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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트데이 MS and ET Jan 25. 2018

아이슬란드에서 그에게
청혼한 그녀. 지수

브런치 작가 지수의 은반지 이야기


 

Propose Day.Iceland.October




거창하지 않아도

뭐 어때요

 

 

브런치에 한 프로포즈 글이 발행 됐다 - 한낱 편견인 남성의 것 프로포즈를 여성이 용기 내어 먼저 했다더라. 그것도 아이슬란드에서. 사실 프로포즈야 말로 둘의 이야기를 담는 가장 첫 시작인데 여러 이유로 가장 뒷전으로 남아 '언제 해. 네가 해 내가 해' 과제가 된다. 이런 현실 속 이런 류의 글은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하다 싶어 글 주인에게 바로 연락해, 인터뷰 갑시다. 그리고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둘은 어떤 사이 꽤 오래 알던 사이예요. 알아온지는 한 6년. 진지하게 만난 지는 일 년 반 조금 넘었고요.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에 과연 잘 만날 수 있을까 걱정 많이 했어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거예요. 결혼에 대해 막연하게 ‘이 사람이랑 하면 잘 살겠네’ 싶을 때, 오빠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거예요. 저에 대해서가 아니라 결혼 자체에 대해서. 만나면서 은연중에 "나는 결혼이 늘 무섭다"고.


그래도 조금은 서운 했겠다 약간. 연인관계에서 아직은 남자가 먼저 나서서 무언가 하잖아요, 그렇게 해주길 많은 여자들이 바라잖아요 솔직히. 데이트나 이벤트는 남자가, 싸우고 나서 여자는 달래주길 기다린다거나 하는 커플 사이의 암묵적 역할들. 근데 이 남자는 제가 먼저 무언갈 해줬을 때 저한테 되돌아오는 사랑이 훨씬 큰 사람인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튕기면 튕겨져 나가는 사람인 거죠. 이 사람이랑은 밀당이 그렇게 안 돼요. (웃음)


그래서 만나는 방법을 좀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렴풋이 나중에라도 프러포즈는 내가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내가 먼저 앞으로에 대한 확신을 줄 때  분명 오빠도 지금보다 훨씬 더 확고해질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결정적인 결심은 아는 후배랑 술 한잔 하는 날이었어요. 

새벽에 술 먹은 후배를 집에 데려다주는데 저한테 연애 상담을 하더라고요. 그때 삼자 입장에서 저희를 설명하게 되는 거예요. 그때 자각했어요. 어, 내가 오빠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집에 운전하고 돌아오면서 맘을 먹었죠. 아이슬란드 가서 해야겠다.


나름 프러포즌데 맨입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다음날 커플링을 알아봤어요. 비싼 건 아니더라도 그냥 의미라도 있게. 회사 근처에 있는 공방에서 그냥 예쁜 은반지 두 개 골라서 아이슬란드로 갔어요.

특별히 아이슬란드였던 이유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 인생영환데, 저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꼭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랑 가서 웨딩 사진을 찍겠다고 버킷리스트를 세워놨어요. 아직 결혼 얘긴 안 나온 상태긴 하지만 이 사람이랑 너무 가고 싶긴 하고. "오빠랑 갈래. 아니야. 다음에 갈래." 이랬더니 오빠가 "나랑 가자."해서 가게 된 거예요. (웃음) 웨딩 사진은 못 찍었지만 아쉽진 않아요.


기억에 남는 여행 에피소드가 있을까 아이슬란드에서는 꼭 캠핑을 해야겠다 싶어서 온갖 준비를 다 해갔는데, 첫날 웬걸 세상에 너무 추운 거예요. 오빠가 자기는 다신 안 한다고 너 혼자 하라고. 제가 꼭 캠핑을 하고 싶었던 곳이 하나 있었는데 그날도 역시 너무 춥다고 격하게 반대하더라고요. 나는 아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꼭 해야 한다. 실랑이를 하다가 오빠가 져준 거죠 결국. 거짓말처럼 그날 밤에 오로라도 뜨고.


