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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Oct 02. 2023

‘죽을힘을 다하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어쩌다 나는 1인기업에서 프랜차이즈 CEO가 되었을까?

 그렇게 창업을 하고, 처음으로 사장이 되었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설렘반 두려움반을 가지고 시작했다. 잘할 것 같은 설렘은 나에 대한 믿음이었고, 혹여나 잘 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처음시작하는 일에 대한 방법을 몰라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사업은 서툴지만 시작되었다.


처음 사무실을 오픈하면, 일용직을 오래 했던 사람들이 온다. 근처 소개소에서 경험은 있지만, 오랜 관계유지가 안된 사람들... 많은 사정이 있겠지만, 이 일의 가장 큰 '신뢰'가 무너진 사람들이 온다. 첫 한 달이 특히 그렇다. 


나는 초보사장이고, 특히나 모든 게 완벽해야 했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친절했다. 응대하는 목소리는 계이름으로 치면 '솔'톤이었다. 그래서 사장님들에게는 초보사장이지만, 친절하고 열정 있는 사장이었고,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처음이라 아직은 이 시장을 잘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일을 간다고 약속했다가 갑자기 아프면 그런 줄 알았다. 정말 걱정했다. 심지어 기프티콘을 보내고, 약은 드셨는지 답장도 없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가게 사장님들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다른 쪽으로 수소문을 했다. 


나중에 알았다. '신뢰'가 무너졌던 구인자들은 그렇게 상습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약속을 하지 않고 안 가지?' '일이 있으면 미리 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그렇게 살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겨우겨우 첫 달을 지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나의 시작은 11월이었고, 일을 적응하고, 12월 성수기를 지냈기에, 시작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첫 달에 가게월세를 냈으니,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일의 비수기인 1월이 왔다. 1월 1일은 첫날이라 조용히 지나가서 나름 다행이다 생각했었다. 연초는 조용하게 지나가네 하고 말이다. 그런데 2일, 3일... 이상하다. 전화가 안 온다. 벌써 몇 통화는 왔어야 하는데 말이다. 


내 전화기가 망가진 것은 아닌지, 전화를 걸어본다. 

일반전화기를 휴대전화로 착신했는데, 착신이 잘 못 연결된 거는 아닌지 또 전화를 걸어본다.

아니다. 전화기는 이상이 없다.


또 원인을 찾는다. 왜 그럼 전화가 안 올까?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

"왜 전화가 안 오지?"

"이 일의 비수기야. 원래 1,2월은 조용해." 

".... 주방일 있어요?"

"우리 사람 먼저 맞추고..."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일하시는 구직자 분들에게 약속과 다름없는 회비를 받았는데, 일을 매칭해 줄 수 없다니.. 

난감한 일이었다. 그냥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원래 그런 일이 어디 있나,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하는 거지. 

난 또 생각을 해본다. 


난 시크릿 책을 믿는다. 

간절하면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는다.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냥 전단지를 들고나갔다. 

손바닥만 한 스티커 전단지였다. 

전봇대에도 붙이고, 식당에도 드리고, 보이는 곳곳마다 붙이며 다니기 시작했다. 


스티커를 붙여야 하니 장갑은 끼지 못하고, 맨손으로 붙이다 보니 손이 얼어서 퉁퉁 부었다.

많이 돌리는 건 도저히 어려울 것 같았다. 

많이 돌리는 것보다 임팩트 있게 하자! 

'솔'톤으로 가자! 식당에 스티커를 돌리다 보니, 점심시간에는 너무 바빠서 사장님이나 매니저님을 만나기 어려웠고, 휴게시간에 가자니 다들 쉬고 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사이 시간대를 정했다! 

그리고 매일 100장을 들고나갔다. 그냥 목표가 있어야 일이 즐거우니, 100장을 돌리면 사무실로 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1-2주일이 지났을까.. 식당에서 한두 군데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많은 곳을 돌리기보다 인사하며 눈인사하며 돌렸기에 식당이름을 얘기하면, 어디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 000 가게 맞으시죠? 이렇게 하면 더 반가워하시고 말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떤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전화가 한두 통씩 오니, 집중을 해야 했고, 그때 사무실로 일을 하시러 상담 오신 분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셨던 분인 걸 알게 된다. 

돈을 많이 드리지는 못하지만, 전화가 오면 꼭! 급여를 올려드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날그날 지하철역을 정하고, 장수를 정해서 돌리실 수 있게 했다.

전화가 한통이라도 오면, 주저하지 않고, 하루 급여를 1만 원씩 올려드렸다. 7만 원으로 시작했던 일당은 15만 원이 되었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분 덕분에 더 많이 벌었다. 


그리고 목표했던 2호선의 역세권의 식당에 모두 돌렸다. 그리고 봄과 함께 성수기가 찾아왔다. 학교가 개학을 했다. 학교에도 사람을 보낼 수 있으니, 방법을 고안해서 DB목록을 만들고, 일일이 컨택했다. 그 방법은 실패했지만, 역시나 시크릿이다! 근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매칭은 지금까지 거래를 하고 있는 회사가 된다.


매출은 정말 계단처럼 올랐다. 

100/300/500/700/800.... 그리고 1000만 원을 넘기고 싶었는데, 넘을 듯 안 넘을 듯 잘 넘지를 않았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다.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내가 전화를 안 받고, 놓치는 시간들이 있었다. 한계에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아이엄마인 것을 대놓고 사장님들께 오픈하고, 아이들 소리가 나도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8개월이 되었을 때 1200만 원 매출을 했다. 1인기업으로 1000만 원 매출을 넘기다니.. 놀라웠다. 

그러나 그때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 지속해서 살아갈 수는 없겠다였다. 

돈을 벌면서 살아갈 수는 있지만, 내 삶이 이렇게 계속 유지가 될까? 아니었다. 


그럼 나는 어떤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이 일에서 어떻게 시스템화를 할 수 있을까? 를 생각했다.

전화로 똑같이 응대하는 업무가 많았다.

이 시간을 줄 일 수는 없을까?

그렇게 이 일을 시작했던 그때.. 왜 그런지 알겠다..라고 생각했던 그 일을 실행했다.


'앱을 개발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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