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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ul 07. 2024

잊어버린 것

함께했던 네 모습들

얼마 전 가게를 하다 알게 된 친구가 가게에 놀러왔다. 평일 늦은 밤이라 손님들도 없고 해서 함께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는 지난주 다녀온 일본여행 자랑을 하면서 '명품백'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 지난주에 일본을 다녀왔는데, 이거(셀린느) 한국에서 살 때보다 100만원이나 싸!

- 와 명품백 진짜 비싸네!!

- 근데 이런 거 여자들은 다 자기네들끼리 안다? 얼만지, 구하기 어려운지 말야.

- (우리 와이프는 그런 데 관심없던데...) 그래?

- 응. 일본 갈 일 있으면 와이프 하나 사드려! 돈 모아야겠네~~!

- 그러게. 많이 모아야겠네!


얘기를 듣다가 문득, '여자들을 서로 다 안다'고 했던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와이프는 평소 명품백에도 관심이 없었고 소위 여자들이면 관심있을 법한 대부분의 것에 부정적이었다.


예를 들어, 와이프는 결혼'식' 자체에도 부정적이었다.  부모님을 위한 행사일 뿐이고, 우리가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결혼식이라면, 드레스같이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여자를 위한 날이라며 추켜세우는 겉치레 가득한 이벤트라고 여겼다. 그 앞에서 하하호호 하고 싶지 않다며 할거면 소위 스드메도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셀프로 하고, 결혼식도 가족이랑 정말 친한 친구만 모아두고 파티처럼 진행하자고 했다.

 

그래서 진짜로 웨딩촬영도 거치대랑 케케묵은 오래된 캐논 DSLR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를 가지고 삼락생태공원에 가서 우리끼리 놀면서 찍었다. 그리고 이 때 입었던 외출용 드레스를 결혼식에서도 입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다가 잠시 주춤한 사이 식장을 구했던 터라 최소로 요구하는 인원 없이 야외식장을 구할 수 있었다.


가족끼리 혼수도 오가지 않았고, 그저 정말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였다. 결혼식 이후에 일종의 피로연(?)같은 식사자리에서도 우리는 전혀 바쁠 게 없어서 우리를 보러 와 주었던 친구들 모두와 같이 밥을 먹을 시간도 충분했었다.


우리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기도 하거니와 아이도 이미 당시 4살 즈음 되었을 때라 우리끼리 신혼여행을 가는 대신 가족여행을 갔다. 그러면서 남들처럼 결혼식 때  정신없이 안보내서 너무 좋았고, 우리의 시간이 된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던 너..!


여전히 와이프는 명품백에 관심이 없는지는 모르겠다. 항상 크게 관심없어 하는 듯 해서 나 역시도 크게 명품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친구와 얘기를 하다 나온 명품백 얘기에 우리도 어느덧 나이가 30대에 접어들고 와이프도 주변에 친구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명품하나 걸치고 가고 싶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슬그머니 물었다.


- 여보, 친구가 그러는데 일본가면 명품백 요런 게 엄청 저렴하대!

- 그래서 얼만데? 그래봤자 몇백 이러잖아. 어차피 가방 다 똑같으니까 그 돈으로 우리끼리 더 맛있는 거 먹고 더 좋은 거 보러가자. 우리 애기도 같이!

- 그래두 여보도 저런 가방 하나 있음 좋지 않을까?

- 저런 가방 없어도 사는 데 크게 불편하지도 않고, 난 우리끼리 행복한 게 더 좋아. 지금도 좋은 걸. 필요하면 내가 벌어서 내가 살게. 근데 솔직히 필요하지 않아. 그 돈으로 우리끼리 놀러가자 항상.


애가 생기면서 결혼식보다 혼인신고를 먼저 한 우리였고, 결혼식도 우리끼리 소박하게 했던 우리였다. (다 써도 오육백만원 밖에 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우리 가족끼리 행복하자는 목표를 세웠었다. 남들 눈치보지말고.


세월이 쌓이면서, 결혼한지도 5~6년 지나다보니 처음의 기준은 잊은 채, 남들의 시선이 신경써지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백 하나 정도는 사줘야 하지 않나, 손에 물 한방울 묻히게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약속도 아직 못지키고 있는데, 미안함과 죄책감에 조금씩 짓눌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네가 원하는 건 물질적인 것보다 항상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 우리의 행복인데, 난 조금씩 더 사회의 눈치를 보려 했다.


집에 가면, 아이고 삭신이야, 아이고 피곤해, 라고 하지 말아야지. 오늘부터는 다시 이렇게 말해보련다.


- 여보, 잠깐 일하고 왔는데 너어어무 보고싶었네! 씻을 시간도 아깝다 계속 붙어있어야지 오늘은~!

- 뭐야, 징그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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