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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릭 Apr 11. 2019

떼아뜨르 봄날, <햄릿>

떼봄 스타일의 비극 비틀기

앞으로는 셰익스피어 관련 공연 감상도 이곳에 써보려고 한다.

극단 떼아뜨르 봄날에서 4월 10일부터 21일까지 혜화동 나온씨어터에서 공연하는 <햄릿> 첫 공연을 보고 왔다.

조금 긴 리뷰는 다른 지면에 쓸 예정인 데다가 공연 초반이기도 한 터라 여기엔 간단한 소감만 남긴다.

요즘 떼봄이라고도 부르는 떼아뜨르 봄날의 고전 시리즈는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따라가기 보다 텍스트를 이리저리 주무르며 잘 가지고 노는 걸 선호하는 관객들에게 더 적합하다.

이번 <햄릿>도 과연 떼봄스러운 <햄릿>이었다.

다만 공연 소개에서는 희비극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 작품은 <햄릿> 하면 품게 되는 비극에 대한 관념을 비틀고 비웃는 일종의 反비극에 가까웠다.

마치 비극하면 으레 우리는 마음 속에 근엄하고 엄숙한 태도, 심오한 의미, 신 혹은 운명 등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공연은 그런 것들에 대해 '엿먹어라'는 태도를 드러낸다.

또한 음악극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공연 전반에 거쳐 기타 연주와 배우들의 노래가 이어지는데,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 역시 비극적 정서를 이끌어내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차단하고 패러디하는 데 주력한다.

정서적이기 보다는 다분히 지적인 접근이다.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재구성과 연출을 맡은 이수인 연출가는 우리가 이 작품에 대해 이러이러한 선입견, 혹은 관전 포인트라고 여기는 지점들을 의도적으로 타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건 관객이 어떤 기대를 하고 극장을 찾느냐에 따라 통쾌한 경험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시종일관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전략이다.

물론 떼봄의 전작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공연의 접근 방식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고, 내가 보기에는 떼봄 스타일에 잘 맞는 작품이 나온 듯 하다.

무엇보다 장난스러운 진행 속에 언듯언듯 원작의 주제를 사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좋았다.

하지만 보는 동안 웃음이 넘치는 공연이라기 보다는 돌아가며 복기할 때 더 매력적인 공연에 가깝다.

끝으로 스포일러일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나는 누군가 내게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를 미리 충분히 듣고 보라고 일러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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