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Jul 02. 2024

본투비(Born to be) T

자식은 부모의 거울? 부모는 자식의 거울?

6살 딸아이의 유치원에서 반이 바뀌고 어느덧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벌써 유치원을 다닌지 1년반이나 되었구나 싶으면서, 벌써 110cm가 넘어 롯데월드에서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늘어난 걸 보면 정말 아이는 빨리 자란다는 걸 깨닫는다. 하루하루 더 천연덕스럽게 목 마를 때면, "아빠, 물 좀 갖다줘"하는 걸 들을때마다 귀여운 뻔뻔함도 함께 성장중이라는 것도 느끼고 있다. 


딸아이와 이제는 어느정도 속 깊은 대화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오늘 유치원에서 뭐했어~?"

"비-----밀"

"...?!!"


정말 속 깊은 곳에 있는 말을 안한다거나 자기 딴에는 너무 시시콜콜하고 루틴한 일들이라서 딱히 대단히 전달하고 싶지 않은 게 생긴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얼마 전, 태권도 차를 타고 집에 오는 딸아이를 맞으러 갔다가 애가 굉장히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구나 싶었던 일이 있었다. 


"오늘은 유치원 재밌었어?"

"응, 재밌었는데, 오늘 어떤 친구가 별님반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울었어"

"별님반은 작년 너넨 반이잖아?"

"응 근데 별님반은 그냥 한 층 내려가면 되고, 선생님도 한 층만 내려가면 볼 수 있는데, 친구는 왜 보고싶다고 우는 지 모르겠어"

"....?!"


솔직히 틀린 말은 전혀 아닌지라 바로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순간 멍해졌다. 물론 친구도 별님반 선생님을 보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테다. 어떤 이유는 알 수 없는 계기로 순간의 감정에 북받쳐 울음이 났으리라. 하지만 딸아이는 일상 속에서 순간 감정이 북받치는 트리거가 많이 없는 듯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문제상황'은 어떻게든 '해결방법'이 존재했으니까. 


그러다 문득, 모든 아이들이 다 딸아이처럼 뭔가 사무적이고, 소위 MBTI의 T처럼 얘기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같이 태권도를 다니는 남자아이의 엄마와 같이 태권도차를 기다리면서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민수(6세 남, 가명)도 작년에 별님반이었잖아요? 선생님 보고 싶다고 울고 그랬어요?"

"아, 민수는 집에 와서 잠들기 전에도 선생님 못본다고 울고 그랬어요. 워낙 애교도 많고 엄마 아빠한테도 치대서 유치원 들어가기 전에도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선생님들 앞에서 기다리게 만들어 얼마나 민망한지 몰라요~ ㅎㅎㅎ"

"아! 민수는 역시 정이 많은 친구네요 ㅎㅎㅎ"


사람마다 일반적이라는 건 사실 없지만, 보통 아이들에게 그리운 감정이란 대게 울음과 "보고싶어"라는 말로 표현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딸아이에겐 감성의 영역보다 이성의 영역이 태생적으로 더 먼저, 확실히 발달한 게 분명했다. 


완전히 같을 순 없지만, 정말 비슷한...!


와이프가 MBTI로 치면 F고 난 딸아이와 매우매우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 문제상황을 들으면 바로 해결방법부터 떠올리는 성격. 바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제껴두고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바로바로 쳐내야 하는 성격. 그래서 와이프는 딸아이가 사무적(?)이고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말할 때마다 '어쩜, 뉘 딸인지...'라고 자조섞인 농담을 던졌다. 


서로 다른 두 사람에게서 태어난 딸아이가 너무도 명확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성격을 가진 게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성격도 유전인가 싶어 신기하기도 하다. 그리고 막상 성향, 기질이라는 측면이 명확히 보이니까 오히려 두루뭉실한 성격보다 양육태도를 결정하기 더 편한 면이 있다. 아이의 기질이 보이니까, 가정 내에서 더 일관된 행동과 규칙을 정하게 되고,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 때문에 짜증을 내면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고 넘어가는 둥, 아이의 성향에 맞춰 교육하기에 매우 유리하다. 


가끔씩 딸아이와 놀다가 장난으로 슬픈 척을 한다거나 우는 흉내를 내면, 

달래주기는 커녕, '우는 척 하지마시구요~'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 


앞으로도 감성적인 영역을 학습하기 전까지는 이성적인 아이와 하루하루 재밌게 보낼테지만, 나와 비슷한 아이의 성향을 보면서 거울치료가 되는 듯 하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 했던가. 부모가 가정 내에서 하는 말과 행동을 자식이 그대로 따라하니까. 그치만 거울은 거울 속에 비친 나와 실제의 나처럼 피사체를 둘로 만들 듯이, 부모도 마찬가지로 자식의 거울이 되어 자식의 모습을 통해 나를, 내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정말 어렵고 복잡하지만 참 재밌는 과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