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를 가지고 혼인신고를 하기 앞서 가장 먼저 의논했던 일은 "아이 이름 정하기." 태어나려면 멀었지만서도 임신소식을 듣자마자 아기 이름을 정하고 싶었다.
문제는 아기이름에 아빠성, 엄마성을 다 넣어서 이름을 지으려던 것. 아기이름에 누구 하나의 성씨가 꼭 사라질 필요는 없지않겠냐는 아내의 제안에 시작된 고민이었다. 내 성은 "강"씨. 아내는 "박"씨라서 일반적이라면 '강박'으로 이름을 만들어야 했는데 도저히 뒤에 붙일 이름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름이 너무 강박스러워진달까...
그래서 박씨를 앞으로 꺼내고 '박강'을 아이 이름에 넣기로 하고 이름을 정하니 후보군이 매우 다양해졌다. 그래서 박강이 들어간 이름을 정하고 혼인신고를 하려 구청으로 달려갔다.
이게 웬걸, 아기이름을 모계성으로 하려면 혼인신고 때부터 서약을 해야한다고 했다.
혼인신고서 양식, 4번을 주의깊게 읽어야 한다.
혼인신고서는 간단하지만, 모계성으로 아이이름을 정했다면 반드시 4번 성, 본의 협의에 '예' 체크표시를 하고 별도로 이를 부부 모두 인지하였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순서를 바꿔 생각해보면, 현행법상 이미 혼인신고를 했고 혼인신고당시 (관심없으면 그냥 '아니요'에 체크하고 넘어갈) 4번란에서 '예'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태어날 아기는 모계성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보통 과속이 아닌 이상, 혼인신고 후 아기를 계획해서 낳게 되는데 누가 결혼하면서 우리 아기는 엄마성으로 하자며 정해놓고 결혼을 할까?
사실, 엄마성이니 아빠성이니 누구성을 따르던 간에 해당 가족이 결정하고, 결정에 책임을 지면 여느 누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름을 짓기 위해 사주팔자를 맞춰가며 이름을 받아오고, 모계성을 누가하냐면서 아이에게 안좋다고만 말씀하는 어른들 얘기를 듣다보면 도대체 누굴 위한 이름짓기인지 헷갈리게 된다.
엄마성을 따르면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겠냐는 걱정이 많았지만 사실 누가 "너희 아빠 성이 뭐야?"라고 물을 것이며, 설령 물어본들 아이가 모계성을 갖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면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키지 않을까!
해외에서는 엄마의 의지에 의해, 남편과 결혼 후 본인성을 버리지 않기도 하며, 이혼하고 다시 본인성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대다수가 결혼 후 부계성을 따라가지만, 아랍이나 스페인 같은 나라의 일부에서는 모계 부계성을 다 붙여서 이름이 길어진 경우도 있다.
모계성이 특별한 건 아니니까.
모계성이 사회에 누가 되지도, 아이들에게 특별함을 선사하지도 않는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성씨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성을 모두 가져보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가족에게 만큼은 소소한 얘기거리이자 만족으로 다가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