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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Apr 09. 2024

초록 비단

봄 숲에 들다

올 봄에게 나는 불친절했다.

3월 초 망해사 복수초를 영접하고  사진에 담아 온 게 전부였다.

얼레지도 영춘화도 알현하지 못했다.

고고한 향기의 매화도 멀리서 나부끼듯 스쳤다.

발 밑의 봄까치꽃도  패스   

요즘엔 꽃다지 꽃마리 뽀리뱅이 냉이꽃이 한창이지만

그마저도 눈팅으로 끝이다.



봄이건만 봄이 아닌 봄

수관에 물 오르는 소리 요란하고

우듬지에 직박구리 박새가  종일 떠들어도

시든 마음은 일어날 줄 몰랐다


그러다  

문득 떨치고 나섰다. 봄 숲의 안부가 못견디게 궁금했다.

무뚝뚝한 가지에서 쏘아올린 봄



얼레지는 씨방을  남기고 적멸에 들었다

초록 별이 내려 앉은 봄 숲

햇 잎은 눈록과 유록을 지나 신록 입구에 도달했다

초록 비단이  감싸고 도는   봄 숲

나른한 오후를 깜짝 깨운 다람쥐

구슬붕이.  남보라 빛  숲의 요정이다

청아한 물소리가 삶의 감각을 깨운다




숲은 저마다의 힘으로 저를 피우고 있었다

기대지 않고 바라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화엄의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초록 비단이 휘감고 도는  봄 숲

뿌연 먼지 뒤의  맑은 햇살이

술래잡기 하느라 하루가 가는 줄 모르고


봄 숲의 안부는

여전히  싱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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