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주택에 당첨되어서 최초로 아파트에 살아보게 되었다. 비록 5평이지만 아파트긴 아파트다. 어느 부분에서 여기가 아파트임을 실감하느냐면 입구의 보안키를 누를 때. 이전에 살던 집은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대문을 열려면 열쇠를 사용하거나 벨을 눌러야 했고 벨은 무조건 집주인 세대에게 울렸다. 그러니 집에 택배가 올 때마다 대문을 열어달라고 집주인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집으로 택배를 받은 적이 한두 번 밖에 없다. 필요한 물건을 집 앞으로 배송받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했을 이 일이 나에게는 놀라운 경험이다. 이전에는 인터넷 쇼핑을 안 했냐고? 전에는 회사로 주문해서 회사에서 집까지 들고 갔다. 옮기기 어려운 물건이 왔을 때는 택시를 타기도 했다. 그렇게 불편한 생활을 해왔으니 지금 이렇게 택배를 문 앞에 받는 것만으로 감격하게 된다.
관리 사무실이 있는 것도 이렇게 편할 줄 몰랐다. 이전 집은 낡아서 전기를 껐다가 바로 키면 불이 안 들어온다든가, 화장실 변기 물이 샌다든가 현관 타일이 깨졌다든가 자잘한 문제가 많았다. 수리할 것이 너무 많았기에 심각한 것 몇 개만 수리를 요청했고 나머지는 되는대로 살았다. 물론 그 수리마저도 쉽게 되지는 않았다. 한참 기다렸다가 겨우 고쳐주기 일쑤였다. 그런데 아파트는! 관리실에 전화하니 바로 확인하러 와준다. 환풍기도 새것으로 교체해 줬고 보일러가 안 들어온다는 내 말에 바로 와서 확인도 해주었다. 이러면 관리비 낼만 하지. 바로 납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깨끗하다. 일반 주택은 집 주변과 계단 등을 집주인이 관리하지 않으면 엉망이 되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게 다들 세입자니 굳이 자신이 집 주변을 청소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정리되지 않고 지저분한 게 보통인 것처럼 굳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깔끔한 환경이 적응되지 않기도 했다. 깨진 곳이나 부서진 곳 하나 없는 집이라니! 그러다 보니 좁아도 자꾸 뭔가 꾸미고 싶고 더 이쁘게 하고 싶어 진다. 백수가 된 상황에서 인테리어에 자꾸 돈을 쓴다. 혼나도 할 말이 없다.
또 좋은 점. 주변 환경이 정말 좋다. 가까이 강이 흐르고 멀지 않은 곳에 산이 보이는데 베란다 문을 열고 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치유된다. 이전 집에서는 2층이라 문을 거의 열지 못했다. 창을 열면 반대편 건물에서 우리 집이 훤히 들여다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환기도 제대로 못하고 살았는데 이사 후에는 매일 환기를 한다. 환기가 이렇게 좋은 것이었다니.... 주변 환경이 좋으니 매일 나가서 산책을 하게 된다.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꽃 향기도 맡고 새 구경도 한다.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덩달아 건강해진다. 이전 집은... 주변이 온통 유흥가였기에 휴일에는 멀리 나가지 않는 한 집에만 있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 치안! 이전 집들에서는 작은 소리만 들려도 예민해져서 온 집안 불을 다 켜놓고 소리의 근원을 찾으러 다녔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누구냐고 물어보고 그 사람의 대답만 믿고 문을 열 수밖에 없었는데 아파트는 문을 열지 않아도 얼굴을 확인할 수 있고 문제가 있다면 경비실에 문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집 안에서 쉴 때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것들이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전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전부 새로우면서 기쁜 일들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바로 근처에 지하철이 다니기 때문에 지하철의 끼기긱 하는 소리가 들리니까. 근데 그 소리마저 지하철 역이 가깝다는 증거이기에 고맙기만 하다.
이렇게 아파트의 좋은 점을 떠들고 있는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아파트 싫어해"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유는 '박스를 쌓아놓은 것 같아 갑갑하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평생 아파트에 살아볼 기회조차 없을 테니 겉으로만 보고 판단했던 신포도 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