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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Mar 25. 2024

59년 만의 화해

어떤 감정은 유적처럼 발굴된다

비가 오는 탓일까

종일 우울했다.

그런데 그 감정의 발원지를 알게됐다.


바로 딸아이의  출가였다.

1월에 결혼한 딸은 사정상 3월까지 집에 머물렀다.  그러다 어제 짐을 챙겨 완전히 떠났다.


딸아이가 쓰던 방을 보니

여전히 어지럽고 지저분하고 정신없고.....


침대랑 책상 빼 내고  옷방으로 다시 꾸밀 생각에 잠시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잠도 오지않고 속도 편치 않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마음에 얼룩을 남기는 긴긴  밤이었다


오늘 아침

글 쓰러 가던 카페도 가지 않고 동네 커피점으로 라떼 한 잔 사러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친정 엄마가 생각났다. 봄이 찰랑거리는 하늘에 엄마가 날 보고 웃고 있었다.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모습. 너무 당혹스러웠다.


내게 엄마는 애증의 증에 가까운 존재였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글에는 이성적 공감만 가능했다. 

어느 시낭송 모임에서 내게 엄마의 애틋한 정을 느끼게 하는 시를 암송하라고 했다.

하지만 감정이입이 안됐다. 아니 그런 시를 읽는 자체가 역겨웠다. 결국 나는 다른 시로 교체했다.


있어도 없는 존재. 내 가슴속 수많은 상처자국의 근원지. 내 목숨보다 남동생의 피 몇 방울이 더 소중했던 타인...

그렇게 평생  미워하고 지우고 외면했던 엄마라는 사람.

돌아가신지 5년이란 시간이 흘러도 그리움이란 단어와 매치되지 않았다.


그랬던 엄마가

오늘 아침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있었다.  흐린 봄하늘을 배경으로 내게 속삭였다.

"우리 애기 장하다."

딸아이를 결혼 시킨 딸을  엄마가 칭찬하고 있었다. 내가 따스하게 기억하는 몇 장면 속의  얼굴로


나는 집에 와서 오열했다

절대로 찾지 않을 것 같던 엄마가 발굴됐다. 초저녁에 잠든 나를 깨워 오이무침에 밥 한숟갈을 입에 넣어주던,

굶고 자면 안된다며 끝끝내 한 그릇을 다 먹이던,

대학 기숙사에 찾아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들어도 견뎌내자며 다독이고  돌아서던 어느 봄날의 엄마


끝끝내 찾지 않을 것 같던 엄마와  화해했다. 

59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내 감정의 둑을 무너뜨리기에  이 시간들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긴긴 삶의 여울목을 돌아

어린 날의 엄마 딸로 돌아왔다.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고양이 하품같은 봄볕을 마음껏 쬐고 싶다.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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