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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Sep 26. 2021

일을 통해자아실현 한다는거짓말

《오늘 일은 끝!》을 읽고

《오늘 일은 끝!》이라는 책을 읽었다. 얇은 편에 속하기도 했지만 구구절절 공감돼서 순식간에 완독 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민음사의 ‘한편’ 뉴스레터 덕분이다. 뉴스레터에서는 일부분을 발췌하여 책을 소개했다.      


거의 모든 단어는 동사형일 때나 명사형일 때나 비슷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분리’와 ‘분리하다’는 둘 다 부정적 기분을, ‘여행’과 ‘여행하다’는 둘 다 긍정적 기분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 규칙을 벗어나는 예외가 있다. ‘일(Arbeit)’과 ‘일하다(arbeiten)’이다. ‘일’이란 개념은 좋은 느낌을 주는 반면 동사 ‘일하다’는 부정적인 기분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일하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사람들은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을 가졌다는 사실을 좋아할 뿐이다.     


뉴스레터에 삽입된 도입부를 읽고 한참이나 생각에 빠졌다. 맞아. 일을 가졌다는 사실. 그게 중요해. 일은 나의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 나의 사회적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가늠하게 해주기도 하고. 그렇다고 일하는 걸 좋아하는가? 그건 아니다. 나는 언제나 일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여러 생각들이 뒤죽박죽으로 떠올랐지만 이 문제에 오래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내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유희, 재미와 스릴, 의미, 성취감, 자아실현, 주변의 멋진 사람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일의 관념이다. 일이 우리에게 성취감, 자아실현,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우리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면, 왜 우리는 그에 대해 돈을 지불하지 않는가?     


여기까지 읽고 나는 곧바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책을 주문했다. 이 책이야말로 나를 평생 괴롭힌 ‘꿈을 이룰 수 있는 멋진 직장 찾기 프로젝트’의 허상을 제대로 깨트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경험을 통해 그 환상의 대부분이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어딘가에 있을지 몰라’라는 기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의미와 재미를 느끼며 푹 빠질 일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 일을 찾기만 하면 매일 흥분되는 마음으로 눈을 뜨고 회사에서 멋진 사람들과 의욕적으로 협업하며 세상을 더 좋게 바꾸게 될 것이라고. 지금의 직장에 만족을 못하는 것은 단지 그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 책에서는 그런 환상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각종 영상 매체는 물론이고 성공한 마케터, 기획자, CEO의 인터뷰, 하물며 각종 회사의 사원 모집 공고에서까지 일이라는 건 열정을 불태우고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며 멋진 동료들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직업이든 매 순간 도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건 오히려 회사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다. 회사 일의 대부분은 루틴한 업무이다. 이걸 예비 취업자에게 말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창의적이고, 혁신하고, 열정을 불태우는 일이 매일 생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자질이 필요한 일이 있다고 해도 아주 소수만 가질 수 있는 직업일 것이다. 모든 직원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일하며 열정을 불태울 필요는 없다. 그저 자기가 맡는 일을 제대로 완수하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루틴한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업무는 루틴하며, 그 일이 있기에 세상이 돌아간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입사를 한 후 정작 하는 일의 대부분이 루틴한 업무인 것을 깨닫고 크게 실망한다고 말한다.     


나는 스스로 창의적이라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지루한 회사에 혁신을 몰고 오고, 그럼으로써 세상에 도움이 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쿨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뿐이다. 직장에 10년 이상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나는 변화를 싫어하고 새로운 업무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루틴한 업무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업무가 내 꿈이라 착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매번 그런 일을 찾았고, 항상 고통스러워하며 퇴사하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대 대기업에서 부품처럼 일하지는 않을 거야!” 지금의 생각은 어떻냐고? 최고의 부품이 될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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