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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iza Jan 01. 2024

[연말 결산 번외] 1월 25일의 어드밴트 캘린더

 크리스마스 어드밴트 캘린더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크리스마스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기다려지는데, 좋음에 좋음을 곱한다면 더 설레지 않을까! 그래서 남에게 그 설렘을 하나 툭 얹어주는 게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사실 내가 직접 그 캘린더를 뜯어본 적은 없어서 얼마나 좋을지는 잘 모르겠기도 하지만서도... 누가 좀 사줬으면! 신기하게 이런 건 꼭 내 손으로 내 거 사기엔 아까운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한편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싫어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가을 헤이터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이라는 사실을 들을 때마다 매번 진심으로 놀란다. 그 이유인즉 아무래도 해가 짧아져서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여름엔 쪄죽을 것 같아도 해가 길어서 그런가 하루가 긴데, 가을이 되면 내가 쓸 수 있었던 시간들을 도로 빼앗기는 기분이 든다. 퇴근하고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렸을 때, 해가 이미 떨어져 있으면 종일 일만 하다 하루가 끝난 거 같아 괜히 풀이 죽는다. 가을 특유의 음산한 (남들은 선선하다고 좋다고만 하는) 그 바람도 싫다! 그런데, 해는 겨울이 더 짧은데 왜 가을이 더 싫은걸까?

 

 겨울엔 그래도 눈과 크리스마스가 있다. 제일 좋아하는 머플러도 겨울에만 할 수 있다. 겨울엔 좋은 것들이 있어서 해짧음의 싫음이 상쇄되어 왔던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겨울 없는 여름나라에서 연말을 보내면서 코 끝 시린 겨울 공기가 무척 그리웠다. 겨울이 아닌 연말의 싱숭생숭함은 마음 골목골목에 낯선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 바람 한 가운데에서 한 가지 더 알게된 게 있다.


 나는 1월도 싫어한다.


1월은 직장인의 회기 특성상 뭔가를 계획하고 준비해야하는 시기일 확률이 높다. 상대적으로 일이 많다는 뜻이다. 여태 그래서 1월이 싫은 줄 알았는데, 휴직을 하고 일의 템포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에 와서도 여전히 1월이 부담스럽다. 여전히 이렇게 싫은 걸 보니 꼭 그 이유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럼 1월은 왜 또 싫은 것인가! (생각해보니 참 싫은 게 많아 고통받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 기회를 빌려 싫음에 대하여도 한 꼭지 써보는 것으로...)


 그 이유는 또 나잇값으로 헤아려 올라가지 않을까. 이제 마냥 스스로를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는 만큼, 살아온 세월만큼의 성숙함을 (자유롭게 못 쓰더라도) 수중에 가지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겨울을 좋아하는데, 1월을 싫어하는 마음이 겨울을 좋아하는 마음 위로 자꾸 올라탔다. 분명 나는 겨울을 좋아하는데, 1월은 늘 불편하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1월만 되면 갑자기 나잇값 리볼빙을 당하는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린다. 누가 요구한 적도 없고, 사실 그 나잇값은 1월 댓바람부터 옛다 주어지는 게 아니라 할로윈 좀 지나고 한 해를 돌아보기 시작할 때쯤 문득 깨닫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전엔 안 챙기던 별의별 절기를 전보다는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역시 나이 듦의 폐해라면 폐해일지 모르겠다. 절기의 절이 계절의 절일 뿐 아니라 나누다의 의미니 만큼, 한 해를 나누는 포인트를 자주 돌아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해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절기들을 헤아리다 보면 어느새 또 1년이 다 가 있다. 이렇게 보면 1월보단 각 절기를 부담스러워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언제나 애꿎은 1월만 탓하게 된다. 12월 31일 밤은 설레고 의미 있게 다가오는데, 1월 1일 아침에 전날밤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스스로를 보는 건 언제나 겸연쩍다.


 그래서 12월의 좋음을 하나 빼서 1월에 얹어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드밴트 캘린더를 하나씩 까보는 사소한 흐뭇함을 1월에 좀 빌려주면 좀 나으려나 싶은 것이다. 조삼모사긴 하지만 동시에 그게 뭐 어때서 싶기도 할 정도로 1월이 싫다! 1월만 잘 넘어가면 그때쯤엔 또 관성에 잘 올라탔을 시기이고 그 관성으로 얼레벌레 또 챗바퀴를 잘 돌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딱 한 달쯤 빌려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1월 25일까지 신년 캘린더를 까다보면 민족의 명절 설도 돌아오고, (늘 그랬듯) 구정 전까지는 새해가 아니라고 유치하게 우겨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새해를 두 시간 남짓 남겨두고 해 보았다.


 시차가 제법 있는 나라에 있으니 혼자 나이 늦게 들고 그건 좀 좋은 것도 같다. 나잇값에 요상하게 목을 매면서 늦게 나이 먹는 건 신나다니 이것도 참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가족 친지 지인들과 나이 차이가 덜 나거나 더 나거나 하는 그런 밤은 오늘이 처음이다. 앞으로도 한 동안 없지 싶다. 내년엔 다시 함께 나이 먹을 생각을 하니, 올 한 해를 다부지게 살아야겠다는 조급한 결심도 함께 든다. 그래도 다시 만나기 어려울 기회니 오늘 밤만큼은 즐겨둬야지! 2024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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