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의 자화상이다
아이와 놀다가 문득 물었다.
- 커서 뭐 하고 싶어?
- 그림도 그리고, 아이돌 하고 싶어! 근데 의사도 하고 싶어!
딸이 하고 싶다는 것들은 전부 주변에서 자기가 가장 익숙하게 보고 듣던 활동들이었다. 한국화를 전공한 아내는 아이패드로 그림그리는 일을 자주했고 딸도 아내 옆에서 A4용지에 포켓몬과 티니핑을 열심히 그려댔다. 그리고 계속 그리다보니 생각보다 색감활용도 좋고, 윤곽이나 구도도 또래 아이들보다 더 잘 잡는 듯 했다.
아이돌이 하고 싶다는 이유는 또다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아침마다 우리 가족은 블루투스 스피커나 핸드폰으로 일종의 모닝송을 틀곤 한다.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락음악, 하루는 아내가 좋아하는 플레이브나 BTS, 그리고 이제 또다른 하루엔 딸이 좋아하는 에스파, IDLE, Trple S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아마 평소 BTS콘서트나 PLAVE콘서트에 가던 엄마를 보면서 아이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화려하고 멋지게 춤추는 아이돌들의 모습을 보며 안무를 따라하고 노래를 따라부르더니 어느덧 아침마다 노래 하나를 통으로 따라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 진짜 아이돌 계속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싶으면서도, 벌써부터 좋아하는 게 뚜렷하게 있다는 건 좋은 거라며 아내와 일문일답하곤 한다.
그런데 의사가 하고 싶다는 건 꽤나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그리고 의사 얘기에 앞서 잠시 자전거 가게 얘기를 하고 가려고 한다.
얼마 전 자전거를 갖고 싶다해서 미리 어떤 종류가 있나 구경을 하러 갔다. 근처 삼천리자전거에 가보니 아이들이 환장할만한 티니핑 자전거가 있었다. IP제품이라 그런지 비슷한 일반 아동용 자전거에 비해 2~3배 비싼 가격대였다. 그렇다고 금방 커버릴 아이에게 아동용 자전거를 30만원 이상 주고 구매하기는 솔직히 좀 꺼려졌다. 그럼 꺼림직함을 느꼈던지 딸이 물었다. (딸은 평소 뭔가 갖고 싶은 게 있더라도 우리가 단호하게 거절하면 죽자살자 조르는 편은 아니다)
- 아빠, 우리 돈 많아?
- 응? 자전거 사 줄 정도는 되지~
딸은 아마도 30만원 짜리 티니핑 자전거가 100% 마음에 드는 건 아니였지만 티니핑 때문에 갖고 싶긴 했던 것 같다. 그치만 망설이는 우리를 보고, 자기도 뭔가 꺼림직함을 느꼈으리라. 그러다 딸이 뱉은 말은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현답이었다.
- 그럼 우리 저거 사지말고 그냥 핑크색 자전거 사서, 엄마보고 시트지에 내가 원하는 티니핑 그려가지고 자전거에 붙이자!
- 오, 정말 좋은 생각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한거야. 아빤 전혀 생각도 못했어!
딸은 이렇게 꽤나 현실적인 편이다. 그리고 의사가 되면 돈 많이 벌어서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할머니의 말에 자기는 의사도 하고 싶다고 말을 했으리라. 그렇게 딸아이는 벌써 그림작가, 아이돌, 의사라는 직업들을 골랐다. 요새는 정해진 평생직업이랄 게 없다보니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문득 아이들은 정말 주변, 특히 함께사는 가족과 부모의 영향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받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보는 것만으로 아이는 미래 평생 해야할 수도 있는 직업을 고르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활동들을 같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아내, 그리고 가족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걸 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를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낀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가 좋아하는 걸 하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정말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자화상이다.
아빠도 엄마도 좋아하는 걸 할테니, 너도 꼭 네가 좋아하고 기쁜 일을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