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한 가지 습관 혹은 버릇이 있다면 화가 날 땐 종이에다가 손으로든, 혹은 모니터 화면에 메모장을 켜서든 욕을 미친 듯이 써내려 간다는 것이다. 여리디 여린 엄마에게 욕하는 모습을 들키는 게 뭐 그리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나는 꽤 오랜 시간 욕을 할 줄 알면서도 못하는 척 살았다.
사실 한 번 시작하면 욕쟁이 할머니처럼 와다다 쏟아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욕을 입에 달고 살아서 되겠나, 싶어서 웬만한 분노할 일이 아니면 욕은 최대한 참고 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참는 걸 잘하는 나라고 하더라도 매일을 참고 살 수는 없는 법. 요즘엔 알 수 없는 분노들이 가끔 선을 넘고 욕으로 변해서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라 그래~" 양희은 선생님께서 말하신 것처럼 쿨하게 "그래 그러라 그래~!"라고 넘겨버리고 싶지만, 나는 꽤나 꽁기한 기분을 오래 가지고 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증상이 나의 정신적인 증상 중에 하나라는 걸 며칠 전 병원에 갔을 때 알았다.
"선생님, 저 기분 나쁜 일 있었는데, 이러저러했는데 이 기분이 꽤 오래가서 자꾸 신경이 그쪽으로 가서 너무 우울했어요."
"그건 충분히 기분 나쁜 일이 맞아요. 근데 그 기분이 지속된다면 그건 증상이 맞습니다."
"아... 그럼요 선생님, 저 요즘 회사 얘기만 하면 자꾸 화가 나요. 짜증이 나요. 그래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한테 회사 얘기를 하다가 짜증 난 말투로 말해요."
"그럼 그 이야기를 대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푸는 법을 찾아야 될 거 같아요. 다른 걸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
저 말을 듣고 시작한 게 바로 매일 아침, 저녁마다 쓰는 일기장에 욕을 쓰는 거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땐 입에 담지도 못할 욕들을 써도 괜찮다고. 오히려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자고. 그래서 어제도 한 명의 욕을 썼고, 오늘도 그 동일인의 욕을 일기장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 쿨한 사람만 있으면 정신과는 문 닫을 텐데, 아직까지 서점엔 "예민해도 괜찮아"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스테디셀러로, 새로 나온 책으로 자리 잡는 건 나 같은 쿨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할 때마다 주변에서는 조언이라며 "그냥 넘겨, 잊어버려. 좀 쿨하게 생각해"라고 말하지만 애초에 이게 되는 사람이었다면 난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지도 않았을 거다. 오히려 그 말이 더 폭력처럼 느껴져서 상처를 받았을 때도 있었다.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글 중에 하나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 나오는 글이다. 저 책에서 저 글을 읽고 처음으로 그동안 험한 말을 내뱉어 왔던 나 자신을 원망했다. 어쩌면 나만 남들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게 아니라, 내가 내뱉은 수많은 말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 살아남아있진 않을까 괜히 뒤늦은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단지에 저 문장들을 꾹꾹 눌러 적어 뿌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음에 괜히 슬퍼진다. 매번 나만 조심하면 뭐 하나, 나에게로 들어온 남들의 말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남아 5년이 넘도록 나를 매주 병원에 가게 만드는데.
좀 쿨하게 살고 싶다. 일기장이 클린 해졌으면 좋겠다. 나도 '나' 위주로 살고 싶다. 근데, 오늘도 쿨하지 못한 주인을 만난 일기장은 험한 말로 채워진다. 이 와중에도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나는 내가 뱉은 말이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가 살아남을까 봐 최대한 따뜻하고 예쁘게 얘기한 후, 일기장에 적는다.
내가 내뱉는 험한 말은 상대방이 마음이 아닌 내 일기장에서만 살아남아 있기를, 훗날 일기를 다시 읽어볼 때 내가 이때 이렇게 살아있었음을 알 수 있도록. 그렇게 오늘도 일기장에 욕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