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태어난 날을 기념하기도 하지만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날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생일이 다가오면 많이 들떠서 엄마인 나에게 선물이며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했다. 낳고 키우느라 고생한 건 나인데 말이야. 사랑받아야 마땅함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어땠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봤다. 생일이라고 부모님께 뭔가를 크게 요구하지 않았고 집에서도 특별히 생일을 챙기지 않았던 것 같다, 한여름이라 매번 방학에 끼어있어 친구들을 초대하지도 못했고 그렇게 서운한 마음으로 몇 해를 보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생일에 큰 감흥 없이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친정 엄마가 올해 생일은 꼭 제대로 챙기라고 신신당부하시며 중년의 딸에게 거하게 용돈을 주셨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나는 1979년 음력 윤유월이라는 특수한 달이 적용되는 시기에 태어나 진짜 생일이 돌아오는 주기가 매우 드물다. 보통 윤달은 19년에 7번 들어있어서 2-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데 그중에서도 윤유월은 19년, 24년, 27년, 33년 등 불규칙 적인 간격으로 아주 가끔 반복되는 희귀한 경우라고 한다. 그래서 2006년 이후 2025년인 올해가 두 번째 찐 생일이며 다음 생일은 무려 27년 후인 2052년에나 맞이할 수 있다.
요즘 음력 생일 챙기는 사람이 얼마냐 있겠냐마는 부모님 세대는 윤유월 따지느라 생일을 자주 못 챙겨준 미안한 마음이 있으신 것 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해 생일은 꼭 잘 보내라며 특별히 더 축하해주시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입덧이 심해 잘 먹지 못하고 힘든 임신 기간을 겪은 데다 한여름에 출산하느라 고생했을 우리 엄마. 그런 엄마의 사랑은 수시로 눈물 버튼이다.
요즘 자꾸만 초라해지는 기분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이토록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더 이상 가라앉아 있을 수가 없다. 엄마 딸인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며 스스로를 돌봐야지, 그리고 마음을 다해 내 생일을 기뻐해야지.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으나 생명을 부여받은 이상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축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정하기 나름인 것 같다. 남들에게 받는 축하 선물도 좋지만 단단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을 가지는 것,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잘 가꾸고 사랑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그러고 보면 물리적으로 몸이 세상 빛을 본 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태어난 때도 생일로 볼 수 있지 아닐까. 이제 매년 진짜 생일처럼 맞이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
나다운 모습을 인정하고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진심으로 내가 나를 축하해주고 싶다. “해피버스데이 투 미!”
덧) 인생은 늘 뜻밖의 순간에 놓이게 해서 나를 시험한다.
도서관에 와서 몇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오랜만에 요가원을 가려는 우아한 하루를 계획했다.
그러나 딸에게 걸려온 전화. 아빠가 오빠 부축받고 병원간다는데 엄마 언제 오냐고 물었다.
시아버지 병간호로 3일간 잠을 못잔 남편이 쓰러질 지경이 되서 결국 구급차타고 응급실행ㅡ.ㅡ 이런 경험을 할 줄이야.
오후 일정을 다 바꿨다.
평온함과 충만한 생일은 먼 나라 얘기.
이제 시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서
더 사라질 예정.
(올해 결혼 20주년이라 베트남이라도 다녀오려던 계획 취소 후 원주에 가서 강원도 여행이라도 하자 했던 것도 취소ㅜㅜ... 병수발과 스트레스로 아들이 더 위급할거 같은 지경이 되었다. 하...30년 고생시켰으면... 이젠...그만요...)
온갖 검사후 다행히 큰 걱정은 안해도 되어서 집에 왔다. 네 식구가 앉아 밥을 먹는데 이 순간이야말로 선물이구나 싶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얼굴 마주하고 앉아 밥 먹을 수 있는 일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고 당연하게 여길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
아들딸이 준비한 케잌과 향수를 받으니
참으로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라.
널을 뛰던 감정과 얼어붙었던 마음이
이 찰나의 순간으로 몰랑하게 녹아내린다.
빨리 예측가능하고 무난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언젠가는 모두 죽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너무 힘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중.
부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데려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