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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Apr 29. 2024

봄날의  일

7번 국도를 꿈꾸며



7번 국도를 달리고 싶다. 일직선인 새길 말고 바다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옛길을 따라서.



옆에 동해바다를 앉히고 갯마을의 미역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며 달릴 것이다. 포항을 지나면서 바다색이 달라지는 걸 느끼고 칠포 해수욕장에 발을 담근 채 반나절을 보낼 것이다. 



아랫녘엔 벌써 지고 없는 봄꽃도 조우할 것 같다. 잠깐 헤어졌다 만난 연인처럼 뺨이 발그레해지고, 서로에게 스미는 걸 기꺼이 허락한 봄에 깊이 감사할 것이다. 


복사꽃 흐드러진 영덕의 과원 길을 천천히 걷고, 정적을 깨는 산비둘기의 구구 소리를 기쁘게 들으리라. 


나는 또 동해로 방향을 틀어 묵호항에 갈 것이다. 종적을 감춘 명태를 먹물처럼 검은 바다에서 불러보리라. 작은 포말에도 나는 귀를 세우고 한참을 서성일 것이다. 


갯바람에 젖은 머리칼이 제멋대로 나부낄 즈음. 7번 국도는 내게 커피 한 잔 건넬 것이다. 고등어 등 같은 동해가 뿌리를 적시는 휴게소에서 수평선이 가르는 두 세계를 오래 지켜보리라.



괄호 안을 채우기보다 가끔씩 텅 비우는 지혜를 덤으로 얻어갈지 모른다.


항상 나를 설레게 하는 삼척에게 안부를 전하고 강릉 소나무 숲으로 달릴 것이다. 불타버린 숲을 보면 내 마음도 까맣게 타들어 가리라. 다시 숲 바다로 일렁이길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하조대 아래 바위틈에 자리 잡은 너와 찻집에도 봄은 찬란히 찰박거릴 거라 믿으며 계속 달린다.


마침내 7번 국도의 끝, 고성에 다다르면 나는 환호를 지를 것이다. 맨발로 봉포 해변을 걸을 것이다. 성게 미역국을 먹고 파도 소리를 베게 삼아  깊은 잠을 잘 것이다.



‘봄에 관해 쓰고 싶다면,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쓰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먹었는지를 써야 한다. 사랑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말아야 한다. 사랑할 때 연인과 함께 걸은 길, 먹은 음식, 본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적어야 한다. 다시 한번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소설가 김연수는 불과 30초 만에 소설 잘 쓰는 법이라며 <소설가의 일>에 이렇게 적었다.



결국 사람의 느낌은 구체적 행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느낌이 관념이라면 행위는 움직임이고 움직임만이 오감을 파고들어 심장에 각인된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는 동사이기도 하다.



봄은 동사를 가장 동사답게 만드는 계절이다. 흙 속에서 꿈틀대는 온갖 생명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귀를 열게 하고 눈맞춤 하게 한다. 무심한 사람도 봄에는 어머! 벌써! 를 연발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결국 누구도 무심할 수 없는 계절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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