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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 Mar 06. 2023

찢어진 청바지



느리게 일요일을 시작했다. 커튼에 가려진 햇살이 어떻게 해서든 비집고 집 안에 발을 디딘다. 나른한 다복이의 기지개를 한참 지켜본 뒤에야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오늘따라 집 안이 왜 이렇게 답답해 보이는 건지. 여백 하나 없이 여기저기 꽉 차 있다. 어플이 알려주는 날씨는 물론이요, 햇살도 이미 봄날의 온기를 머금고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게 대청소를 감행했다. 그것은 과욕이었다. 겨우내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밖에 하지 않았던 나는 청소 몇 시간에 체력이 넉다운이 되어 버렸다. 이런 날은 왜 밀가루가 당기는 걸까? 



햇살 좋은 봄날의 낮, 양심을 저버린 채 다복이를 두고 혼자 나설 준비를 했다. 옷장을 벌컥 연다. 이 날씨에 코듀로이 바지를 입기는 민망하다. 몇 벌의 청바지를 두고 고민하다 문득 집어든 것은 찢어진 청바지. 집어 들긴 했는데, 손에 청바지를 든 채 서성인다. 날씨 어플을 재차 확인하며 기온을 체크하고, 창 밖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까지 확인해 본다. 너무 춥지 않을까? 고민만 10분을 했던 것 같다. 곁에서 다소곳이 앉아 나를 지켜보던 다복이가 한숨을 푹 쉬고 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와. 이럴 줄 알았으면 고민을 좀 덜 하는 건데! 후드티 하나에 그냥 찢어진 청바지 하나 걸쳤을 뿐인데 기분이 달랐다. 때 맞춰 늦지 않게 당도한, 딱 알맞은 그 느낌. 그것이 주는 충만한 만족스러움이 온몸의 세포에 숨을 불어넣는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걸어가는데도 귓가엔 흥얼흥얼 경쾌한 포크송이 맴돌고, 나도 모르게 정체 모를 그 음악에 맞춰 걸음을 옮긴다. 머릿속엔 달콤한 로제 떡볶이가 동동 발을 구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뭐든 변화는 찢어진 청바지 같다. 시도를 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적절한지, 경쾌한 결과를 가져올지, 매서운 평가에 난도질당하지는 않을지.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안도하는 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한다. 거듭하는 선택의 보류가 피어나고 부서지는 파도처럼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변화는 인간을 크게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넘어서야만 선택할 수 있으니까. 



오랜 시간 굳혀왔던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결심했을 때, 적어도 새로운 무대에서 시도해 보고 싶은 기획들이 몇 가지 있었다. 내 것들을 펼쳤을 때, 세상은 어떤 피드백을 줄지 궁금했다. 나름 백스테이지를 촘촘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가 고려했던 시기가 당도하자 덜컥 겁이 났다. ‘실패’라고 낙인찍히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스스로 ‘시도’ 했던 모든 것들을 ‘좌절’로만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단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것처럼 내내 생각 속에서 기운 기획들을 시도해 보기로 다짐한다. 역시 일요일 낮의 로제 떡볶이는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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