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장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복 Dec 03. 2022

슬픔이 다정하기까지 하면

오랜 슬픔의 다정한 얼굴 _ 칼 윌슨 베이커


오랜 슬픔의 다정한 얼굴을 사랑한다.

이 친구들과는 비밀이 없다.

예전에 퍼부어댔던 지독한 말들은

시간이 흘러 이제 다 잊힌 듯하다.



새로 슬픔이 생겨나 저기 저렇게 서서

차갑고 근엄한 눈초리로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오랜 슬픔이 세월이 흐르며 달라진 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면

내가 좀 더 용기를 내볼 텐데. 


- 칼 윌슨 베이커, 오랜 슬픔의 다정한 얼굴 





슬픔은 눅눅하고 어둑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눈물은 습하니까. 

슬픔을 미워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비 오는 날의 우중충함을 싫어하고, 습기 먹은 장마철을 못 견뎌 하는 내가 슬픔을 미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덕분에 나는 눈물을 어려워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삶에서 기쁨이 머무는 시간은 얼마나 짧은가. 그 허망함 때문에 인간은 기쁨과 즐거움에 목을 멘다. 나 또한 그랬다. 어떤 한 측면을 향한 집착은 사방의 창문을 꼭꼭 쳐 닫고 환기가 안 된다고 투덜대는 모양새와 닮았다. 슬픔을 미워하면서 행복에 애 닳아 하던 내가 그런 꼴이었다. 삶은 어쨌든 고통인 것을. 불행의 연속은 거기서 출발한다. 


살면서 크게 슬퍼할 일이 내게 몇 번 있었고, 그 슬픔에는 노여움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간이 더디 간다고 한탄하던 시절에, 나는 그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많이도 앓고 앓았다. 떠올리면 여전히 슬픈 장면들을 가슴에 사진처럼 박제해 두고도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 날을 잊을 수 없다. 해사한 나의 미소 속에서도 나는 슬픔의 곁가지를 보고 있었으니, 슬픔은 더 이상 내게 눅눅하고 어둑하지 않았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읽은 한 줄의 시구가 계속 입 속에서 굴러 다닌다. 나의 오랜 슬픔은 세월 따라 나이를 먹고 모습을 달리했다. 그것을 한 여인의 깊은 가을을 담은 시를 읊조리며 깨닫는다. 

나의 슬픔은 이제 애 닳지 않다. 까만 간장을 푸욱 익히고 있는 깊고 웅장한 항아리를 닮았다. 


슬픔이여, 나의 오랜 슬픔이여. 

너만큼이나 나 또한 너에게 다정하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