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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Mar 15. 2024

입 팝니다

나른한 봄날의 몽상


요즘 사람들은 소통을 문자로 한다. 예외도 있지만 대화보다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 강력한 소통의 도구였던 입이 시나브로 손에게 자리를 내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과 걱정이 든다.


 얼마 전에  겪은 일이다. 부동산 사무실 직원과 의논할 일이 있어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야기가 계속되자 스마트폰에 문자를 치는 게 버거웠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갔지만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통화는 어려우니 문자로 하면 안되겠냐는 말풍선이 띠링 날아왔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문자 찍을 시간에 말로 하면 훨씬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텐데 왜 회피하는 걸까.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다시 문자를 주고받으며 겨우 일을 마쳤다. 집에 와서 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하소연했다. 그러자 딸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무례를 범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주 친하지 않은 사람과 통화하는 걸 꺼리는데.”


무례, 꺼린다. 라는 두 단어의 용처가 충격적이었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상황에 쓰는 말이 아닌데 언제부터 이렇게 와전된 걸까. 의사소통에도 세대 간의 격차가 깊은 해자처럼 버티고 있다. 마치 사분오열 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 영 씁쓸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의사소통의 창구인 입에 대해 생각을 거듭했다. 생각은 상상력을 타고 잭의 콩나무처럼 하늘로 뻗어 올랐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입은 밥을 먹고 하품을 하고 양치할 때만 필요하다. 입은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그마저도 말할 수 없다.


#집집마다 필요 없는 입이 쌓인다. 의생명과학의 발달로 먹는 것도 알약이나 수액으로 대체한다. 엄마 입, 아빠 입, 누나 입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집안에 뒹군다. 애물단지가 된 입을 당근마켓에 내놓기 바쁘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잃는다. 입을 팔려는 사람은 많은데 사려는 사람은 가뭄에 콩나기처럼 드물다. 판촉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벚꽃 터지듯 벌어진다. 마릴린 먼로도 줍줍할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입을 단돈 만원에 득템세일! 정전이 됐을 때 자체 발광하는 물광탱탱 입 특가세일! 귀엽고 과묵한 반려입 데려가세요!


#벼룩시장 아니 당근시장에서 희귀템 고르듯 입을 사는 사람들.

클래식은 곧 자산증식의 고전템이라며 산더미같은 입 속에서 돈이 될만한 입을 찾아헤맨다.

대박의 환상은 n차 증식을 넘어 무한 증식으로.


#입 팔아요. 지퍼처럼 닫혀 속내를 알 수 없는 답답한 입 팔아요. 누군가  매대 앞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그 입은 아주 잘 말했다. 돈 앞에서만 열리는 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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