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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Sep 01. 2023

미로에서 헤매는 건

안 좋을걸까?

미로에 들어가기 전에 출구가 그려진 지도를 준다면 우리는 여전히 미로를 헤맬까?


일어났다가 다시금 부르는 침대의 속삭임을 이겨내고 활기차리라 다짐한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새로운 달을 맞이해 가게에서 진행해야 할 이벤트 포스터를 만들어야지' 다짐하며 계획표를 들여다봤다. 계획대로 하지 못해 여전히 빨간불이 들어온 목표가 더 많은 계획표.  

일주일이 뭐야, 이주도 더 지난 것도 있다. (출처: 내 todoist 앱)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집에서 앉아만 있으면 답도 없겠다 싶어 일단 밖으로 나가고 보자며 와이프를 꼬셨다. 왠지 일하는 동네 근처로는 가고 싶지 않아 조금 돌아가더라도 멀리 떨어진 카페로 향했다. 왕릉 근처 빙 둘러 쌓인 돌담 앞에 자리한 카페. 


크로플이 먹고 싶어 빙 둘러 찾아왔는데, 마침 오늘따라 '방금' 크로플 기계가 터지는 바람에 주문이 안 된단다.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안고 그냥 눈 앞에 보이는 아무 디저트나 하나 골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 때까진 맑았다.

구름 가득한 하늘은 맑은 듯, 흐린 듯, 비가올 듯, 어느하나 명확하게 예측할 수 없게 했다. 




가만 앉아 새로 홍보할 이벤트 포스터를 기획하려고 하니, 문득, '새로 이벤트를 기획해서 홍보하면 과연 얼마나 가게에 도움이 될까? 내가 기획하는 이 방향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는 대부분 내 생각이 맞을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렇지만 내 생각과는 다른 반응의 고객들을 보면서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을, 생각보다 반응이 미적지근할 수도 있음을 경험했다. 


온라인몰 오픈 당시, 오픈 이벤트로 SNS팔로우-댓글 이벤트를 기획해서 추첨을 통해 3명에게 스타벅스 쿠폰을 주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광고는 꽤 많은 사람이 봤음에도 인지도도 약하고 내용도 약했던지라 진짜 딱 3명만 이벤트에 참여를 해서 이벤트 참여한 3명에게 1,2,3등을 나눠준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냥 오픈했다고 광고하면 그래도 오픈빨이 있으니 이벤트를 사람들이 참여하겠거니 쉽게 생각하고 광고를 돌렸으나 역시나 사람들은 노력없는 광고나 포스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광고 하나를 만들더라도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관심을 끌고나서 그 속에 어떤 메시지를 일관되게 담을지, 그리고 어떻게 그 메시지를 표현해낼지 등등 30초짜리 광고라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데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옆에 앉은 와이프에게 이런 얘기를 나누다 와이프가 꺼낸 말. 

"미로에 들어가기 전에 출구가 그려진 지도를 준다면 우리는 여전히 미로를 헤맬까?"
미로에선 출구를 찾아 나가야지. 그치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출구가 어딘지 알고 있어서 바로 나가버리면 미로를 헤매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재미도 없구.


맞네. 


인생도 기획도 미로와 같다. 누군가는 의사가 되려, 누군가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려고 당장은 뚜렷한 목표가 없이 달려간다.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겠지?', '성공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지?' 하면서. 물론 그 중에 누군가는 정말 뚜렷한 목표를 설정해 차근차근 하나씩 달성해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나처럼 출구가 어딘지도 모른 채 미로 속을 헤매곤 한다. '출구가 있겠지, 출구에 다다르면 행복해질거야'라고 되새기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만약 내가 바로 출구에 다다라 의사가 되건 성공을 했던 간에 뚝딱 행복해지진 않을 게 분명하다. 미로 속을 헤매며 출구가 어딘지 고민했던 시간과 막다른 길을 만날 때마다 고치고 또 고친 수 많은 계획들. 출구를 눈 앞에 두고도 길을 찾지 못해 멀찍이 둘러가는 길을 찾아야 했던 순간들이, 출구에 다다랐을 때 진짜 행복이 뭔지 알려주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오늘 먹지 못한 크로플 때문에 내일이나 모레 다시 크로플이 먹고 싶어 찾은 카페에서 크로플이 나온다면 분명 오늘보다는 더 행복하겠지.




영화 머니볼에서도 출구를 눈 앞에 두고 붙잡지 않은 주인공을 뒤로 하고, 비슷한 노래가 흘러 나온다.

인생은 미로와 같고, 사랑은 수수께끼와 같아. (Lenka - th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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