그 브런치 텐트 사진? 맞아요. 결론은 제가 다신 안 한다고. (웃음) 그리고는 쭉 숙소에서만 잤어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꼭대기에서 살며시 반지를 꺼냈어요

프러포즈 자세히 알려달라 트래킹을 시작할 때, 장갑을 한 짝씩 끼고 있었어요. 오빠 손에 장갑 한 짝, 제 손에 한 짝. 루트 초입에 들어섰는데 처음부터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풍경인 거예요. 거기에 아무도 없고. 왠지 여기라면 멋있겠다 싶어서 그때 슬쩍 장갑 안에 반지를 꼈어요. 그리고서 그때부터는 언제? 어떻게 하지? 생각밖에 안 드는 거예요. 제일 높은 산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아래를 보면서 정말 여기구나 싶었어요.


오빠가 내려가자는 식으로 손을 잡고 일어서는데 제가 다시 잡아 앉히고 장갑을 벗었어요.

그때 제가 딱히 준비한 말이 없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머리는 하얗고 그냥


"우리 결혼하자”


내가 한 프러포즈 어떤가 진짜 5초 만에 끝났어요. 사실 그 순간은 기억도 안 나요. 근데 좋은 게 제가 하기 직전까지 느끼던 두근거림과 떨림 같은 거요. 그때 제 기분이 너무 선명해요. 그게 좋아요. 이후에 제가 정확히 뭐라고 말한 지는 기억이 잘. (웃음) 반응은 자기가 먼저 해야 하는데 어쩌고 저쩌고. 오빠는 계속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 난다고 울뻔한 거 겨우 참았다나 어쨌다나. 아니나 다를까 예상한 대로 애정이 훨씬 더 깊어졌어요.


최적의 장소에서 했다 말할 수 있나 아닌 것 같아요.(웃음) 보셨죠, 그 빙하에다가 반지 올려 둔 사진. 사실 남자 친구가 바다를 좋아하거든요. 저는 유난히 산이랑 등산을 좋아해요. 저희가 좋아하는 게 정말 다른데, 어떻게 보면 제가 하고 싶은 곳에서, 제 맘대로 했죠. 오빠가 좋아하는 곳에서 할걸 싶기도 해요. 빙하 둥둥 떠있는 바다에서.


극적이라 더 성공했을 수도 있겠다 맞아요. 로맨틱하지는 않아도 제가 결정한 곳이라 좋았어요. 오글거리는 건 싫은데 임팩트 있게 하고 싶긴 하고, 적당한 곳에서 제 스타일대로 한 것 같아요.


본인만의 프러포즈의 의미 사실 제가 한 프러포즈는 우리 당장 결혼 하자는 아니었거든요. 너와 나의 미래를 같이 하는 걸로 약속을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어요. 건강한 프러포즈 같다

결혼식은? 어떤 결혼식을 꿈꾸나 오빠한테도 "난 밖에서 하기만 하면 돼. 하늘 보이는 곳에서 하고 싶어." 그랬죠. 보통은 조금 경건하고 어른들도 많이 오시고 조심스럽잖아요. 정말 축하하러 와주시는 분들과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파티처럼. 입장 곡을 뮤즈 노래로 하자고 했더니 남자 친구가 미쳤냐고.(웃음) 제 직업정신을 살려 직접 디렉팅을 해볼까 고민인데 주변에서 다 말려요. 아 저 휴직 중인 아트디렉터예요.


프러포즈를 준비하는 다른 사람에게 건강한 프러포즈라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우리 이제 결혼을 시작해볼까-’ 란 의미보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둘 사이의 확고함에 대한 약속으로서의 프러포즈. 남자든 여자든 순서는 당연 상관없고요.


못 지킬 거창하고 화려한 말들 말고, 앞으로 계속 함께 하고 싶다는 내용 있잖아요. 어디서 해도 상관없고,  내용과 진심이 제일 중요한  같아요. 이벤트 말고.




사진제공::  지수 @soologue

Contact:: estday@estda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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