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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Oct 24. 2023

정원사. 목서. 조향사. 마녀

내가 바라는 부캐들

 

누가 나의 부캐를 불러다오. ‘린다G, 둘째이모 김다비, 유산슬, 카피추, 마미손.’이 손을 흔든다. 부캐란 본래의 캐릭터와 별도로 새롭게 만들어 낸 부가적인 캐릭터를 말하는 신조어다. 주로 연예인이 활용하지만 자연인도 예외는 아니다. 외부에 알려진 자신의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부캐의 소유자다.



내게도 내면의 페르소나를 대변하는 부캐가 있다. 정원사는 그중 첫 번째다. 나무와 꽃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놀라운 것은 이 세상에 똑같은 나뭇잎도 꽃도 없다는 것이다. 모두 다 다르다. 세상에 하나뿐인 원본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분별하는 관찰의 눈이 없을 뿐이다.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유능한 정원사이기도 했다. 작가는 곧 관찰자의 다른 이름이니 수긍이 간다. 시간의 무수한 통과가 한 떨기 꽃과 잎으로 피어나는 순간의 경이란! 그때마다 정원사는 마음의 흙밭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곤 한다. 나도 그 경이로움에 동참하고 싶다.


목서는 내가 바라는 간절히 부캐다. 목서 꽃나무처럼 향기로운 존재로 살 수 있다면 빈약한 내 삶의 지분에도 만족할 것 같다.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온 동네를 휘감는 목서 향기에 전율한다. 꽃향기 앞에서 감동한 적이 없는 사람은 영혼이 고장 난 사람이 아닐까. 샤넬 넘버5의 주향으로 쓰이기도 하는 목서향은 내가 가을을 기다리는 첫 번째 까닭이다. 은은하고 매혹적인 향취 앞에서 내 삶의 욕망은 단출해진다. ‘이밖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는 말은 목서향을 두고 한 말일 것 같다. 목서를 풀어보면 코뿔소나무 라는 뜻이다. 뜻밖이다. 그 고결한 향취에 코뿔소가 웬말인가 찾아봤더니 목서의 수피가 코뿔소의 피부와 흡사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하지만 나는 목서라고 가만히 부르고 싶다. 코뿔소를 떠올리는 순간, 감흥이 와장창 깨질 것만 같아서다.

  

조향사 부캐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수많은 향의 향연 속에서 원하는 몇 개의 향을 뽑아 냈을 때의 기쁨이란. 심장을 혀 끝에 올릴 수 없어 불행한 사람들에게 조향사의 향수는 안개이자 풍경이 된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퇴근길에 어디선가 풍겨 오던 향기 한 자락에 위로 받  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향수의 고장 그라스에서 만났던 골목들의 알 수 없는 향기.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향이 수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시광선 밖의 것을 보지 못하는 시각의 한계와도 상통한다. 인간의 언설과 능력을 초라하게 만드는 미지의 향이 나를 기다릴 것만 같다. 무한대의  상상을 펼치며 향기를 만드는 나를 꿈꿔본다. 


마지막 부캐는 마녀다. 동화를 쓰면서 간절히 바라게 된 부캐다. 새 눈알과 오리너구리의 웃음, 갓 피어난 초롱꽃의 이슬 한 방울을 섞어 사탕을 만든다. 사탕 한 알을 천천히 녹여 먹으면  상대의 마음을 훤히 볼 수 있다. 짝궁과 토라진 옆집 윤지에게 한 알, 훅 들어온 첫사랑에 두근대는 6학년 성민이에게도 나눠 주고 싶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이 마법 사탕이 통하는 건 아니다. 비 오는 날 우산 한 켠을 나눠 주는 사람. 우주에서 날아온 별똥별의 이마를 오래 바라보는  이에게 사탕은 마법을 부릴 것이다. 억울하다고 징징대도 할 수 없다. 그건 순전히 마녀의 권리니까.


지루한 인생에서 흥미진진한 생으로 환승하고 싶은가. 부캐를 강추한다.          



고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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