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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비단

봄 숲에 들다

by 고훈실

올 봄에게 나는 불친절했다.

3월 초 망해사 복수초를 영접하고 사진에 담아 온 게 전부였다.

얼레지도 영춘화도 알현하지 못했다.

고고한 향기의 매화도 멀리서 나부끼듯 스쳤다.

발 밑의 봄까치꽃도 패스

요즘엔 꽃다지 꽃마리 뽀리뱅이 냉이꽃이 한창이지만

그마저도 눈팅으로 끝이다.



봄이건만 봄이 아닌 봄

수관에 물 오르는 소리 요란하고

우듬지에 직박구리 박새가 종일 떠들어도

시든 마음은 일어날 줄 몰랐다


그러다

문득 떨치고 나섰다. 봄 숲의 안부가 못견디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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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가지에서 쏘아올린 봄



KakaoTalk_20240409_094743489_07.jpg 얼레지는 씨방을 남기고 적멸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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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별이 내려 앉은 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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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 잎은 눈록과 유록을 지나 신록 입구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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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비단이 감싸고 도는 봄 숲

KakaoTalk_20240409_094743489_11.jpg 나른한 오후를 깜짝 깨운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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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붕이. 남보라 빛 숲의 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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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한 물소리가 삶의 감각을 깨운다




숲은 저마다의 힘으로 저를 피우고 있었다

기대지 않고 바라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화엄의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초록 비단이 휘감고 도는 봄 숲

뿌연 먼지 뒤의 맑은 햇살이

술래잡기 하느라 하루가 가는 줄 모르고


봄 숲의 안부는

여전히 싱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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