드라마를 제작하고 수익률이 일반 드라마에 비해 월등히 높은 텐트폴 드라마를 선점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했다. 스튜디오 드래곤이 공개한 주요 텐트폴 드라마의 수익률을 보면 <도깨비> 61%, <푸른바다의 전설 33%>, <시그널>, 48%, <미생> 58% 등이다. 회당 10억 원의 제작비를 쓴 <도깨비>의 경우 회당 6억 원, 총 120억의 수익을 거둔 것처럼 텐트폴 드라마는 성공 시 높은 수익을 거둔다.
역량이 검증된 핵심 작가를 영입해 상업적 성공확률을 높임으로써 작품 단위의 실패 위험을 분산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도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보한 것이다. 그래서 일부 드라마가 적자가 나더라도 지속적으로 수십 편의 드라마를 제작, 공급하는 미국식 대형 스튜디오가 된 것이다.
스튜디오드래곤 최진희 대표는 2020년 국내 드라마 시장 점유율을 40%까지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의 목표는 드라마 제작사를 수평 결합해 독보적 시장 점유율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스튜디오드래곤 설립 이전 CJ E&M은 연간 10~16편의 드라마를 제작했으나 스튜디오드래곤 설립 이후 2018년부터 연간 25편 이상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고 20년에는 27편의 드라마를 제작했다. 제작 편수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내 연간 드라마 수는 약 120~140편 수준으로 약 20%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타 제작사들의 연간 제작 편수가 최대 5편인 것을 감안하면 스튜디오드래곤의 규모는 독보적이다. 물량 측면에서는 목표 시장 점유율에 미치지 못하지만 스튜디오드래곤이 만드는 드라마의 제작비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재원 규모는 30%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표 시장점유율 40%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드라마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이미 40%를 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재무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17년 11월 시초가 55,300원, 시총 약 1조 원 규모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2021년 3월 현재 주가는 100,100원으로 약 두 배 올랐고, 시가총액은 3조 원에 육박하는 코스닥 9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상파방송사 중 유일하게 상장된 SBS의 시총은 9천억 원 수준으로 무려 세 배나 더 크다. 매출액은 2017년 2,870억 원에서 2020년 5,257억 원, 영업이익은 327억 원에서 491억 원으로 모두 80% 이상 증가했다. 수출액도 2,277억 원으로 전년 1,608억 원 대비 41% 늘었다. 상장을 통한 막대한 재원을 확보했고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고성장을 하고 있어 대적할 경쟁자가 없는 상황으로 스튜디오드래곤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전략적 관점에서도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의 주요 성과는 경쟁사인 지상파방송사들의 드라마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차별화 전략이 성공했다는 점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인수한 제작사의 스타 작가들은 지상파방송사들과 좋은 성과를 내며 동반 성장해왔다. 김은숙 작가는 주로 SBS와 함께 해왔는데 2003년 <태양의 남쪽>부터 <파리의 연인>(2004년), <프라하의 연인>(2005), <시크릿 가든>(2010), <신사의 품격>(2012), <상속자들>(2013)까지 약 10년간 주요 텐트폴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신 드라마 왕국 구축의 일등 공신이다. 그러나 스튜디오드래곤의 ‘화앰담픽쳐스’ 인수 이후 SBS는 2020년 <더 킹: 영원의 군주> 한 편만을 스튜디오드래곤으로부터 구매해 방송하는데 그쳤다.
박지은 작가는 SBS와 <별에서 온 그대>(2013), <푸른바다의 전설>(2016) MBC와는 <내조의 여왕>(2009), <역전의 여왕>(2010), KBS와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프로듀사>(2015) 등 지상파방송 3사와 함께 골고루 성공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스튜디오드래곤의 ‘문화창고’의 인수 이후 지상파방송사와의 제작은 전무하다. ‘KPJ’의 박상연, 김영현 작가도 MBC와 <대장금>(2003), <히트>(2007), <선덕여왕>(2009), SBS와는 <뿌리깊은 나무>(2011), <육룡이 나르샤>(2015)를 방송했지만 2015년 이후 지상파방송사와의 작품은 전무하다. 지티스트의 노희경 작가와 홍자매(홍정은, 홍미란) 또한 2016년 이후 지상파방송사들과는 작품을 하지 않고 있다. 메리카우의 송재정 작가도 마찬가지다. 지상파방송사들이 이들 스타 작가들과 작품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텐트폴 드라마들은 크게 줄어든다.
스튜디오드래곤이 확보한 이들 스타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미스터선샤인>(김은숙), <사랑의 불시착>(박지은)과 같은 당해 최고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는 반면 지상파방송사 중 SBS를 제외한 KBS와 MBC는 이렇다 할 텐트폴 드라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을 통해 경쟁사의 경쟁력을 제한시키고 전략적 경쟁우위를 선점한 것만은 명확하다.
CJ ENM은 넷플릭스에 스튜디오드래곤 주식 최대 4.99%를 양도하는 옵션 계약을 체결한다고 발표한다. 동시에 넷플릭스에 향후 3년간 총 21편의 드라마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약 1,000억원 이상의 재원을 확보해 제작 편수를 꾸준히 늘려간다. 경쟁자인 지상파방송사들은 각종 비대칭 규제로 인해 수익원의 제약이 커 회당 10억 원이 넘는 텐트폴 드라마를 기획하기 힘들다. 반면 스튜디오드래곤은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통해 선 확보한 1,000억 원을 기반으로 연간 3편 이상의 텐트폴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다. 텐트폴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고, 넷플릭스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동남아 지역에서 Top 10 드라마로 인기를 얻기 때문에 넷플릭스는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스튜디오드래곤은 더 큰 텐트폴 드라마를 기획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이제 스튜디오드래곤은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미국 시장까지 직접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지상파방송사들은 텐트폴 드라마 기획은 커녕 매년 드라마 줄이기에 급급하다. 스튜디오드래곤은 20년 27편의 드라마를 제작해 5,257억 원의 매출을 올려 지상파 3사 전체 드라마 매출보다 더 커져 지상파방송사들이 반전을 이뤄낼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CJ는 약 1,000억 원을 투자해 주요 스타 작가가 소속된 드라마 제작사를 인수함으로써 경쟁 지상파방송사를 무력화시키고 경제적 해자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이재현 회장이 이야기한 것처럼 향후 스튜디오드래곤이 2, 3등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상실할 정도의 '초격차‘ 기업으로 성장할지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