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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 Dec 10. 2022

아무튼, 꿈

아무튼, 메모 _ 정혜윤

p. 88, 89


꿈꾸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고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영리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는 ‘억압적’일 뿐만 아니라 미래가 없다. 

많은 단어가 오염되었지만 그래도 꿈에는 여전히 가치란 것이 살아 있다. 

끝까지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개인의 가능성이 바로 꿈꾸는 자의 자유다. 


p. 92


꿈꾼다는 것은 더 확장해보고 싶은, 더 키워보고 싶은 자신만의 단어를 갖는 일이다. 



<아무튼, 메모> , 정혜윤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

“남들이 그렇게 살면,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내 질문에 엄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나도 야욕이 넘실대는 질문만큼 당차지는 않았다. 

덕분에 내 딸이 ‘세상 사람들’과 비슷한 속도로, 어긋나지 않고 살아가길 고대한 내 모친의 소망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잘 지켜졌다. 


누군가 나의 이십대를 묻는다면, 충분히 비겁했던 시간이었다고 고백하겠다. 인생에서 매 순간 선택의 무게가 중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번의 선택은 다음 선택지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방패 삼아 회피했던 내가 치룬 기회비용은 ‘시간’이었다. 


삶의 모습은 여러 굴레에서 전복된다. 착실하고 미더운 딸이 되기 위한 한 번의 선택은 향후 10년의 시간동안 비겁한 나를 견디게 했고, 급기야 모친의 죽음 이후에도 더 이상 나는 ‘나’로 살아갈 수 없었다. 잃어버렸던 것이다, 나를. 


사촌들과 사이가 좋았다. 종종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들에게 누나의 편지를 남기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했던 기억이 있다. 한참 세월이 흘러 동생과 제주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내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을 듣고 놀랐다. 새파랗던 내가 치기어린 마음으로 사춘기의 사촌동생에게 쓴 편지에는 놀랍게도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꿈을 품고 살아라.”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퇴사를 5년이나 미루며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맸다. 하얀 종이에 까맣게 손가락을 꾹꾹 눌러 담았던 그것, 나의 그 열망을 되찾고 싶었다. 내가 속한 사회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영리한 것으로 간주되는’ 곳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지인들은 나를 모친의 죽음으로 인해 인생을 포기해 버린 실패작 정도로 여겼다. 그 때 자주 듣던 말은, ‘정신 차려라’, ‘쓸데없는 짓에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같은 조언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소탈하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퇴사를 하고서야, 정혜윤 작가의 책에서 ‘꿈’에 대한 그녀의 소신을 읽었다.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이 복부에서부터 명치를 지나 온 몸을 데웠다. 그래, 꿈에는 가치가 있지. 나는 삶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지금도 살아내고 있는 내 삶이 보편적인 인간의 생로병사 이외에도 굳이 ‘나’ 여야만 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나만의 단어를 갖는다는 것은 ‘의미’ 를 갖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정혜윤 작가의 문장에서 나는 오래 전 품었던 내 꿈을 기억해 냈다. 가치를 주장할 수 있다는 특권을 오래 숙고하고 정진하여 한 인간으로서 누리고 싶다. 그렇게 늙고 싶다. 


꿈을 갖는다는 것은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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