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을 극복하는 법
나는 깊은 우울을 앓았던 사람이기에 곧잘 자주 무기력이 습관처럼 찾아온다. 얼마 전까지 그것이 내게 당도하면 내심 무자비하게 자신을 공격했다. 공격의 역사는 길었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내가 찾은 답은 ‘나를 아껴주는 것’이었고, 그 답을 찾고서도 한참을 자책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독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날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감정의 동요도 없었으나 몸이 해저로 가라앉은 것처럼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날 말이다. 오늘이 그랬다. 청소를 하거나 분리수거를 하고 화분의 분갈이를 하는 등, 그제도 내일로 미루고 어제도 내일로 미룬 일들이 몽글몽글하게 피어 목화 꽃을 만들어냈다. 머릿속으로는 그 온갖 일들을 해내고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바닥에 들러붙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날 나는 가장 쉬운 것 하나를 힘을 주어 생각한다. 우선 몸을 일으키는 일이다. 물에 젖은 솜 같은 심신에겐 물론 어렵지만, 거기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니 피할 수 없다. 겨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앉은 김에 명상을 한다. 시간이 훌쩍 지나고, 배에서 허기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가장 손쉬운 콘후레이크와 우유를 찾아 주린 배를 잠재우고 나니, 햇살이 가득한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대로 하루가 끝나버린다면 한 밤에 찾아온 자책을 내치긴 어려울 것이다. 끄어 억. 배 속에서부터 끌어올린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일으킨다.
다복이 와 함께 무작정 집을 나섰다. 산책. 다복이 가 아니었다면 이런 날 내가 외출을 감행할 생각을 과연 하긴 했을까. 경쾌한 다복이의 궁둥이를 바라보며 한 짐 지고 나온 쓰레기를 버리고 나니,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바람은 휘청이면서 나뭇가지를 흔들어 재 꼈으나, 그 끝은 매섭지 않았다. 봄봄봄. 봄을 몰고 오는 사뿐히 가벼운 바람의 질감.
되도록이면 햇살이 내비치는 길을 선택했다. 많은 양의 햇볕에 나랑 다복이를 노출하고 싶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도 마음도 먼지를 걷어낸 것처럼 가벼워졌다. 쏟아지는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걷다 보니, 산책로 곁에 나뭇가지로 눈길이 갔다. 이럴 수가. 엊그제 까지만 해도 짙은 갈색이었던 것이 어느새 푸르른 색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 몽우리가 잡힌 것이나 돋아난 새 순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지는 갑자기 움트며 올라올 생명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한껏 푸르르게 몸을 단장하고 있었다.
절기가 바뀌자 신기하게 자연은 제 역할을 찾아 해낸다. 오늘 본 그 가지엔 어떤 꽃이 피어날지 궁금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 길을 다복이 와 걸었는데, 왜 내 기억 속엔 그 가지에 매달린 꽃봉오리가 없는 것일까. 흐드러진 봄엔 이 길이 어떻게 치장을 하고 있을지. 기억을 더듬다가 내일을 향해 내달리는 나의 기대를 본다. 그제야 긴 갑옷 같던 무기력이 스르륵 풀렸다.
딱 한 번이다. 딱 한 번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보자. 살다 보면 감기처럼 우울은 또 찾아오고 무기력은 틈만 나면 내 세포를 쑤셔 대겠지만 괜찮다. 가장 쉬운 것에서 시작하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 ‘나를 아끼는 것’은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