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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Nov 01. 2018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 스포일러 있습니다.





너무 가혹해요.
왜 이렇게 잔인한 게임을 만든 거예요?!




게임 제작사에 찾아가 따져 묻고 싶다. 마지막 선택지에서 마우스를 잡고 한참을 멈춰있었다. 소중한 한 사람의 목숨과 마을 전체의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게임은 끝이 난다. 차라리 이대로 선택하지 않고 컴퓨터를 꺼버리고 싶다.


모니터 밖에서 그들 대신 인생을 선택하는 나는 그래도 안전하다. 잠시야 마음이 아프겠지만 나중에는 다 잊고 그저 잘 만든 게임이다 하고 읊조리겠지. 그러나 정말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어떻게든 선택을 하고 게임을 끝내고 나서도 계속 떠오르는 질문이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원망스럽기만 하다. 애초에 왜 맥스에게 그런 능력을 준거야. 그게 누구든 간에 너무 무자비해!


맥스가 능력을 얻은 후 틀림없이 변하는 현실은 무엇일까. 그것이 존재해야만 이 모든 게 가치 있는 것이 된다. 아무 의미 없이 가슴 아프기만 한 것은 너무 슬프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맥스가 왜 능력을 얻게 된 거지?


맥스는 어쩌면 영어권에서 말하는 '너드'일 정도로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겉보기엔 그럴지언정 내면엔 꿈을 향한 열정이 있고, 다른 사람들을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맥스에겐 어릴 때 단짝이었던 클로이가 있었지만 이사 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우연히 클로이와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클로이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맥스는 갑작스레 생겨난 초능력을 이용하여 클로이를 구한다. 능력이 생긴 후 가장 먼저 미래를 바꾼 일이다.


이것으로 보아 클로이를 살리기 위해 맥스가 능력을 얻었다 말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클로이를 살리는 것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으니까. 둘은 다시 예전처럼 가까워지고, 비었던 마음을 채우며 이전의 관계 이상으로 서로에게 스며든다. 이들은 완벽하지 않다. 클로이는 쿨하고 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하게 반항적이며, 맥스는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둘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품고 있고, 그들이 멀어진 이유도 자세히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들은 알고 있다. 때때로 현실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진다는 걸. 한 단어로 설명되는 관계는 없고, 완벽한 사람 또한 없다. 그래서 마치 현실과 같은 그 세계에 빨려 들어가 맥스와 겹쳐 앉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카디아 만의 풍경을 바라보고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맥스는 줄곧 클로이를 위해 능력을 사용한다. 클로이를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클로이가 레이첼을 찾길 원하기에 그것을 위해서도 능력을 쓴다. 그럴수록 맥스의 몸엔 이상이 생기고 기상이변까지 일어나기 시작한다. 게임은 레이첼을 납치한 범인의 존재가 밝혀지며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하지만 이후 맥스는 선택해야 한다. 이제껏 클로이를 위해 했던 일들이 마을 전체를 집어삼킬 폭풍을 만들어냈으니 그 일을 바로 잡을지, 끝까지 클로이를 선택할 것인지.







처음엔 클로이의 소원대로 레이첼의 생사를 확인하고 제퍼슨을 잡기 위해 능력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능력을 얻지 않았어도 클로이가 죽음으로 인해 결국 제퍼슨은 잡히게 되었을 것이다. 미래를 바꿔 클로이를 구함으로써 결국 마을을 집어삼킬 폭풍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그 외엔 일주일 동안 클로이와 맥스가 함께 강렬한 시간들을 나누는 것 외에 다른 뒤바뀐 현실은 없다. 







내 선택은 마을을 희생하는 것이었다.(선택지의 워딩마저 잔인하다. '선택한다'가 아닌, '희생한다') 끝없이 클로이를 위해 시간을 돌리고 선택했는데 이제와 클로이를 희생시키라니. 게다가 이미 맥스에겐 클로이는 너무나 큰 존재였다. 그러나 그 후가 걱정이 되었다. 클로이는 과연 즐겁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맥스 또한 평생 죄책감이 시달리지 않을까? 새로운 곳에서 새 인생을 살아가겠지만 클로이가 마약이나 술에 중독되지는 않을지, 엄마를 떠올리며 눈물흘리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맥스는 그 모습을 견딜 수 있을까.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매일 후회하지 않을까. 


이런 어려운 문제를 고민하고 나름의 해답을 만들어 가면서 가치관이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난 아직도 답을 내지 못하겠다. 나라면, 클로이와 함께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한다. 제작사가 원한 진짜 엔딩은 클로이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다른 것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오로지 맥스의 기억 안에서 클로이와의 추억만이 더 만들어질 뿐이다. 이것은 맥스에게 어떤 의미일까. 차라리 클로이와의 새로운 추억이 없는 편이 덜 괴로울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인생을 바꿀만한 기억이겠지만 너무 가슴이 아파서 매일 울지는 않을까. 게임을 플레이 한지 일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가끔 그들을 떠올린다. ost마저 필요 이상으로 좋아서 가끔 듣는데 그럴 때마다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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