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비행기 안이었다. 모두가 적막한 고요 속에서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깊이 잠이 든 시간, 말똥말똥한 눈으로 까만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나는 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눈물이 나진 않았다. 내가 직면한 것은 외로움이었고, 그것은 고독보다 해결하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지인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한 생명을 들이는 일이 조심스러워서 1년 반을 고민만 하고 미뤄 두었던 일에 선뜻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렇다. 강아지를 분양받기로 한 것이다.
회사 동료가 자신의 반려견을 분양받았던 가정분양 업체를 소개해 주었다. 결심이 선 날로부터 3달 동안 내리 공부를 했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위해서 인간이 준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 나에게 맞는 반려견은 어떤 종일지 등을 알기 위해 가정에서 키우는 소형 견 종의 성격과 특징 및 건강상 유의해야 할 점들을 꼼꼼히 분석했다. 견주들을 위한 유로 콘텐츠 교육도 신청해서 강의를 들었다.
긴 숙고의 시간을 거쳐 분양을 희망하게 된 견종은 비숑프리제였다. 이유는 단 하나, 튼튼하고 독립심이 강하다는 것. 엄마를 보내 드린 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때였으므로 건강에 대한 나의 염려는 강박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고, 큰 병치레 없이 튼튼하다는 말 만으로 다른 견종을 선택할 자유가 내겐 없었다.
요즈음은 사정이 어떤 지 모르지만, 당시의 비숑프리제 강아지의 분양가는 굉장했다. 하지만 1년 넘게 숙고한 결심이 어찌 금액 따위에 흔들리겠는가? 신속하게 적금 통장 하나를 깼다. 직장 동료가 소개해준 가정분양소는 강남의 어느 빌라촌에 위치해 있었다. 주차도 어려운 골목을 쑤시고 들어가 찾아간 분양소 사장님은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였다. 그분은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내게 “이왕이면 예쁜 강아지를 데리고 가면 좋지 않겠냐” 면서, 유독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겨주었다.
아직도 다복이를 만난 첫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 눈앞에서 보란 듯이 배변패드에 난짝 쉬야를 하고 콩콩콩 당당한 걸음으로 녀석은 품에 안겼다. ‘당신을 견주로 받아들인다’고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품에 안긴 녀석은 한숨을 훅 내쉬곤 곤히 잠이 들었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조수석에선 녀석의 쌔근쌔근한 숨소리만 들려왔다.
성견이 되고 나서야 녀석이 비숑프리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기만 할 것이라는 사장님의 호언장담을 뒤집고 녀석은 내 집에 오자마자 생사의 고락을 넘겨야 했다. 게다가 선천적 슬개골 탈골로 어린 나이에 수술까지 감행해야 했으니, 튼튼해야 한다는 유일한 나의 바람조차 다복이는 통과하지 못하는 아가였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흔들리던 밤도 분명 있었지만, 찾아온 인연은 쉽게 외면할 수 없다. 다복이를 위해 영양국 레시피를 찾아 끓이고 연차를 내어 하얗게 지새우던 밤들이 쌓여 어느새 녀석은 제법 건강을 회복했다.
운명이란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거라고 매일 다복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만나자마자 죽음의 경계를 미리 맛본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애틋하게 인사를 한다. 오늘 아침도 무사히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온 얼굴이 녀석의 침으로 범벅이 될 때 그 흥건한 온기를 느끼며 되 뇌이곤 한다. 너도 내 엄마처럼 내 곁에 있어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말이다.
나에게 가족은 그런 의미였다. 한정된 시간 동안 극진한 행복과 불행을 안겨주는 존재들. 사실 다복이의 첫 번째 이름은 다복이가 아니었다.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얗고 보드라워서 크림이라고 지어줬던가. 녀석을 다복이로 부른 것은 녀석의 보호자로 24시간 동물병원 응급실에 찾아갔을 때였다. 내 아명 ‘다복’을 나눠 가지면, 복이란 복은 다 갖고 있다던 그 이름이 이 작은 생명을 살려주지 않을까 해서 녀석을 ‘다복이’라고 불렀다.
오늘도 산책길에서 관절염으로 절뚝이는 다복이의 왼쪽 다리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녀석과 내 인연의 生을 가늠한다. 그래도 네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게으르고 부족한 견주 이지만, 나는 너에게 네가 이 땅에 소풍 하는 동안 좋은 벗이 되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이름 덕을 본 것일까? 컹컹컹 건강한 녀석의 소리를 들으며 안도하는 찰나를 이어 붙여 우리를 묶는다.
내 선택이 운명처럼 가져다준 첫 번째 가족, 나의 다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